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변화 중 가장 스펙터클한 것이 봄이다. 변화라는 것은 위기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봄이 주는 변화는 어쩐지 위기보다는 희망이다. 연초에 짰던 야심 찬 계획도 수정하고 햇빛도 제법 고와지니 슬슬 배가본드의 인생 여행의 시작이다. 봄날의 열병이 길 떠나는 여행자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상상 속 여정의 미래는 늘 파라다이스다. 진흙탕 길을 걸어야 하는 건 계획 속에 없다. 시작은 늘 이렇게 창대했다.
프랑스 농민들의 고단한 일상을 그린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의 스토리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사짓고 살다가 화가가 됐으니 그의 작품은 진실한 경험의 산물이다. 밀레 그림의 독창성은 개인적 주체로서 성스럽고 소박한 농민이다.
작품 속 농부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리다 못해 쓰리다. 노동으로 축 처진 어깨 위에 내리는 처연한 석양빛조차 너무도 엄숙하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정녕 온단 말인가. 현실을 뒤로하고 두 손 모아 드리는 기도, 이처럼 평안한 위로가 세상 어디에 또 있으리...
밀레의 ‘만종’은 참으로 위대하고 장엄한 한 편의 서사시다. 녹록지 않은 삶 속에 주인공으로 당당할 수 있는 건 인간으로서 자존감이다. 밀레의 농민과의 동일시는 계급적 평등의 존귀함으로 귀결된다. 찰나의 정적이 느껴지는 평화의 엑스터시가 바로 그것이다. 지면의 작품은 그가 말년에 그린 풍경화 ‘봄’이다. 힘든 노동도, 빈부 격차도 뒤로 하고 이토록 빛나는 보석 같은 봄이라니... 봄은 현실의 고단함을 잊게 하는 샹그릴라다. 흙냄새 물씬 나는 채소밭 사이로 흐드러지게 핀 사과꽃이 눈부시다. 황금색 햇살이 쏟아지는 들판 너머엔 쌍무지개가 떴다. 방금 소나기가 지나간 모양이다. 언덕의 풍성한 숲은 지난 시절 노력의 산물이다.
인풋 없는 아웃풋은 없다. 신은 언제나 공평하게 정확한 결산을 한다. 엄정하고 객관적이며 동정적이지도 않다. 신성한 노동의 합리적 대가는 노동자의 기본 권리다. 사회적 지위 따위는 부차적이다. 빛나는 사과꽃도 부지런한 농부의 보살핌으로 풍성한 결실을 보겠지. 비를 피해 나무 아래 머무는 성실한 농부는 휴식도 잠깐이다. 데이지꽃이 핀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밀레의 인생 여정이 보인다. 농부에게 존엄과 영속성을 부여한 그는 작품 안에서 주연배우가 되었다.
긴 겨울이 지나고 맞이하는 봄은 늘 설렘으로 다가온다. 삶의 봄을 수없이 보냈지만, 다시 오는 봄은 지나간 봄과는 다를 것을 기대한다. 진지하게 봄이 열리는 광경은 죽었다가 살아나는 부활의 시간이다. 그러니 봄이 되면 우리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는 죽은 자에게도 봄이 온다고 하지 않는가.
프라하의 봄이 그랬고 서울의 봄도 그랬다. 억압받은 희망이 강렬하게 살아나는 것이 봄이다. 고통의 성장통은 세상 공부의 필수과목이다. 화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야 하는 특별한 임무가 있다. 인간의 무한함이나 영혼의 쉼터, 행복하거나 불행한 인간의 운명 같은 것들을 승화시켜야 하는 의무들이다.
밀레의 봄에는 삶의 궁핍함이나 초라함이 없다. 축복이 가득한 영광이 있는 곳, 우리도 이런 풍경 하나는 안고 살고 있지 않을까. 유년의 향수가 있는 피안의 유토피아다. 용서가 안 되는 기억들도 내가 나를 용서하듯 기꺼이 화해하고 저 남쪽에 핀 매화나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고 싶다. 내일모레가 입춘이다./화가 김스미
프랑스 농민들의 고단한 일상을 그린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의 스토리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사짓고 살다가 화가가 됐으니 그의 작품은 진실한 경험의 산물이다. 밀레 그림의 독창성은 개인적 주체로서 성스럽고 소박한 농민이다.
