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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와 이인수


흔히 국무총리를 ‘宰相(재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宰’에는 ‘주관하다, 맡아 다스리다, 잡다, 도살하다’라는 뜻이 있지만 원래는 ‘요리사’라는 의미였다. 중국 商(상)나라의 湯王(탕왕)은 요리사였던 伊尹(이윤)을 재상으로 등용했다. 그만큼 훌륭했기 때문이다. 요리사를 뜻하는 ‘宰’가 ‘재상’의 직위를 나타내게 된 까닭이다. ‘相’은 원래 ‘보다, 보살피다’라는 뜻에서 출발하여 ‘돕다’라는 뜻을 갖게 됐다. 이러한 의미가 ‘임금을 돕는 사람’이 되면서 ‘정승’과 같은 높은 직위를 나타내게 됐다.

조선의 궁궐 요리는 ‘숙수(熟手)’ 등 남자들이 주로 맡았다. 태조 이성계의 ‘전속 셰프’였던 이인수는 중추원 벼슬까지 얻었다. “상의중추원사(商議中樞院事) 이인수(李仁壽)는 본디부터 재주와 덕망이 없으며 다만 음식을 요리하는 일만 알았을 뿐이 온데, 지금 새로운 정치를 하는 때에 추부(樞府, 중추원)에 오르게 되니, 사림(士林, 선비)들이 실망하고 있습니다. 원하옵건대, 관직을 파면시키고 다시 벼슬을 주지 마소서” 이는 《태조실록》 1권, 태조 1년(1392년) 8월 19일 기록이다.

이인수는 태조가 임금이 되기 오래 전부터 밥을 책임지던 사람으로 그에게 벼슬을 주었다. 이에 반발이 심했다. 음식만 할 줄 아는 천한 사람에게 벼슬을 준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태조는 그에게 병권 등 다른 권한은 주지 않고 오직 사옹(司饔, 대궐 안에서 쓸 음식물을 만들던 요리인) 일만 맡긴 것이로 하자 더는 말하지 못하게 됐다. ‘선묘조제재경수연도(宣廟朝諸宰慶壽宴圖)’를 보면 연회장이 차려진 한 구석에서 바쁘게 요리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보여준 것과 달리, 실제로 궁궐에서 음식 장만을 책임진 이들은 남자 숙수들이었다. 수라간 궁녀들은 체력 상의 한계 때문에 이들을 보조하는 역할에 그쳤다. 때문에 사옹원은 노동력 확보 때문에 항상 골머리를 앓았다.

태조의 온천여행까지 따라가기까지 한 이인수. 어느 날 이성계가 병을 앓아 누웠는데 그의 정성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병세가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성계가 수라간에 있는 그를 찾아가 “나는 너에게 해준게 없는데 나는 너에게 받기만 했구나. 나를 위해 온갖 정성을 바친 네가 참으로 고맙구나” 이인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비천하게 농사 짓는 놈을 데려다 음식도 실컷 만들어보게 해주시고, 또한 벼슬도 주시고 그 은덕으로 가족을 호강시켜주셨는데 어찌 해준게 없다고 하십니까” 그는 태조에게 더 이상 음식을 만들어주지 못함을 애통해하며 죽었다. 1434년 의안대군 이화의 아들이자 충청도 병마도절제사였던 이교는 음식 솜씨가 좋았다. 중국 사신을 맞이하는 잔치에 요리할 사람이 없다며 ‘차출’되기까지 했던 것을 보면 말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심리적 불안감, 고립감 등이 커지고 있다. 이를 개인적 우울·불안 증세로 취급해서는 안된다. 우리들의 떨어진 입맛을 회복시켜줄 요리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종근(문화교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