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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남부시장

 

 

 

“성문 밖에서부터 담배 파는 연초전, 말총이나 피물과를 파는 상전, 백미와 잡곡을 파는 시게전, -중략- 장롱을 파는 장전, 장작을 파는 시목전, 점사람들이 나와 앉은 옹기전, 한지 파는 지물전, 미처 헤아려 챙길 사이도 없는 갖가지 물화들이 길 양편으로 쩍 벌여 내놓였는데 그 길이가 남문에서 서문까지의 오릿길 행보를 꽉 메우고 있었다. 그런데도 저잣거리 아래로 흘러가는 개천은 쪽빛으로 맑아서 길 위에 선 저자가 물빛에 드리워 또한 오릿길 저자를 이루니 그 분주함이 미처 정신을 가다듬을 틈이 없을 지경이었다.”

 

김주영의 소설 <객주>에는 전주의 남부시장 옛 풍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전주의 시장 역사는 깊다. 장명수 전 전북대 총장의 저서 <성곽발달과 도시계획연구>에 따르면 ‘전주는 장문(場門)의 발상지이고(1947년), 남문시장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승된 한국의 유일무이한 역사적 시장’이었다. 1650년대 제주에서 억류생활을 한 하멜의 표류기에도 전주가 단순히 지방차원의 장시가 아니었음을 증명해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전주는 일본 등 외국의 수입품들이 반입되어 다시 이곳을 통해 하위의 작은 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모든 교역의 중심이었는데, 이러한 기능은 적어도 1896년 8개의 도(道)가 13개로 개편되기 전까지 지속됐다.

전북대 원용찬 교수도 저서 <전북의 시장경제사>에서 “당시 서울의 도성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시전은 전주와 같은 대형 거점장에서도 열렸다. 전주에는 이미 시전과 가게가 즐비하고 물화와 상인이 많아서 동전을 유포하여 백성들에게 화폐사용의 편리함을 널리 실험할 수 있는 곳이었고 전주 상업도시의 중심을 이루는 남문시장은 물자와 상인으로 활기를 띠었다”고 소개한다.

1890년대까지 번성했던 전주의 장은 남문(풍남문)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네 개의 장을 이른다. 남문외장이었던 남문시장, 동문외장의 동문시장, 북문외장 시장, 서문외장 시장이다. 사람들은 이를 ‘남밖장’ ‘동밖장’식으로 불렀다. 남문시장인 남밖장이 지금의 남부시장이다. 남부시장은 1905년 정기 공설시장으로 개설한 이후 일본 상인들이 이곳에 진출하면서 다른 여타의 장들이 쇠퇴해 이곳으로 통합됐고, 호남 최대의 물류 집산 시장으로 한 시절을 누렸다.

남부시장 매곡교가 도마 위에 올랐다. 노점상들이 몰리면서 도로의 기능을 잃고 도시 미관이 훼손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불법노점 단속을 위한 행정대집행까지 나설 정도이니 폐해의 정도가 짐작되지만 오늘까지도 상인들이 몰리는 남부시장의 존재가 새삼스러워진다. (전북일보 임은정 이사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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