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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군 전설<구가호 등>


[1] 걸치기재와 쉰질바위

‘소릿길’이라고 불리었던 걸치기재는 옛날 이서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으로서 고개

가 하도 가파르고 험하여, 먼 길에 지친 나그네들이, 잠시 무거운 발걸음을 쉬었다

가는 곳이었다. 이 고개에는 다음과 같은 애달픈 사연이 깃든 전설이 전해 지고 있

다. 아주 오랜 옛날 이서면이 바다였을 때의 일이다. 당시 모악산에 쉰질바위가 있

었는데 이 쉰질바위는 그 당시 배를 대는 곳이었다.

햇볕이 따사롭게 내려 쪼이던 어느 봄날, 하늘나라에서 수십명의 선녀와 선관들이

모악산에 내려와 배를타고 하루를 즐겼다. 쉰질바위를 떠나 뱃놀이를 하던 선녀와

선관들은 그만 걸치기재에 부딪혀 배가 전복되는 바람에 모두 물에 빠져죽고 말았

다. 한꺼번에 수십 명의 선녀와 선관들을 잃은 옥황상제의 슬픔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며칠을 두고 슬퍼하던 옥황상제는 이사고가 이서면의 바다에서 일어났고,

또한 걸치기재가 높이 솟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단정해서 당장 이곳의 바닷물을 모

두 서해로 쫓아버리고 걸치기재도 깎아 버렸다고 한다. 그리하여 걸치기재는 자그

마한 구릉으로 변해 버렸지만 과거의 찬란하고 위풍당당 했던 시절을 잊지못해 다

시 솟을 날만 기다린다고 전해진다.

[2] 구가호

완주군 고산면 오산리에 구석린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너무도 효성이 지극하

여 마을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아왔다. 구석린은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6년 동안

시묘(侍墓)를 하여, 세상 사람들이 그 지극한 효성에 감복 했다. 구석린의 이 같은

효성에 호랑이도 감탄하여 구석린을 지켜주게 돠었는데, 겨울이 되어 날씨가 추워

지면 호랑이가 나타나 추위에 떨고 있는 구석린을 품어 안아 추위를 녹여주었다.

시묘 6년동안 호랑이와 구석린은 같이 살다시피 했다. 그러던 어느날 하루는 호랑

이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구석린을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않자 자기도 모르게

사르르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에 호랑이가 나타나 웅덩이에 빠져 죽을 지경이니,

빨리 살려 달라는 것이었다. 구석린은 깜짝 놀라 잠을깨 꿈에서 본 40여리나 되는

곳을 찾아가보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 대창으로 호랑이를 찔러 죽이려하고 있었다.

구석린은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이 호랑이는 나와같이 사는 호랑이이니 죽이지 말아 달라"

고 애원하니 사람들이 말하기를,

"같이 있는 호랑이라면 웅덩이 속으로 들어가 끌어 내어라"

고 하여, 구석린은 웅덩이로 들어가 호랑이를 무사히 구할 수 있었다. 호랑이는 구

석린이 6년동안 시묘하고 있을 때는 계속 함께 살았으나, 6년이 끝나자 마자 어딘

가로 사라져 버리고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사실을 늦게야 알게된 고산현감이 조정

에 상소하니 상감이 말하기를,

"사람의 성씨가 어찌 원수구자(仇)란 말이냐?" 라며 구(具)씨로 바꾸라며 구(具)자

를 하사하여 구석린(具錫麟)으로 부르게 되었으며, 그의 효성을 높이 평가하여 정

문(旌門)을 세워 본받게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3] 며느리의 방귀

옛날 어느고을에 농사꾼의 막내딸이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예쁘게는 생겼지만 방

귀를 잘 뀌었다. 시집갈 나이가 되어 건너 마을에 사는 이참봉의 큰 며느리로 시집

을 갔다. 그 며느리가 3년간 시부모를 잘 섬기고 남편 봉양을 잘하였므로, 그 동네

에서 칭찬이 자자해, 이참봉도 퍽 만족해 했다. 그런데 이참봉이 하루는 큰 며느리

의 안색을 보더니,

"얘 새아가, 어째 그리 안색이 나쁘냐? 마땅찮은 것이나 불편한 일이라도 있으면

말을 하고, 어디가 아프면 약을 지어 먹도록 해라"

라고 하였다. 그러자 며느리는,

"아버님 그런 것이 아니옵니다. 사실은 제가 방귀를 참으니까 안색이 이런가 봐요"

하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웬 방귀를 못 뀌어서 안색이 나쁘다는 말이냐? 방귀는 염려말고 퉁퉁뀌도록 해라.

