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목교수,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 발간
-케케묵은 고문서 한 장으로 추적하는 조선의 일상사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으로 간주되던 시대가 있었다. 단순히 음양(陰陽)으로서만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도 그랬다. 여자는 시집 가기 전에는 아버지를, 시집 가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을 좇아야 했다. 시집 간 여자는 한 남편만을 섬겨야 했고, 반드시 남편의 뜻을 따르고 좇아야 했다.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면 쫓겨나고, 자식을 낳지 못해도 쫓겨났다. 말이 많아도 쫓겨나고, 질투가 심해도 쫓겨 날 수 있던 게 조선시대의 여자였다. 그런 조선시대에도 매 맞는 남편이 있었다. 삼종지도와 여필종부, 칠거지악으로 상징되는 사회적 제도들이 서슬 시퍼렇게 여자를 옥죄던 시절에도 남편을 두드려 패며 살던 여자가 있었다니 쉬 믿기지 않는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헌관리학과에 재직중인 전경목교수가 펴낸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펴낸곳 (주)휴머니스트 출판그룹)는 현재 골방이나 창고 한 구석에서 마냥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고문서들을 찾아내 의미를 해석하고 뜻을 번역해 옮긴 내용으로, 탐정처럼 추리하고 과학수사 하듯 쓴 책이다.
이 책은 고문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읍지, 문집, 족보 등 다양한 관찬 사서와 기록을 넘나들면서 조선시대의 일상과 풍속을 함께 확인한다. 고문서를 통해 확인한 세세하고 구체적인 사건은 정확한 미시사를 만들고, 이는 탄탄한 거시사를 만드는 기반이 된다. 역사 전체를 포괄하는 거시적 맥락에서 파악한 미시사는 풍부한 역사 서술을 가능하게 한다. 이렇게 미시사와 거시사가 어우러지는 설명은 기존의 평면적 역사 서술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던 살아 숨 쉬는 조선시대를 보여준다.
모든 이야기는 한 장의 고문서에서 시작된다. 별다른 내용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고문서. 저자는 아내의 재혼을 허락하는 남편의 수기 한 장, 노름빚 갚았다는 사실을 증빙해달라는 탄원서 한 장을 실마리 삼아 문서를 작성한 사람, 그가 속한 공동체, 당시 시대상을 추적하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마치 탐정이 추리를 하듯 관련된 인물과 사회적 네트워크 속에서 고문서를 깊이 읽고,뒤집어 보고, 의심하는 해석 과정은 놀랍고 경이롭다. 이 해석이 찾아낸 이야기는 거대 역사 속에 가려진 조선의 일상을 한 장면 한 장면 복원한다.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대부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겪었던 이혼, 노름, 재산 분배 같은 소소한 일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들이 남긴 목소리는 기존의 역사적 통설을 뒤집기도 하고,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실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재현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최덕현의 수기’는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35냥을 받고 아내를 보내는 남편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이혼 사실을 증빙하는 조선 후기의 이혼 문서인 셈이다. 저자는 이 고문서 한 장을 단초로 문서 작성자가 누구인지, 작성 시기는 언제인지, 돈을 주고 최덕현의 아내를 데려간 사람은 누구인지 등을 면밀히 추적한다. 나아가 수기 내용처럼 조선시대에 이혼이 실제로 가능했는지, 신분이나 시기에 따라 이혼과 재혼 풍습이 어떻게 다른지 등을 밝힌다. 그 결과 평민이나 천민은 조선시대에도 이혼이 자유로웠으며, 조선 전기까지는 왕족이나 귀족도 이혼을 할 수 있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는 유교 이념이 뿌리내린 조선시대에 이혼이나 재혼이 불가능했다는 역사적 상식 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고문서가 밝히는 조선시대는 색다르다. 근엄한 사대부의 삶만이 아니라 평민이나 천민이 겪었던 이혼, 노름, 재산 분배 등과 같은 삶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흔적은 곧 조선시대 사람들의 표정이다. 우리는 흔히 조선시대 남자는 권위적이고 엄한 가부장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말썽꾼 아들 용안을 둔 김광팔의 탄원서에는 자식을 염려하는 아비의 마음이 절절히 드러난다. 아들이 관노청에 근무하다가는 큰 사고를 칠 것이라 염려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불호령을 내리는 조선시대 가부장이 아니라 자식 걱정에 잠 못 이루는 평범한 우리네 아버지와 닮아 있다.
'용안을 관노 일에서 빼준 것은 비단 제 원려에서 비롯된 것일 뿐만 아니라 전임 수령께서도 용안을 관노로 그대로 두었다가는 후에 커다란 폐단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 수령께서 이를 고려하셔서 돈을 받고 특별히 용안을 관노에서 면제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새로 부임한 수령께서 이러한 과정을 살펴보시지도 않은 채 용안을 다시 관노로 등록하시니, 만일 끝내 이와 같이 하신다면 저는 이곳에 정착해 살 가망이 전혀 없습니다. (중략) 이런 연유를 갖추어 감히 호소하오니 헤아리신 후 제 아들 용안에게 부과된 관노 일을 면제해주도록 지시하소서('김광팔의 탄원서’ 중에서)'
조선시대판 '사랑과 전쟁' 처럼 불륜과 재혼이 반복되는 결혼생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고문서도 있다. 1602년(선조 35) 3월 10일 박의훤은 자녀 여덟 명에게 재산을 분배하면서 분재기(재산을 분배할 때 작성한 문서)를 남긴다. 이 ‘박의훤의 분재기’에 따르면 그는 다섯 명의 여자와 부부 관계를 맺었는데, 전처 네 명은 모두 불륜 때문에 박의훤을 떠났다. 분재기에 담긴 그의 목소리는 침착하지만, 전처들의 비행을 낱낱이 고발하는 냉정함이 엿보인다. 한편으로는 당시 아내였던 여배와 낳은 어린 두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전처들의 잘못을 과장해서 재산을 빼앗아가지 못하도록 대비하는 치밀함도 읽을 수 있다.
“고문서에는 숨겨진 마력이 있다. 아무 관련이 없을 것 같은 고문서들을 살펴보다 어느 순간 문서 간의 은밀한 연관관계가 발견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고문서들을 모자이크하듯 하나씩 맞추다 보면 조선시대 사회상이 눈앞에 생생하게 복원됩니다. 마치 탐정처럼 범인을 추적하고, 실타래처럼 뒤얽힌 사건을 하나하나 풀어내는 재미는 고문서 연구가 아니고서는 맛볼 수 없습니다. 이들의 은밀한 삶을 엿보는 재미는 고문서 읽기를 통해 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즐거움입니다"
전교수는 전북대학교 사학과를 졸업, 같은 대학원에서 '조선 후기 교생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조선 후기 산송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저서로 '고문서를 통해서본 우반동과 우반동 김씨의 역사' 등을 펴낸 바 있다. /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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