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소 그림 하면 흔히 이중섭을 떠올리지만 진환(본명 진기용, 1913~1951)이라는 화가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1930~1940년대 화가 이중섭(1916~1956)·이쾌대(1913~1965)와 동인으로 활동했지만 진환은 근대미술사에서 “그 존재조차 심연 속에 매몰된” 비운의 화가였기 때문이다.
해방 후 진환의 부친이 고향에 설립한 고창 무장농업중학교(현 영선중고등학교) 초대 교장, 홍익대 미대 초대 교수를 지내다 전쟁을 맞아, 1951년 1·4후퇴 때 고향 인근에서 마을 의용군의 오인 사격으로 생(生)을 마감했다.
1951년, 38세에 세상을 떠나기 전 화가로 활동한 기간도 15년도 채 안 될 정도로 짧았다.
고창엔 진환이란 비운의 화가가 있었다. 시쳇말로 억세게 운이 없었다. 죽음 자체가 허망하기만 했다.
1951년 1·4 후퇴 때다. 서울 홍익대 미술학부 초대 교수로 있던 그는 고향인 고창으로 피난길에 나섰다. 고생고생 고향 산자락에 도착한 그는 갑자기 날아온 총알을 맞고 쓰러졌다. 전쟁 전 교장으로 재직한 무장농업중학교(현재 영선중고교)에서 가르쳤던 제자가 그를 빨치산으로 오인하고 방아쇠를 당겼던 것이다. 서른여덟, 창창한 나이였다. 동족상잔의 쓰디쓴 비극이다.
어린 시절 진환의 두 살 아래 고향 친구가 미당 서정주(1915~2000)였다. 미당은 진환의 덧없는 최후를 애달파했다. ‘진환을 추모한다’는 글을 썼다.
‘유난히도 시골 소의 여러 모습들을 그리기를 즐겨 매양 그걸 그리며 미소 짓고 있던 그대였으니, 죽음도 그 유순키만한 시골 소가 어느 때 문득 뜻하지 않게 도살되는 듯한 그런 죽음을 골라서 택했던 것인가?’
그는 일제 말기 한국의 많은 화가들은 우직한 소를 그리며 나라 잃은 아픔을 형상화했다.
'몸뚱아리는 비바람에 씻기어 바위와 같이 (중략) 둔한 눈방울, 힘찬 두 뿔, 조용한 동작, 꼬리는 비룡처럼 꿈을 싣고 아름답고 인동(忍冬)넝쿨처럼 엉크러진 목덜미의 주름살은 현실의 생활에 기억이었다'
그가 생전에 쓴 ‘소의 일기’ 중 일부다.
진환에게 '소는 민족현실을 상징하는 동시에 강인한 민족성을 구현하는 핵심적인 이미지'였다. 진환이 그린 ‘천도의 아이들’도 눈길을 끈다. 이중섭의 그림과 여러 면에서 닮았다. 근대미술사 연구자들이 이중섭과 진환의 영향관계에 대해 더욱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그가 남긴 작품 또한 몇 십 점에 불과하다. 작품 대부분이 유실돼 유작은 유화 8점과 수채화 및 드로잉 등 30여점이 전부이다.
10일,그가 남긴 작품 또한 몇 십 점에 불과하다. 작품 대부분이 유실돼 유작은 유화 8점과 수채화 및 드로잉 등 30여점이 전부이다. ‘잊혀진 화가’ 진환과 처음 마주쳤다. 미당이 추모했듯 진환의 소 그림 4 점이 나왔다.
‘소의 작가’ 하면 흔히 이중섭(1916~56)을 떠올리지만 진환 또한 그에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소에 집중한 화가였다. 소가 또 다른 자아(alter ego)인 것마냥 붙들고 살았다.
'소(沼)'는 1942년, '천도와 아이들'은 1940년, '연기와 소'는 1930~1940년, '길과 아이들'은 1940년의 작품이다.
'천도와 아이들'은 인물과 꽃, 복숭아나무 등을 도식화하여 그려낸 작품에는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자연의 모습이 꿈속의 동화처럼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캔버스조차 구하지 못한 거무죽죽한 마포와 같은 그의 가난 위에 아이들의 꿈과같은 크레파스로 화가는 희망을 그렸다.
등을 대준 아이가 미소를 짓고, 등을 밟은 아이가 찡그리는 투명한 봉활을 창공에 날리우는, 수박만한 복숭아를 배어무는 발가숭이 아이들의 웃음마냥 커다란 꽃이 제멋대로 피어 있는 희망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진환은‘소’를 주제로 한 작품이외에도 꽃나무와 물고기, 복숭아나무, 새, 벌거벗은 아이들 등의 작품들도 적은 숫자이긴 하지만 몇 점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정읍시립미술관은 7일부터 12월 12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으로 구성된 기획전시 '한국미술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연다.
이번 전시는 193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큰 줄기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다.
국가등록 문화재로 지정된 '남향집' 작가 오지호를 비롯, 도상봉, 김기창, 이중섭, 변월룡, 장욱진, 김환기, 이우환, 곽인식, 김구림, 이강소, 진환 등 한국 대표작가 45명의 작품 60여 점이 출품된다.
전북 관련 출신 작가의 작품으론, 송수남, 윤명로, 박래현, 이응노, 임옥상, 이건용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흥재 명예관장은 “국립현대미술과의 이건희 컬렉션이 전회 매진되는 상황에서 정읍에서도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김환기·오지호·이중섭 등 한국 근현대미술사 획은 그은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위로와 힐링의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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