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표는 백제가 신라에 의해 멸망(660년)한 후 약 60년이 지난 718년(또는 734년)09에 전라도 만경(萬頃)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진내말(眞乃末), 어머니는 길보랑(吉寶娘)이며 성은 정(井)씨라고 한다.10
진씨(眞氏)는 백제 귀족의 대표적 성씨 가운데 하나였고 ‘내말(乃末)’은 이름이 아닌 관직인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 권40 직관 하(職官下)의 ‘백제 관인에게 신라 벼슬을 줄 때 백제 관등 3품이었던 은솔(恩率)은 신라 관등 내말(乃末)로 한다’는 기록으로 볼 때 진표의 집안은 그 지역에서 상당히 지체 높은 가문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부족함이 없는 환경에서 자란 진표가 험난한 구도의 길을 걷게 된 것은 하나의 기묘한 사건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무예를 연마한 그는 홀로 사냥 나가기를 즐겼는데, 11세가 되던 어느 봄날 짐승을 찾아다니다 버들가지를 꺾어서 30여 마리의 개구리를 꿰어 물에 던져두었다. 나중에 구워먹기 위함이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사슴을 쫓다가 그만 깜빡 잊고 귀가하게 되었다.
시간은 흘러 이듬해 봄이 되어 다시 사냥을 나간 진표는 우연히 작년에 꿰어 놓은 개구리들이 아직 살아서 울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몹시 한탄하여 자책하기를 다음과 같이 하였다고 한다. ‘아뿔싸, 어떻게 입과 배를 채우자고 저들로 하여금 한 해가 지나도록 고통 받게 했단 말인가!’ 이에 얼른 버들가지를 끊어 조심스럽게 풀어준 다음 이로 인해 뜻을 일으켜 출가하게 되었다.
12세의 어린 나이로 금산사(金山寺) 숭제법사(崇濟法師)의 문하로 들어간 진표는 이름난 산들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전북 변산(邊山)의 부사의방(不思議房)에서 참회를 통한 수행으로 지장보살과 미륵보살을 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지장보살로부터는 계(戒)를 받고, 미륵보살로부터는 『점찰경』 2권13과 간자(簡子)를 받는다.
진표율사는 금산사를 중창하고 미륵불을 조성함으로써 금산사를 미륵신앙의 본산(本山)으로 만들었으며, 또한 한국 고대사회에서 미륵신앙을 민중의 신앙으로 뿌리내리게 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한14 인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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