용담팔경
용담팔경(龍潭八景)은 용담현 관아에서 모이는 곳을 중심으로 명명됐다.
전북 진안 지역의 옛 용담현 경내 아름다운 여덟 가지 경치를 이르는 사언절구로,지금의 동향면에 살던 선비 성은명(成殷命)이 지었다고 한다. 태고정에 '용담팔경'을 새긴 현판이 걸려 있었다.
8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용강추월(龍崗秋月) : 용강산에 걸린 가을 달
태고청풍(太古淸風) : 태고정에 부는 시원한 바람
응봉락조(鷹峰落照) : 응봉에 깃드는 저녁 노을
송림수학(松林垂鶴) : 송림에 드리운 학의 정취
소요낙안(逍遙落雁) : 소요대에 날아드는 기러기 떼
옥천모종(玉泉暮鐘) : 옥천암의 저녁 종소리
삼천서원(三川書院) : 삼천서원의 풍광
성남귀범(城南歸帆) : 성남 마을로 돌아오는 돛단배
용담현은 백제의 물거현(勿居縣)이었다. 신라 경덕왕 때 청거(淸渠)로 이름을 고쳤다가 고려 충선왕 5년부터 용담(龍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조선시대에는 독립된 군현이었으나 현재는 진안군에 포함된 상태다. 진안군 용담면, 주천면, 안천면, 정천면 일대를 관할했고 용담면 옥거리 일대가 읍치(邑治)였다. 객사, 동헌, 향교가 그려져 있다.
1990년에 착공하여 2001년에 완공된 금강의 상류댐인 용담댐으로 인하여 용담호가 생기면서 옛지도와는 다른 경관을 보인다.
용담현지도(龍潭縣地圖, 규10462. 조선후기 지방지도,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의 읍치 왼쪽에 보이는 용담면 수천리의 태고정(太古亭), 천태산 아래의 옥천암(玉泉庵)은 진안군 관광안내도에 등장한다.
향교 뒤편에 그려진 산이 용담의 진산인 용강산(龍岡山)이다.
용담향교는 옛지도와 현재의 위치가 다르다. 용담댐의 건설로 수몰지가 되면서 1998년에 동향면 능금리로 옮겨 지었다.
서쪽에 바위를 그리고 와룡암(臥龍巖)이라 적었다. 삼국지의 제갈량(諸葛亮)이 와룡이다.
이 이름을 따서 동리명이 와룡리다. 와룡암 옆 하천은 주자천(朱子川)이다. 성리학자 주희(朱熹)가 주자(朱子)다.
동쪽의 하천은 정자천(程子川)이다. 송나라의 학자 정명도(程明道), 정이천(程伊川) 형제를 이(二) 정자(程子)라고 부른다.
정자천 변에 안자동(顔子洞)이 보인다. 공자의 제자인 안회(顔回)가 안자(顔子)다. 읍치 장시(場市) 맞은편에는 소요대(逍遙坮)가 보인다.
용담댐으로 만들어진 인공호수 용담호가 들어선 지역은 옛날에는 용담현(龍潭縣)에 속했다. 용담(龍潭)은 지명부터 물과 관련이 있다.
1914년 일제강점기때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진안군으로 통합됐다
용담댐은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월계리, 금강 상류에 있으며, ‘용담다목적댐’이라고도 한다.
1990년에 착공해 2001년 10월 13일에 준공됐다. 높이 70m, 길이 498m, 총저수량 8억1,500만 톤의 콘크리트 차수벽형 석괴댐으로 총 공사비는 1조5,889억 원이 투입됐다.
주요시설로는 21.9 km의 도수터널과 도수터널 끝인 완주군 고산면에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가 있다. 용담호는 저수량 기준으로 소양호, 충주호, 대청호, 안동호에 이어 대한민국 5위이다.
용담댐이 만들어지면서 진안군 6개면 68개 마을이 물속에 잠겨 2,864세대 1만2,616명의 이주민이 발생했고, 이들은 인근 도시로 뿔뿔히 흩어졌다. 용담댐에서 나온 물은 전북과 충남지역 일부의 식수와 농수 공업용수로 사용되고 있다. 용담댐이 있는 용담호는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어 지역 관광 명소로도 유명하다.
'전북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관영 전북특별자치도 지사님이 13일 이종근 한국문화 스토리 작가 앞으로 축전을 보냈습니다. (0) | 2024.12.13 |
---|---|
용담현 지도 (0) | 2024.12.13 |
이종근, 27일 김제문화원과 호남문화콘텐츠연구원의 '임진왜란, 김제군수 정담과 김제의 의병' 학술세미나 지정 토론자 참여 (0) | 2024.12.11 |
전주 경기전의 취두(鷲頭) (2) | 2024.12.11 |
[전주대 홍보실] 전주대 이종근 동문, ‘2024년 국가유산보호 유공’ 대통령 표창 (0) | 2024.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