私版(사판)의 기록이 남아있는 전주와 서포
조선시대 전국에서 책을 찍을 때 만든 책판의 목록을 기록한 ‘冊板目錄’(책판목록)이 있다. 이 책판목록에서는 주로 관청에서 출판한 책판을 다루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1885년에 필사된 ‘完營客舍冊板目錄’(완영객사책판목록), 1778년경에 필사된 ‘各道冊板目錄’(각도책판목록), 1780년경 또는 1814년 이후 필사된 ‘冊板錄’(책판록) 등 몇 가지 책판목록에는 전주의 서점에서 출판한 책판의 목록을 ‘全州私板’(전주사판) 또는 ‘私板’(사판)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주의 경우에만 ‘私板’(사판)의 기록이 나오는데, 이 ‘私板’은 서점에서 책을 발간할 때 사용한 목판을 말하는 것이다.
1750년경에 쓰인 ‘諸道冊板錄’(제도책판록)에서는 구체적으로 ‘南門外 私板’(남문외 사판), ‘西門外 私板’(서문외 사판)으로 표시하고 있다. 전주의 ‘南門外’는 ‘남문밖’이나 ‘남밖’으로 불렸고, ‘西門外’는 ‘서문밖’으로 불렸다.
이 ‘私板’(사판)을 통하여, 이미 1700년대 초반에 전라도의 首府인 전주에 영리를 목적으로 사적인 출판을 하는 출판소가 존재한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책판 목록을 종합하면, 전주에서는 18세기에 이미 판매용으로 추정되는 책이 42종이 발간되었다.
家禮(가례), 講譜論語(강보논어), 講譜周易(강보주역), 九雲夢(구운몽), 論語大全(논어대전), 論語大全諺解(노어대전언해), 唐音(당음), 大學大全(대학대전), 大學大全諺解(대학대전언해), 東萊博議(동래박의), 童蒙先習(동몽선습), 杜律(두율), 禮記奎璧(예기규벽), 孟子大全(맹자대전), 孟子大全諺解(맹자대전언해), 史略(사략), 史要聚選(사요취선), 三經奎璧(삼경규벽), 三國志(삼국지), 三略(삼략), 喪禮抄(상례초), 書傳大全(서전대전), 書傳大全諺解(서전대전언해), 小學(소학), 小學大全諺解(소학대전언해), 詩傳大全(시전대전), 詩傳大全諺解(시전대전언해), 兒戱原覽(아희원람), 韻考(운고), 類合(유합), 剪燈新話(전등신화), 全韻玉篇(전운옥편), 周易大全(주역대전), 周易大全諺解(주역대전언해), 中庸大全(중용대전), 中庸大全諺解(중용대전언해), 中庸或問(중용혹문), 千字(천자), 草千字(초천자), 通鑑(통감), 寒喧箚錄(한훤차록), 訓義小學(훈의소학).
△서계서포, 칠서방, 다가서포, 문명서관, 완흥사서포, 창남서관, 양책방
‘南門外’(남문외)라는 이름에 해당하는 출판소는 ‘七書房’(칠서방)이 해당될 것이다. 칠서방은 사서삼경을 찍어내 전국적으로 유명한 출판사이다. 전주 칠서방의 고무도장에는 ‘全州 南門外 西天里/七書房/主 張在彦’(전주 남문외 서천리/칠서방/주 장재언)으로 칠서방이 고무인의 주소에 ‘南門外’로 나오고 있다.
‘西門外’(서문외)을 가리키는 서점으로는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인 ‘西溪書鋪’(서계서포)를 들 수 있다. 이미 여러 책의 간기에서 ‘西門外’가 보인다. 서계서포에서 사용한 고무도장에 ‘全州郡 西門外 石橋西邊/西溪書’/主卓鐘佶’(전주군 서문외 석교서변/서계서포/주 탁종길)이란 주소와 출판소, 주인 이름이 보인다.
