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천년, 죽어 천년' 소나무, 오동나무, 먹감나무, 느티나무, 회화나무 등 이들은 어느 곳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나무들이며, 목가구를 만들 때 꼭 필요했던 나무가 살아 있을 때의 이름이다. 살아 천년 삶을 마친 나무는 이름 모를 소목의 손에서 또 다른 삶을 부여받으니 선학들은 이를 목가구, 목물, 목기라 불렀으며, 반닫이, 장, 농, 서안, 문갑, 찬장, 소반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죽어 천년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1928년 <별건곤> 12호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횡(橫)으로 본 조선의 미’ 라는 글에 보면 ‘전주로 가서 만경대를 구경한 후 김제 만경의 대 평야를 건너 정읍 내장산에 오면 호남의 별풍경이라, 장성을 지나 나주소반에 점심 먹고 광주 무등산에 오르면…’ 이라고 나온다. 소반은 조그마한 밥상을 말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아담한 소반 위에 농익은 술 한 잔을 곁들이면 조선 팔도 아름답지 않은 곳도 없을 터이다.
목가구는 지역마다 개성을 갖고 있다. 평안도의 박천, 경기도의 강화와 개성, 전라도의 전주와 나주, 경상도의 예천과 밀양, 통영의 반닫이가 지역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한옥의 사랑방이나 대청에 있는 직사각형 궤(櫃)인 반닫이. 전라도반닫이엔 영광반닫이, 장흥반닫이, 나주반닫이, 여수반닫이, 익산(이리)반닫이, 남원반닫이 등이 있다. 남원반닫이는 호리병 경첩이다. 그 형태가 다양한데 대표적으로 상단은 호리병 모양을 갖추고 있고, 하단은 연꽃이 호리병을 감싼듯한 것과 좌대 위에 호리병을 올려놓은 듯한 형태가 있다. 장은 통영장과 전주장이 대표적이다. 통영은 조선 선조 때부터 감영 안에 열두 공방을 운영했다. 문양 장식이 없고 동자와 쇠목을 위로 튀어나오지 않게 제작한 민장농이 통영의 대표적인 장이다.
전주는 호남 지역의 행정과 군사의 중심이면서 김제평야와 만경평야가 자리, 좋은 가구를 구입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었다. 전주장은 쥐벽칸과 머름칸을 배치하지 않고 측널이 바닥까지 내려와 전체 하중을 지탱해주는 다리의 기능도 겸한 까닭에 매우 안정감 있으면서도 남성미가 넘쳐났으며 머릿장과 서랍, 머릿장과 반닫이, 반닫이와 문갑으로 한 조를 이루는 이중 구조와 형태를 띠고 있다. 특히 하나의 목가구로 다기능을 하도록 구조화 되어 있는 가운데 ‘음양(陰陽) 화합’의 극치를 보인다. 음양이 조화되면 남녀가 서로 좋아하게 되는 것처럼 나무의 화합 역시 제대로 이루어져 ‘한 살’(한 몸)이 되어야 아름다운 가구가 된다. 못 하나 사용하지 않고 나무에 홈을 파서 끼워 넣는 결구법으로 만드는 전주 가구는 못이라는 강제에 의해서가 아닌, 나무끼리 서로 얽혀 하나가 된 결과다. 상생과 조화의 백미를 보이는 전주비빔밥처럼 말이다. ‘전주장(全州欌)’ 박물관 또는 체험관이 필요한 까닭이다.
/이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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