어디 얼굴색이 쓰겠느냐?"

하고 시아버지가 말했다. 그랬더니 시아버지가 말도 끝내기도 전에,

"그럼, 방귀를 뀌렵니다. 아버님은 큰 방문을 잡으시고, 어머님은 대청문을 잡으시

고, 시누님은 부엌문을 잡으세요. 그리고 또 서방님은 작은 방문을 잡으시고, 머슴

은 대문을 잡아요"

라고 소리치고 나더니, 대청 가운데 서서 방귀를 뀌기 시작하자, 시아버지는 큰 방

을 잡고 들락날락,시어머니는 대청문을 잡고 들락날락, 부엌에서 시누이가 들락날

락, 서방님은 작은방에서 들락날락, 머슴은 대문에서 들락날락 했다.

시아버지가 견디다 못해,

"새아가, 그만 뀌어라"

고 하자, 모두 그만 뀌라는 소리와 들락날락하는 소리가 합쳐서, 집안에 소동이 일

어났다. 그래도 며느리는 3년동안 참았던 방귀를 전부 뀐다고 소리치며 계속 방귀

를 뀌다가 한참 만에야 그쳤다. 여기 저기서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하

여 며느리를 데리고 있다간 큰 일 나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친정에 보내기로 했다.

며느리를 가마에 태워 앞세우고, 이참봉은 뒤를 따라가다가 배나무밑에서 쉬게 되

었다. 그런데 그옆에 나뭇짐을 진 장사꾼들이 와 쉬고 있었다. 그들이 하는 말이,

"이 나무에 달린 배는 만병통치의 약배인데, 이 나무가 어찌나 드 높든지 작대기가

안 닿고 사람이 올라 가자니 너무커서 손에 잡히는게 없으니...그러니 배는 겨울이

되면 나무에 달린 채 썩어 버린단 말야. 그리고 지금 임금님께서 앓아 누워 계시는

데 이 배를 세 개만 잡수시면 나을 것이야"

라는 얘기를 했다. 이 말을 가마안에서 며느리가 듣고, 시아버지 앞에 나가서 공손

히 말하기를,

"아버님, 제가 배를 따 보겠으니 저만큼 비켜 나십시오"

하고 가마꾼들에게도 짐을 옮기라고 하고 배나무에 대고 방귀를 뀌자 난데없이 우

박이 떨어지는 것처럼 배가 우르르 떨어졌다.이참봉은 그 약배를 임금님께 바치고

며느리도 그 약배를 먹고 방귀뀌는 것도 그치게 되었다. 그 뒤로 온 식구가 화목하

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4] 꾀 많은 미녀

어느 시골에 예쁘기로 소문난 처녀가 있었는데, 갑자기 부모를 잃고, 혼자 살게 되

었다. 인물 좋고 솜씨 좋은 처녀였으니 자연 여러 곳에서 청혼이 들어왔으나 그 처

녀는 부모의 3년상이 끝날때까지는 시집을 갈 생각이 전혀 없다고 거절했다. 그런

어느 날 한 사나이가 그녀를 찾아와 온갖 선심을 다 써가면서 꾀어 보았으나, 그녀

는 쳐다 보지도 않았다. 화가 난 사나이는 위협까지 했으나, 그녀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최후 수단으로 밤 중에 찾아 가서 강제로라도 제 아내로 삼아

보겠다고 결심했다. 사나이의 속셈을 미리 알아낸 처녀도 궁리끝에 한꾀를 생각해

냈다. 큰게를 물동이에 넣고 아궁이에는 밤을 묻어 놓았다. 그리고 다시 뜰에서 개

똥을 잔뜩 주워다 놓고 대들보에는 절구통을 달아 매 두었다. 마당엔 멍석을 펴 두

고 그옆엔 지게를 놓아 두었다. 드디어 밤이 되었다. 비치던 달빛마저 구름에 가리

우고 사방이 고요해지자 사나이는 사립문을 슬그머니 열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잠

시 후 방문을 열려고 했으나, 처녀는 문고리를 잠그고 열지를 않았다. 사나이는 완

력을 써서 문고리를 빼고 방으로 들어 갔다. 처녀도 이제는 어쩔수 없게 되었다.

사나이는 그녀의 몸을 덮치려 했다. 그녀는 나직한 목소리로 사정을 했다.