작품 속 농부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리다 못해 쓰리다. 노동으로 축 처진 어깨 위에 내리는 처연한 석양빛조차 너무도 엄숙하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정녕 온단 말인가. 현실을 뒤로하고 두 손 모아 드리는 기도, 이처럼 평안한 위로가 세상 어디에 또 있으리...
밀레의 ‘만종’은 참으로 위대하고 장엄한 한 편의 서사시다. 녹록지 않은 삶 속에 주인공으로 당당할 수 있는 건 인간으로서 자존감이다. 밀레의 농민과의 동일시는 계급적 평등의 존귀함으로 귀결된다. 찰나의 정적이 느껴지는 평화의 엑스터시가 바로 그것이다. 지면의 작품은 그가 말년에 그린 풍경화 ‘봄’이다. 힘든 노동도, 빈부 격차도 뒤로 하고 이토록 빛나는 보석 같은 봄이라니... 봄은 현실의 고단함을 잊게 하는 샹그릴라다. 흙냄새 물씬 나는 채소밭 사이로 흐드러지게 핀 사과꽃이 눈부시다. 황금색 햇살이 쏟아지는 들판 너머엔 쌍무지개가 떴다. 방금 소나기가 지나간 모양이다. 언덕의 풍성한 숲은 지난 시절 노력의 산물이다.
인풋 없는 아웃풋은 없다. 신은 언제나 공평하게 정확한 결산을 한다. 엄정하고 객관적이며 동정적이지도 않다. 신성한 노동의 합리적 대가는 노동자의 기본 권리다. 사회적 지위 따위는 부차적이다. 빛나는 사과꽃도 부지런한 농부의 보살핌으로 풍성한 결실을 보겠지. 비를 피해 나무 아래 머무는 성실한 농부는 휴식도 잠깐이다. 데이지꽃이 핀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밀레의 인생 여정이 보인다. 농부에게 존엄과 영속성을 부여한 그는 작품 안에서 주연배우가 되었다.
긴 겨울이 지나고 맞이하는 봄은 늘 설렘으로 다가온다. 삶의 봄을 수없이 보냈지만, 다시 오는 봄은 지나간 봄과는 다를 것을 기대한다. 진지하게 봄이 열리는 광경은 죽었다가 살아나는 부활의 시간이다. 그러니 봄이 되면 우리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는 죽은 자에게도 봄이 온다고 하지 않는가.
프라하의 봄이 그랬고 서울의 봄도 그랬다. 억압받은 희망이 강렬하게 살아나는 것이 봄이다. 고통의 성장통은 세상 공부의 필수과목이다. 화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야 하는 특별한 임무가 있다. 인간의 무한함이나 영혼의 쉼터, 행복하거나 불행한 인간의 운명 같은 것들을 승화시켜야 하는 의무들이다.
밀레의 봄에는 삶의 궁핍함이나 초라함이 없다. 축복이 가득한 영광이 있는 곳, 우리도 이런 풍경 하나는 안고 살고 있지 않을까. 유년의 향수가 있는 피안의 유토피아다. 용서가 안 되는 기억들도 내가 나를 용서하듯 기꺼이 화해하고 저 남쪽에 핀 매화나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고 싶다. 내일모레가 입춘이다./화가 김스미
사진설명:'Le Printemps' 1868-1873, 유화, 86x111cm, 파리 오르세미술관
'김스미의 미술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전북신문> 연재물, [김스미의 미술산책] <7>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0) | 2023.02.15 |
---|---|
<새전북신문 연재물> [김스미의 미술산책] 6. 김환기의 ‘섬 이야기’ (0) | 2023.02.08 |
<새전북신문 연재물> [김스미의 미술산책] 4. 박수근의 ‘나무와 두 여인’ (0) | 2023.01.25 |
<새전북신문 연재물> [김스미의 미술산책] 3. 배운성의 ‘가족도’ (0) | 2023.01.18 |
<새전북신문 새 연재물> [김스미의 미술산책] 2.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별이 빛나는 밤’ (0) | 2023.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