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규 판화가의 ‘아리랑 고개’전이 3월 14일부터 26일까지 전주한옥마을 갤러리 ‘향교길68’에서 열린다.
작품 대부분이 2022년과 2023년에 만든 신작으로, 판화와 채색화 등 20여점을 접하게 된다.
작가의 판화는 처음 보는 이에게도 낯설지 않다. 민주화 운동을 하고 사회 변화를 꿈꾸던 많은 시위 현장에서 깃발로 만들어지거나 걸개그림으로 사용됐다. 날카로운 칼날 속에 배어 있는 따스함이 사람들의 마음을 끈다. 특히 농민운동이 활발하던 1989년에 만든 ‘삼천리 방방골골 농민의 깃발이여...’라는 작품은 지금도 전국 농민회 대부분의 사무실에 걸려 있는 명작. 농민들이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깃발을 나부끼며 경운기를 타고 나아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농민 운동의 상징이 됐다.
그는 몇 해 전 목판이 모두 불타는 모진 아픔을 겪었다. 한동안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그 아픔을 딛고 새롭게 작업에 매진했고, 이번에 그 결과물들이 모아진 것이다.
작가의 작품이 강한 서정성을 품게 된 것은 이 사건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민중과 동학에 천착했던 벽을 깨고 나와 보다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게 된다. 그 투쟁의 바탕이 됐던 자신의 내면세계에 더욱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 전시 작품들의 제목부터 서정적이다. ‘바람 부는 보리밭, 내 청춘의 비망록’ ‘새 세상을 여는 사람들’ ‘아리랑 고개’ ‘저녁강’ ‘한 밤에 내리는 눈송이’ 등... 그의 ‘칼’은 투쟁의 도구를 넘어 인간의 보편적 정서인 서정을 조각해 내고 있다.
그는 지난 40년을 농민들 속에서 살았다. 고추수매, 수세투쟁, 한미FTA 등 농민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현수막과 걸개그림이 필요했고, 그는 자신의 숙명처럼 그 일을 수행했다. 그가 몸담았던 부여농민회 뿐 아니라 전국농민회의 시위 현장에서 그의 작품은 기치가 됐다.
작가는 이번 전시 타이틀을 ‘아리랑 고개“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리랑은 봉건시대를 타파하고 근대로 진출하는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조선 민중의 집단 창작가요"라며 “아리랑고개를 떠난 님은 다시 고개를 넘어오지 못한다. 고개는 열두 구비, 구비마다 한이 쌓이고 절망과 희망이 교차한다. 우리는 마지막 열세 구비를 힘겹게 넘어가는 중”이라고 의미를 붙였다.
작가는 1959년 부안 출생으로 홍익대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했다. 1999년 전주우진문화회관에서 개인전 ‘들에서 여의도까지’를 비롯, 지난해 광주 오월미술관에서 가진 ‘혁명도 순정이다’ 등 많은 전시에 참여했다. 그는 전북문화저널 편집위원 및 만평을 연재했고, 고 정광훈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추모 그림도 제작했다. 전북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대전도 참여했다. 2013년에는 국회 ‘빈집의 꿈’ 초대전을 열었다. 지금도 농민 관련 신문에 만평을 연재하고 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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