"당신이 내 얼굴이 고운데 반해서라면 불을 밝히고 내 얼굴을 보아야 할 것이 아녜

요"

라고 속삭였다. 사나이는 과연 그렇다고 생각하면서 성냥이 어디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성냥은없고 부엌아궁이에 불씨가 있다고 말했다. 사나이는 불을 밝히기 위

해서 아궁이로 가서 불씨를 뒤적이며, 입으로는 바람을 불어 넣었다. 이 순간 잿속

에 묻어 두었던 밤알이 탁!하고 튀는 바람에 사나이는 눈을 얻어맞고 말았다. 그리

고 온통 잿가루로 뒤범벅이 되었다. 장부는 갑작스런 일에 놀랐을 뿐 아니라, 눈이

멀었고 얼굴이 화끈거려 견딜 수 없었다. 사나이는 어둠 속에서 물동이를 찾았다.

찬물로 씻으면 뜨거운 기운이 없어질 것 같아서 두손으로 부뚜막을 더듬자 물동이

가 손에 닿았다 그래서 물을 푸려고 손을 넣는순간 게란 놈이 손가락을 꽉 물었다.

"어이쿠!"

하면서 견딜 수 없는 아픔에 펄쩍 뛰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리고는 한 걸음에 도

망쳤다고 하는 처녀의 지혜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5] 방귀 시합

옛날 한때 팔도에서 방귀를 잘뀌는 사람으로, 경상도 방귀쟁이와 전라도 방귀쟁이

가 이름나 있었다. 어느날 전라도 방귀쟁이는 이왕이면 팔도에서 제일가는 방귀쟁

이가 되려고 경상도까지 원정시합을 나섰다. 먼길을 걸어서 경상도 방귀쟁이네 집

을 찾아가 보니, 주인은 마침 장에가고 없었다. 전라도 방귀쟁이가 보니 경상도 방

귀쟁이네 집은 초가집 오막살이였다. 언뜻 생각에 방귀를 세게뀌는 놈이라면 이러

한 집이 지탱할수 없을 것인데, 집이 초라한 것으로 미루어 대단한 놈도 아닌데 공

연히 먼 길을 와서 싱겁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연습 삼아 방귀를 한방 뀌

었더니, 경상도 방귀쟁이의 초가집이 온데 간데 없이 날아 가고 말았다. 경상도 방

귀쟁이는 장에서 일을 보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보니, 집이 온데 간데가 없었다.

마을사람들의 입을통해서 사연을 알아차린 경상도 방귀쟁이는 매우 화가 났다. 보

복을 하기로 결심한 경상도 방귀쟁이는 마을에서 제일 크고 무거운 돌절구통을 가

져다 궁둥이에 대고 서쪽 전라도를 향해서 방귀를 한 방 크게 뀌니 그 육중한 절구

통은 하늘 높이 솟아 지리산 꼭대기를 넘어 전라도 쪽으로 날아 갔다. 전라도 방귀

쟁이는 이제는 제가 전국에서 제일 가는 방귀쟁이라는 기쁨에서, 득의만만하여 집

으로 돌아 오다가, 막 담배를 피우려고 하는데, 뜻밖에도 동쪽 경상도 쪽 하늘에서

돌절구통이 날아와 이마위에 떨어지려 하였다. 순간 재빨리 돌아선 전라도 방귀쟁

이는 동쪽 하늘을 향해서 방귀를 한방뀌니 날아오던 절구통은 방향을 바꿔 경상도

쪽을 향해서 지리산을 넘어 되돌아 갔다. 경상도 방귀쟁이는 그 녀석이 필히 돌 절

구통에 얻어 맞았을 것으로 믿고 통쾌하게 여기고 있는데, 서쪽하늘에서 무엇인가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니, 자신이 날려 보낸 돌 절구통이 되

돌아 오는 것이었다. 화가 난 경상도 방귀쟁이는 돌아서서 또 한번 방귀를 뀌었다.

그랬더니 돌 절구통은 다시 지리산을 넘어 전라도 쪽으로 되돌아 갔다.

이렇게 해서 돌 절구통은 방귀힘으로 지리산을 넘어 전라도와 경상도를 몇번 왕래

했다. 두 방귀쟁이는 서로지지 않으려고 힘써 방귀를 번갈아뀌니 돌절구통은 하늘

높이 떠서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발발 떨다가 석달 열흘만에야 지상에 떨어졌다고

한다. 이 방귀시합은 결국 승부가 나지 않고 무승부로서 두 사람 모두 팔도의 방귀

대장이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