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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미인의 조건

 

우리 선조들은 타고난 용모의 미색과 지적인 품성 및 자질을 겸비해야 진정한 미인으로 보았다. 미의 형태학적 요소 즉, 체격이나 각 신체의 모양 등은 시간과 환경에 따라 변화되곤 하지만 관념적 요소는 비교적 시대적 변화에 이끌리지 않는 경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여성들은 조금만 노력하면 미인상에 어느 정도 도달할 수 있다는 가정이 성립된다.

당대 최고의 인물화가 채용신의 ‘팔도미인도’는 서울, 평양, 경남 진주, 전남 장성, 강원 강릉, 충북 청주, 전북 고창 등 8개(한 작품은 판독 불능) 지역 미인과 기생 등 8명의 전신상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얼굴이 모두 비슷비슷해 다들 예뻐 보이지만 유독 평양과 진주 기생이 달라 보인다. 북방계 얼굴을 가진 평양 미인은 새초롬하고 속을 태울 것만 같은 반면 남방계 얼굴의 진주 기생은 동글동글한 볼이 마음 씀씀이가 가을처럼 넉넉하다. 고창의 미인은 목이 길며 상체가 작으며, 계란형 두상에 미간과 눈두덩이 상당히 넓다.

우리 전통사회에서 미인의 조건으로 30가지가 충족되어야 했다. 살결, 치아, 손은 희어야 하고(3백), 눈동자, 눈썹, 속눈썹은 검어야 하고(3흑), 입술, 볼,손톱은 붉어야 하고(3홍), 목, 머리, 팔다리는 길어야 하고(3장), 치아, 귀, 발길이는 짧아야 하고(3단), 가슴, 이마, 미간은 넓어야 하고(3광), 입, 허리, 발목은 가늘어야 하고(3협), 엉덩이, 허벅지, 유방은 두터워야 하며(3태), 손가락, 목, 콧날은 가늘어야 하고(3세), 유두, 코, 머리는 작아야 했다.(3소)

이같은 전래의 미인 조건을 현대에 와서도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의 관념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현대 여성의 아름다움의 기준과 미인의 요건은 과연 무엇일까. 옛날 고전의 미인과 어떻게 다른가? 미인을 선발하는 미스코리아와 미스 유니버스대회의 미인의 기준은 대개 용모에 40~50%, 품성에 30~40%, 재질에 10~20% 정도를 평가 기준으로 하고 있다.

시나브로 미적 기준은 현대에 와서 많이 바뀌었다. 지금은 크고 쌍꺼풀진 서글서글한 눈에 오뚝한 코, 작은 턱과 작고 갸름한 얼굴형으로 바뀌었다. 원인 제공에는 대중매체가 버티고 있다. 대중매체는 미 본래의 의미를 배제한 채 그 상대성만을 부각하면서 외모만 강조하고 이 때문에 차별을 부추기고 외모지상주의를 가져왔다.

다시금 ‘팔도미인도’를 통해 우리 민족이 추구했던 진정한 미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올 가을,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고 먹잇감을 찾아 초원을 낮게 거니는 표범처럼 놰쇠적인 야생녀들이 다가온다. 소슬한 바람이 가을을 알리고 있는 가운데 관능적인 팜므파탈의 애니멀 프린트룩이 미인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있다. 이종근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