‘少微家熟點校附音通鑑節要卷之十三’ 道光十一年(1831)辛卯八月日 西門外開板 崔永
‘喪禮初要’, 光武七年(1903) 癸卯秋 完山西門外 重刊
일반적으로 판매용 책인 완판방각본의 시작은 ‘童蒙先習’(동몽선습)으로 보고 그 발간연도를 1714년으로 보고 있다. 刊記(간행기록)에 ‘西門外’라고 쓰인 책들은 대체로 서계서포에서 발행한 책으로 이해된다. ‘서계서포’가 명시된 책들은 대체로 1800년대 초반과 중반에 많이 발간된 책들이다.
‘御定奎章全韻’ 西溪書鋪 1860년, 『簡牘精要』 西溪書鋪 1861년
전주의 최초의 서점인 ‘서계서포’에서는 1800년대부터 1911년까지 한글 고전소설인 ‘화룡도, 조웅전, 유충열전, 심청전, 초한전, 소대성전, 장풍운전, 열여춘향수절가, 이대봉전, 구운몽, 삼국지’ 등 17종의 고전소설을 찍어냈다. 이 서점에서 발간된 소설이 아닌 판매용 책은 21종에 이른다. 그리하여 광복 74년에 이르는 오늘날까지 대한민국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가장 많이 오른 소설은 판소리계 소설인 춘향전, 심청전, 토별가 등이다.
‘심청전’ 大韓光武十年丙午(1906) 孟春完西溪新刊
‘열여춘향슈졀가’ 完西溪書鋪
‘서계서포’와 ‘다가서포’를 중심으로 발간된 완판방각본 한글고전소설은 서울의 경판본과 비교되어 전국적으로 팔리게 되었다. 특히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은 판소리계 소설이 중심이 되었고, 영웅소설이 대부분이었다. 경판본과 비교하여 3배 정도의 분량이 많고 서사구조가 잘 짜여 있으며, 또한 전라도 사투리가 많이 들어 있어서 그 재미가 매우 풍부하였다.
전주 천변에 있던 ‘칠서방’에서는 七書(四書三經)를 비롯하여 32종의 판매용 책을 간행하였다. 여기서 사용한 七書 冊板은 1870년 전주의 河慶龍(하경룡)이 감영의 책판을 임대·소장하여 출판한 것이다. 이 ‘全州府 河慶龍 藏板’(전주부 하경룡 장판)의 간기를 갖는 책판은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매우 유명한 책판이다.
‘칠서방’은 서울의 ‘?東書館’(회동서관)과 함께 ‘大韓每日申報(1908년 07월 04일자)’에 최신 신간 서적광고를 냈다. 칠서방은 1908. 6. 6.부터 1908. 7. 19까지 ‘황성신문’에 32차례의 서적 광고를 냈다.
20세기 초, 일제의 간섭으로 판권지를 붙이게 되면서 구체적으로 출판소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 서점들은 서울, 대구 등 전국과 교류를 하는 매우 큰 출판사로 자리하고 있었다.
西溪書鋪 (서계서포, 탁종길, 1911), 多佳書鋪(다가서포, 양진태, 1916), 文明書館(문명서관, 양완득, 1911), 完興社書鋪(완흥사서포, 박경보, 1912), 昌南書館(창남서관, 장환순, 1916), 七書房(칠서방, 장환순, 1916), 梁冊房(양책방, 양승곤, 1932년)
전주가 ‘교육의 도시’로 일컬어진 것은 주로 희현당과 완판본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현재 전주시, 전주역사박물관, 전주완판본문화관, 전북대학교 등에 보관된 완판본 책을 매우 소중히 다루어야 할 것이다.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인 ‘서계서포’와 ‘칠서방’에서 발간한 책과 이 책방을 운영한 모든 사람들은 앞으로 전주문화를 이야기하는 데 필수적인 문화적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이태영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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