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투자설명회와 사업설명회 등을 연결고리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잇따르는 가운데, 정부가 관련 업체가 모여있는 지역을 집중적으로 단속하기로 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달 안에 투자권유업체나 유사 방문판매업체가 집중된 강남구 테헤란로 등의 지역에서 방역 수칙 준수 여부에 대한 합동 점검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주 오래전, 화장품은 어떻게 유통됐을까. 조선시대 보부상은 취급하는 물품에 따라 부상과 보상으로 구분하는바, 이들은 지방의 오일장을 순회하며 다양한 물건들을 거래했다. 보부상 중 여자 보상이었던 ‘방물장수’는 직접 집을 방문, 화장품, 장식품, 바느질 도구, 패물 등을 거래했다. 방물장수 중에는 노파들이 많아 ‘아파(牙婆)’라고도 불렸다. 조선시대에는 화장품이 당시 종로통에 있는 일종의 백화점인 ‘육주비전’이라는 곳에서 주로 구입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골 같은 경우, 화장품을 취급하는 가게가 있긴 했지만, 판매하는 곳이 많지 않았다. 화장품 판매원에 대한 기록은 17세기 숙종 때 설화에도 나온다. 이때 화장품만을 취급하는 방물장수를 일컬어 ‘매분구(買粉嫗)’라 불렀다. 이들은 화장품과 화장도구 등을 소비자들에게 직접 전달했는데, 당시 여성들의 외출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 이들은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전해주는 반가운 존재이기도 했다.
지방관청이 중앙에, 조선이 중국에 바치던 방물(方物)에서 유래한 방물장수는 대부분 서울의 육의전에서 물건을 사서 전국을 떠돌며 팔던 상인들이었다. 방문판매가 화장품 유통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1962년 쥬리아 화장품이 방문판매로 급성장을 보이자 한국화장품, 태평양, 피어리스 등이 방문판매 조직을 갖추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반에는 전체 화장품 유통의 80% 이상을 차지하며 20여년간 방문판매는 황금기를 보냈다. 방문판매가 유독 국내에서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나라는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정(情)을 중심으로 학연, 지연, 혈연 등 인적 네트워크에 대한 가치를 크게 두는 성향이 짙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장품을 접할 수 있는 채널이 2000년대 들어 홈쇼핑, 할인점, 온라인 쇼핑몰 등으로 다변화되고 접근성이 용이해짐에 따라 방문판매 채널 비중리 줄어들고 있다. 울타리 없이 살던 시절, 가을걷이가 끝난 늦가을 무렵부터 농한기가 시작되면 시골마을에는 하나 둘씩 방물장수들이 나타났다. 좀 큼지막한 보퉁이에 바늘이나 실, 골무 같은 생필품에서부터 좀체 구경하기 힘든 좀 신기한 머리핀이나 참빗, 좀약 등 잡다한 물건들을 싸들고 동네에 들어와 그것을 팔았다. 이들이 며칠 머무는 동안 집 주인은 밥값을 받지도 않고 숙박료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이맘때, 어쩌다가 그만, 호기심 가득 담긴 꿈의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화장품과 고창 심원의 젓갈을 갖고 우리 마을을 찾아오던 뜨내기 방물장수가 무던히 그리운 시절이 되고 말았다. 코로나19의 영향도 아주 크리라./이종근(문화교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