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궁七宮, 지금에 이르기 까지
칠궁은 북악산 남쪽 기슭에 있는, 일곱 명의 후궁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영조는 즉위하자마자 생모인 숙빈(淑嬪) 최씨(崔氏, 1670~1718)를 위해 북악산 아래에 사당을 세우고 숙빈묘(淑嬪廟)라 했으며, 1753(영조 29)년에는 숙빈 최씨에게 화경(和敬)이라는 시호를 올리면서 그 이름을 육상궁(毓祥宮)으로 고쳐 불렀다.
고종은 1870(고종 7)년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왕실 사당을 정리하였는데, 이 때 경종(景宗, 1688~1724년)의 생모인 희빈(禧嬪) 장씨(張氏, ?~1701년)의 대빈궁(大嬪宮)과 진종(眞宗, 1719~1728년; 영조의 장자)의 생모인 정빈(靖嬪) 이씨(李氏, ?~1764년)의 연호궁(延祜宮), 장조(莊祖, 1735~1762년;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英嬪) 이씨(李氏, ?~1764년)의 선희궁(宣禧宮)을 육상궁으로 옮겼다. 그러나 대빈궁은 1870(고종 19)년에, 선희궁은 1870(고종 19)년 각각 옛 사당 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한편, 1908(융희 2)년에 순종은 후궁이었기 때문에 종묘에 안치되지 못하고 각처에 흩어져 있던 역대 왕들의 생모의 위패를 육상궁에 모았다. 이때 원종(元宗, 1580~1619년; 인조의 부친)의 생모인 인빈(仁嬪) 김씨(金氏, 1555~1613년)의 저경궁(儲慶宮), 순조(純祖, 1790~1834년)의 생모인 수빈(綏嬪) 박씨(朴氏, 1770~1822년)의 경우궁(景祐宮)과 함께 대빈궁과 선희궁을 다시 옮겨 왔고, 그 때부터 기존에 있던 육상궁, 연호궁에 네 개의 사당을 더해 육궁(六宮)이라 불렀다. 그리고 1929년 영친왕의 생모인 순비 엄씨의 덕안궁(德安宮)을 옮기면서 칠궁이라 불렀다.
위패를 모신 일곱 궁의 배열은 동쪽에서부터 육상궁·연호궁, 덕안궁, 경우궁·선희궁, 대빈궁, 저경궁의 순서이다.
칠궁七宮의 뜻풀이
‘칠궁(七宮)’은 ‘일곱 개의 재궁(齋宮: 사당)’이라는 뜻이다. 조선 시대에 왕을 낳은 일곱 명의 후궁 위패를 모신 일곱 개의 사당을 의미한다.
*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궁궐의 현판과 주련 3]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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