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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6> 전주비빔밥 역사와 가족회관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6> 전주비빔밥 역사와 가족회관 

전주비빔밥은 화반(花飯)이라 불린 만큼 고명이 화려할 뿐만 아니라 색깔의 조화는 물론이고, 영양적 균형, 나아가 음과 양의 조화까지 고려한 맛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흥행이 없었던 당시 사정으로는 장에서 볼 용건이 없어도 습관적으로 가는 사람이 있었다. 물건을 사고파는데 거간이나 붙이고 친구하고 어울려서 막걸리나 기울이면서 시름도 풀고, 세상 소문을 듣는 것이 목적이었으리라.… 음식점에 들르게 되면 널따란 양푼을 손에 받쳐 들고 옥쥔 숟가락 두 어께로 비빔밥을 비벼대는 장정을 보게 된다. 흥이 나면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빙빙 돌렸던 양푼을 허공에 빙빙 돌렸다가 다시 손으로 받쳐 들고 비벼대는 솜씨는 남밖장만이 가지고 있는 정경이었다. 당시엔 에누리하는 것도 하나의 낭만이요, 되쟁이 콧노래 솜씨에도 한시대의 낭만이 숨어 있었다.(‘완산 고을의 맥박’, pp.337-338)’

조병희의 ‘완산고을의 맥박’을 통해 남부시장의 전주비빔밥을 추론해 볼 수 있다. 그는 1920년대 남밖장의 정경과 전주비빔밥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남밖장은 오늘날의 남부시장을 말한다. 풍남문 바깥에 장이 형성되어 있어 남밖장으로 명명됐다.남부시장 전주천 건너에는 나무장사가, 남문밖 시장에서 풍남문으로 건너 오는 다리 아래에는 싸전이 형성됐다.

‘빙빙 돌리던 양푼이 허공에 빙빙 돌다가 다시 손으로 받쳐들고 비벼대기’ 때문에 ‘뱅뱅이 비빔밤’이라고 한다.

전주 풍남문 밖의 남부시장은 전라도 물산유통의 중심지였다. 조선조 관찰사가 집무하던 전라감영이 자리해 있어 상설점포나 보부상 등이 성행하였다. 사람들이 쉽게 끼니를 때 우면서도 빨리 만들 수 있는 국밥, 비빔밥이 시장음식으로 제격이었다.

인근에 우시장이 있어 전주 육회비빔밥도 유명했다.

현재 전주에는 한국집, 성미당, 고궁, 중앙회관, 한국관, 가족회관 등 내로라하는 비빔밥 전문식당이 성업중이다. 

이중 가장 오래된 곳이 1952년 문을 연 한국집. 이어 1960년대에 중앙회관(1960년)과 성미당(1965년)이 개업하고, 1970년대에는 한국관(1971년)과 고궁(1973년)이 차례로 그 대열에 합류했다.

1979년 문을 연 전주 가족회관은  전주음식명인 1호,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대한민국식품 명인 등 여러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전북지방중소벤처기업청 백년가게 현판을 걸게 된 ‘가족회관’은 전주 음식명인 1호인 1대 창업자와 현 대표자인 딸, 손녀까지 3대가 함께 한우물 경영 철학으로 운영, 전주를 대표하는 비빔밥 전문점으로 인정받고 있다.

양미 대표는 “전주의 식문화를 계승하고 전통음식으로써 널리 알리고자 노력한 보람을 느낀다”며 “어머니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백년의 역사를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양대표의 어머니 김년임 명인은 1979년 전라감영터 인근 중앙동에 '가족회관'이란 비빔밥 전문음식점을 개업해 전주비빔밥을 세계에 알리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