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 전주객사에서 회포를 쓰다'
전주시는 조선시대 객사인 전주 풍패지관(대한민국 보물 제583호)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고려시대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구를 확인했다. 고려시대 객사의 존재가 확인된 것은 강릉 임영관터를 제외하고는 알려진 사례가 극히 드물다.
전주객사가 고려시대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문헌기록으로는 고려시대 문신이었던 이규보가 전주목의 관리로 부임했을 때인 1199~1200년 무렵 전주객사를 배경으로 지은 시문집 '동국이상국집'에 전해지고 있다. 이 기록을 참조하더라도 전주객사는 적어도 1199년(고려 명종 25년)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는 '동국이상국전집' 제9권에 '전주 객사(全州客舍)에서 밤에 자다가 편협한 회포를 쓰다'를 창작했다.
'남자라면 다같이 고생과 영광이 있건만(一般男子有枯榮)
가슴속에 쌓인 덩이 모두 불평뿐이네(堆阜撑胸意未平)
종일토록 영중에 무릎 꿇고(盡日營中猶曲膝)
날이 새면 창 밖에 나가 스스로 호명하네(五更窓外自呼名)
여러 차례의 광언 눈썹을 지지고 싶고(狂言屢發眉堪炙)
편협한 분개 사라질 수 없어 병이 생기려 하네(褊憤難消癭欲生)
백 가지로 잘못을 찾아보지만 굽힐 수 없나니(百計覓瘢難屈處)
이 마음 길이 물과 같이 맑다오(寸心長共水爭淸)'
그는 마령 객사에서도 시를 지었다.
'십일월 이십일에 속군(屬郡)인 마령 객사(馬靈客舍)에서 유숙하였는데 중대당두(重臺堂頭)가 술을 가지고 왔으므로 시를 지어 주다.
쓸쓸한 옛고을 산 밑에 있는데(蕭條古縣枕山根)
대하는 사람이란 원숭이 모양의 아전일세(只對村胥貌似猿)
그대를 한번 만나 시주회를 만드니(一見暫開詩酒會)
청신한 이야기 공무에 시달림 씻노라(淸談聊洗簿書昏)
찬 구름 뭉게뭉게 송함에 침노하고(寒雲苒苒侵松檻)
눈 내리는 소소한 소리 죽헌에 들리네(乾雪騷騷響竹軒)
술 마신 뒤 함께 몽정록을 맛보며(飮罷共嘗蒙頂綠)
포단에 둥글게 앉아 말마저 잊노라(蒱團櫱坐旋忘言)'
부안의 객사에서 지은 시가 전하고 있다. 부령 객사(扶寧客舍)에서 판상(板上)에 있는 좨주 이순우(李純佑)의 시에 차운하다'엔,
'청명한 강산 영주 봉래와 같으니(江山淸勝敵瀛蓬)
옥을 묶어 세운 듯 은을 녹여 만든 듯 만고에 변함 없네(立玉鎔銀萬古同)
풍속은 으레 연자 같은 것 많고(習俗例多如蜒子)
잠총부터 시작된 고을 이름 누가 믿으랴(縣封誰信自蠶叢)
바람 피하려는 파리한 종놈 바위 밑에 숨고(避風羸僕投巖下)
눈을 싫어하는 굶은 새 난간에 날아든다(厭雪飢禽落檻中)
근년에 와서 정미가 없어진 것이지(只是年來情味薄)
원래에 예쁜 여색 싫어하는 것 아닐세(元非不愛眼前紅)'
그는 말 위에서 시를 쓰는 천재시인이었다.
'십이월 어느 날 작목(斫木)하러 가면서 처음으로 부령군(扶寧郡) 변산(邊山)에 갔다가 그때 마상(馬上)에서 짓다 2수
호위군 인솔하니 영광을 자랑할 만하지만(權在擁軍榮可詫)
작목관이라 부르니 수치스럽기만 하네(官呼斫木辱堪知)
작목사(斫木使)라고 부르므로 한 말이다.(呼爲斫木使故云)
변산은 예부터 천부라 일컫는데(邊山自古稱天府)
좋은 재목 가리어 동량으로 쓰리라(好揀長村備棟欀)
고각 소리 한번에 새들도 놀라고(一聲鼓角鳥驚飛)
병객이라 옷속에 스며드는 찬 바람 무섭고나(病㥘寒威裂厚衣)
안천에서 행차 머물러 쌓인 눈 구경하고(駐蓋雁川觀雪漲)
견포에선 안장 풀고 조수 물러갈 때 기다리네(卸鞍犬浦待朝歸)'
'구월 이십삼일에 전주로 들어가면서 마상(馬上)에서 회포를 쓰다
북당에서 눈물 뿌리며 어버이를 작별하니(北堂揮涕忍辭親)
어머니 모시고 직소에 나간 옛사람에 부끄러워(輦母之官愧古人)
갑자기 완산의 푸른 빛 한 점 보니(忽見完山靑一點)
타향인이 된 몸 비로소 알겠구나(始知眞箇異鄕身)/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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