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도(淸道)’는 ‘맑은(淸) 길(道)’이 있는 뼈대있는 고을이다.
청도 임당리 김씨고택(청도군 금천면 임당리, 중요민속자료 제245호), 운곡정사(청도군 운문면 순지리,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0호), 운강고택 만화정 및 만화정(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중요민속자료 제106호) 등 옛 정취가 그대로 살아 있는 고택들이 즐비하고, 오늘날에도 맑은 정신이 유유히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얘기 하나씩을 품고 있는 청도는 소싸움만큼이나 박진감 있고 경쟁력을 갖춘 도의 맥과 선비정신, 그리고 풍류가 찬연히 빛나고 있다.
운강고택 및 만화정은 소요당 박하담(1479년-1560년)이 벼슬을 사양하고 이곳에 서당을 지어 후학을 양성했던 옛 터에 1809년(순조 9년) 박정주(1789년-1850년)가 분가하면서 살림집으로 건립한 가옥이다. 이어 운강 박시묵이 1824년(순조 24년) 중건하고, 박순병이 1905년 다시 중수했다.
운강고택은 주택으로는 보기 드물게 그 규모가 크며 안마당과 안채 후원, 사랑채 후원 등 넓은 공간을 여유있게 두었다.
또, 내외의 구별이 엄격하던 그 당시에 여자들이 사랑채 앞을 피해서 드나들 수 있도록, 뒷사랑과 안곳간이 연결된 곳을 터서 작은 문을 만드는 세심함을 보이고 있다.
“‘일(一)’자 모양의 평면구조 가옥에서 부를 축적하면 ‘구(口)’자 형태가 되고, 다시 ‘구’자가 모여 ‘품(品)’자를 이루게 되죠.
운강고택은 ‘구’자 형태의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가묘 등이 모여 ‘품’자형 구조를 이루는 전형적인 재력가의 가옥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전변숙현 청도한옥학교 교장의 설명을 기사에서 접한 바 있다.
운강고택의 화방벽 중앙엔 ‘길할 길(吉)’자 네(4)자가 유독 선명하다.
사랑채를 이어주는 담에 ‘길’자와 꽃잎 모양의 아기자기한 무늬를 넣어 극도의 자연스러움을 강조하고 있는 눈치다.
사랑채와 중문간채 사이를 꽃담으로 막아 놓았음이 목격된다. 이 꽃담은 막돌을 이용하여 얼마간 쌓아 올린 다음, 그 위로는 기와 조각을 박고 사이 사이에 백회를 발라 무늬를 만들었다.
가운데 가로로 길게 칸을 내고, 그것을 다시 세로로 여러 개 나누어 칸마다 ‘길’자와 간단한 꽃무늬를 넣었으며, 그 아래와 위로는 귀갑문과 비슷한 기하학적인 무늬를 배열했다.
합각과 건물 맨 아래에도 기하학적 무늬가 자리를 하면서 인간이 하기에는 너무 방대하고 엄청나게 큰 서클을 그리고 있다.
‘길(吉)’자는 ‘선비(士)의 말(口)은 참되고 좋은데서 길하다’는 의미이며, 운강고택의 벽면에 네 개의 ‘길’자가 나란히 있었으니 맞추어 보기로 했다.
하나, 건물 구조에 있어 웃방의 안쪽은 원래부터 간막이를 하여 찬광을 꾸몄으며, 대청의 뒤편에도 역시 간막이를 해 ‘여름 찬광’을 마련, 삶의 터전에 좋은 기운을 기원한 것으로 본다.
둘, 대청 내벽에 ‘성경실(誠敬室)’이란 편액을 걸어놓고 좌우명마냥 마음의 긴장을 놓지 않았다는 판단이 든다. 길함은 반드시 그렇게 가슴 깊숙한 폐부로, 뜨거운 심장으로 깃드는 것이다.
본시 이 집의 가풍이 청년도제들을 육성하는 것이었으므로 중사랑채는 강학서당의 구실을 했을 것으로 짐작되며, 운강은 1872년(고종 9년)에 강학소절목을 작성하여 육영 사업에 전력하면서, 통정대부 좌승지에 증직되는 등 몸소 길한 바를 행동으로 보여주었으니 세 번째 해석이요.
외문 끝에 ‘운강고택(雲岡故宅)’이라 쓴 일중 김충현(1921년-2006년)의 편액이, 온돌의 문미에도 ‘백류원(百榴園)’이라 쓴 김충현의 편액이 각각 걸려 있는 가운데 옛날의 길함을 노래하고 있다. 이건직의 전서 ‘진계선생은앙소(進溪先生隱仰所, 진계는 운강의 아들 박재형(朴在馨:1838년-1900년)’ 역시 좋은 기운을 품어내고 있다.
중사랑의 후원은 원래의 ‘백류원’이었으나 지금은 석류나무가 없다. 부귀다남을 상징하는 게 바로 석류이니, 이를 심어놓고 보면서 삶 속 길함을 염원했으리라.
석류를 심으면 자손이 흥하고 부귀가 늘 함께한다고 믿어 양지 바른 정원에 즐겨 심은 연유이니, 네 번째 생각이다.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에 내려 주신(성경 아가서 4장 13절) 축복한 일곱 가지 식물 중의 하나가 석류다.
운강고택 인근 집에 무덥고 오랜 올해의 장마에도 유독 석류만은 싱싱하고 힘차게 아름다운 꽃을 잘 피우고 있다. 길한 바람 밀양박씨네 주위를 맴돌다 인근으로 멀리멀리 퍼져나간 것은 아닐까.
물론 그 길함이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닌, 그들의 후손들의 가슴에 고스란히 간직되고 있다. 청도에서 길한 가운을 듬뿍 받아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릴 자신감 1백% 회복될 것임을 기약해본다.
커다란 회색 날개를 펄럭이며 유유자적하는 선비 모습의 백로 한 마리 꽃담 주변을 배회할 때, 기와집 위의 세상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어느 새, 새벽별조차 사라지고 먼동이 터온다. 금빛물이 흐른다는 금천면 운강고택에서 인내심으로 올 가을을 기다릴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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