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는 가장 위대한 고지도 제작자며, 지리학자였다는 사실 외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확실히 밝힐 근거 또한 거의 남아있지 않다. 다만 몇가지 기록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김정호 신분은 양반이 아닌 평민으로 보는 것이 가장 신빙성이 있는것 같다. 이 사실을 밝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유재건의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에 하층계급 출신의 인물들이 각 방면에서 뛰어난 행적을 모아 적은 기록이다. 따라서 이 책에 적힌 사람들은, 양반계급이 아닌 평민들이 대상이 되고 있다. 김성호에 대한기록이 이 책에 적혀있다는 사실은, 그가 평민이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또 그가 양반계급이 아닌 하층계급이었다는 근거는, 신헌이 「대동방여도」 서문에서 김정호를 金君으로 호칭한 것에서도 추정해 볼 수 있다. 즉, 신헌은 김정호의 지도제작을 후원한 사람으로, 높은 신분의 양반이었고, 나이도 김정호보다 7, 8세 정도 아래였다. 그런데 김정호를 아랫사람을 호칭하는 金君으로 불렀다는 점에서 김정호가 평민출신이었음을 말해주는 방증이 된다. 또하나는, 김정호가 청도 김씨인데, 그 족보가 없다는 점이다. 청도김씨 봉산파로 알려져 있으나, 6.25 이전의 대동보에도 김정호는 족보에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는 족보 없는 평민출신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평민인 그가 양반계급의 최한기와 친구관계가 이루어진 계기는 알수 없으나, 어릴 때 그들이 만나, 지지와 지도에 대한 뜻이 같아 지기의 관계를 맺게 된 것으로 보인다.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 먼저 그가 어떤 작업들을 남겨놓았는가를 알아야 한다. 최소한 김정호가 만든, 3대 지지(地志)와 3대 지도는 무엇인가를 알아야 대동여지도의 제작 배경을 알수 있는 것이다. 김정호는 지도를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지지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지지란 역대의 제도와 문물, 풍습 등과 지역과의 관계를 적은 지리지를 말한다. 지도란, 주와 현, 산과 물 등의 구분 그리고 그 시설물의 위치와 거리, 면적 등 지역의 형체를 그림으로 표시한 것을 말한다. 그래서 역사에서 지지가 나오고 지지를 바탕으로 지도를 만든다고 보았다. 이런 인식은 고산자가 「동여도지」를 만들 때 쓴 자서에 잘 밝혀져 있다.
김정호는 3개의 지지를 남겼는데 ①동여도지 ②여도비지 ③대동지지가 그것이다. 3개의 지도는 ①청구도 ②동여도 ③대동여지도이다. 이 모든 지지와 지도는 서로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은 연관관계를 지니고 있는 일련의 지도 제작과정의 단계로 볼 수 있다.
「동여도지」는 김정호가 만든 최초의 지지이며, 지도의 근원이다. 「동여도지」를 근거로 「청구도」라는 지도가 맨처음 만들어졌다. 「동여도지」를 다시 보완하여 만든 것이 「여도비지」이고, 「여도비지」를 기초로 만든 지도가 「동여도」이다. 「동여도」는 육필로 그린 지도인데, 이것을 원본지도로 하여, 좀더 간결하고 정확한 지도의 판목을 만들었다. 이 판목과 목판본 지도로 된 것이 「대동여지도」이다. 「동여도지」와 「여도비지」를 종합하여 다시 만든 것이 「대동지지」이다. 이런 상호 연관관계를 볼 때 「동여도지」에서 「대동지지」까지, 「청구도」에서 「대동여지도」까지 모두 「대동여지도」와 관계를 지닌 일련의 작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