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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토리

조선 후기 숭례문 도로는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는 1차년도 숭례문 발굴조사(‘08. 8 ~ 11월 현재) 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숭례문 발굴조사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개년 계획으로 진행 중에 있다. 올해 발굴조사지역은 현 가림막 내의 숭례문 내·외부 지역으로, 조사 결과 숭례문을 통과하던 조선 후기 도로면이 확인됐다.

 

 

 또한 조선후기~대한제국(19세기~20세기 초) 시기에 있었던 민가(民家)의 터를 비롯하여, 전기로 추정되는 건물터의 기초까지 조선시대 전반을 아우르는 건물의 흔적들이 확인됐다.

숭례문을 통과하던 조선 후기 도로면은 현 지표 하 30~60㎝ 아래에서 확인되었다. 도로는 갈색 사질토를 6~8차례(130~140㎝) 가량 켜켜이 쌓아 바닥을 다진 후, 그 위에 비교적 큰 부정형의 박석(평균 110×100×10㎝)을 덮어 노면을 포장하는 등 매우 정교하게 축조했다. 그러나 실제로 숭례문을 통과하던 도로 중앙부에서는 박석이 확인되지 않았는데, 이는 일제시대 전차선로를 가설하면서 제거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현재 확인되는 도로의 폭은 숭례문 밖 25m, 숭례문 안 26m 정도이다.

한편 일제시대 촬영된 사진자료를 살펴보면 이 도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민가(民家)들이 즐비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이러한 민가의 흔적들이 확인되었다. 민가터 3동을 비롯하여 내부 구들시설 1기, 외부 배수시설 3기가, 또한 숭례문 내부 북서편 현 지표하 3m 지점에서는 조선 전기의 건물터로 추정되는 원형잡석적심 3기가 각각 확인됐다. 일부분만 드러난 상태이지만, 내부에서 15~16세기 분청사기편과 백자편이 확인되어 임진왜란 이전 시기의 건물터로 추정된다.

 


이번 조사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백자 향로를 비롯한 백자 제기(祭器)류와 분청사기, 청화백자 등 조선시대 다양한 도자기류와 기와편, 전돌편 등이 있으며, 일제시대 사용하던 외국 자기들도 다수 확인됐다. 그 밖에 상평통보~대정 8년(1919년) 일제시대 청동주화 등 동전류와 벼루 등이 출토됐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하여 조선 후기 숭례문 주변 도로면의 높이와 당시 축조기법을 확인하여, 향후 숭례문 주변 지형 복원을 위한 고증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조선전기~구한말에 이르는 건물터를 확인하여 이 일대의 변화 양상도 파악할 수 있었다.

 

 

향후 발굴단은 2009년 숭례문 가림막 바깥 공원지역, 2010년 숭례문 주변 및 동서성곽 지역을 연차적으로 조사, 숭례문 원형 복원을 위한 기초 고증자료를 확보할 예정이다.

 숭례문 발굴조사 자문회의 및 현장설명회가 25일 오후 2시 현 숭례문 가림막 내부에서 열렸다. 전민일보 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