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지 채용신(1850-1941)은 초상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서양화법과 사진술을 받아들여,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해 낸 화가다. 1941년 6월 4일 만 91세의 나이로 정읍 신태인 육리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붓끝에 담아냈으며, 그 이야기들은 지금도 이 지역에 연면히 전해지고 있다.
채용신은 1850년 서울 출생이지만 생을 마감할 때까지, 90평생 중 40여년의 세월을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한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초상 화가이다. 특히 채용신은 전북이 낳은 조선시대 최고의 어진화가로, 한국 근대 미술사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화가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사진처럼 정밀하고 섬세한 ‘석지필법’을 창안했고, 고종 어진을 비롯한 200여 점의 초상화를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최익현, 전우, 김환, 김영구, 허담, 이덕응 등이 바로 그것이다.
채용신은 조선시대 고종의 초상화를 그리는 등 무과 출신 관료로, 임금의 초상화인 어진 제작을 총괄하는 우두머리 화가인 주관화사(主管畵師)로 활약했다. 이후 집안 연고지인 전주 일원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1941년 6월 정읍 신태인 육리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92년 생애 중 40여 년을 전라도에서 보냈다.
그는 우리나라 초상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서양화법과 사진술을 받아들여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만 9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붓끝에 담아냈다.
대작 가운데의 하나는 ‘삼국지연의도’다. 화면이 8폭으로 구성된 이는 도난, 회수, 잠적 등 우여곡절 끝에 전주 관성묘를 떠난 지 30년 만에 돌아와 최근 전시돼 학계와 미술인들을 설레게 했었다.
삼국지연의도는 원래 관우사당에 걸려있던 예배화이며 관우신앙을 배경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관우를 신격화한 관우신앙은 임진왜란 당시 출병한 명나라 군사들에 의해 이 땅에 전해진 후 삼국지연의의 인기를 발판으로 빠른 속도로 전국으로 확산됐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동묘가 대표적인 관우사당이며, 전라도 지역에도 전주, 남원 등지에 현존하고 있다.
채용신이 이 그림을 그렸던 때는 1912년으로 일제강점기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채용신은 ‘삼국지연의도’에 자신의 마지막 관직을 적어 넣어 조선에 대한 변함없는 지극한 사랑을 내보였다. 웅장하고 강렬한 채용신의 작품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해학적이고 친근한 모습의 유비, 관우, 장비를 만나는 순간 당신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한다.
최근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명작 ‘운낭자 초상’을 비롯, 그가 정읍 태인에 머물며 제작한 ‘송정십현도(松亭十賢圖)’와 ‘칠광도(七狂圖)’ 등이다’ 등을 통해 그의 다채로운 재능과 역량 그리고 섬세한 필치를 느낄 수 있다.
등록문화재 제486호로 지정된 운낭자상(雲娘子像,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채용신이 1914년에 그린 초상화로, 그림의 주인공은 홍경래의 난(1811년) 때에 가산군수 ‘정시’의 시신을 거두어 사후에는 열녀각인 평양 의열사(義烈祠)에 제향되었다고 전해지는 의기(義妓) 최연홍(崔蓮紅,1785~1846)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엄마와 아기‘를 주제로 그린 그림으로서 근대기 회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미술사적 가치가 있다. 살구색(혹은 옅은 미색) 저고리에 옥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남자 아이를 안고 있는 전신입상으로 외씨 버선의 한쪽 발이 살짝 나온 자태와 가채를 얹지 않고 빗어 넘긴 머리 모양을 하고 있으며, 부드러운 담채와 간략한 필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림의 오른쪽 위에 ‘雲娘子二十七世像’(운낭자이십칠세상), 왼쪽 중간쯤에 ‘갑인늑월석지사'라고 적혀있고 그 아래에 ’石芝‘(석지), ‘定山郡守蔡龍臣信章’(정산군수채용신신장)이 날인되어 있다.
1910년 채용신이 정읍 태인 김직술의 집에 머물면서 초상화 외에 ‘칠광도’와 ‘송정십현도’를 남겼다. 이 그림은 광해군 시절 어지러운 시국을 개탄하며 낙향한 선비들이 송정에 모인 모습을 그린 것이다. 지도처럼 자세하게 실경을 그린 칠광도에는 후송정, 무성서원 등이 현재에도 잘 남아 있다.
이들 작품은 석지가 그 지역에 장기간 머물며 마을의 성현들의 모습을 실경과 함께 표현한 일종의 산수인물도이다.
송정십현도는 태인 향약의 중심 인물을 주제로 이모한 작품으로, 시국을 개탄하면서 낙향, 초탈한 삶을 살았던 10명의 선비들이 송정(松亭)에 모인 모습을 그린 계회도(契會圖)에 다름 아니다.
정읍엔 이 작품의 배경지인 송정(松亭,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33호,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산4)이 있다. 이곳은 광해군의 폐모사건(인목대비)에 항의한 속칭 7광(七狂) 10현(賢)들이 뜻을 이루지 못하자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모여 세월을 보내던 곳이라 한다.
이들 후손들이 영당을 세우고 1년에 2번 제사를 받든다. 7광(七狂)은 김대립, 김응윤, 김감, 송치중, 송민고, 이상형, 이탁 등이며, 10(賢)은 7광 가운데 김응윤, 김감, 송치중, 송민고, 이탁 외에 김관, 김정, 김급, 김우직, 양몽우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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