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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전주 옴팡집

전주의 음식점 ‘옴팡집’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1958년 11월 19일자 동아일보의 ‘팔도강산 발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라는 기사엔 ‘전주에 들릴 기회가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유명한 전주비빔밥 한 그릇 먹어본다’고 했다. 마담 이여사가 손수 간을 맞추며, 반드시 주문을 받고 나서야 음식을 만들어 백반을 먹으려면 적어도 한 시간 반 내지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고했다. 특히 성게젓, 고록젓, 전어밤젓이 특미에 들고, 타지방에서는 못 보는 꼬들빼기김치 등은 누구의 구미도 당길만하다고 나온다.

이어 1963년 10월 9일자 경향신문엔 ‘없어진 명물 옴팡집’이란 기사도 보인다. 경원동 한 모퉁이에 쓸쓸하게 남겨진 이숙자(李淑子)라고 하는 68세의 노인은 전주비빔밥의 특색을 표고자장과 고기국물로 밥을 비비는 묘(妙味)와 함께 이 고장의 별미인 나물을 얹는 것이라고 했다. 옴팡집이 처마가 낮아 역대 도백(道伯, 도지사)들도 절을 하며 식당에 들어왔다고 회고했다. 표고자장은 버섯과 쇠고기를 장졸임한 간장을 말하며, 옴팡 찌그러진듯한 작은 초가집을 손님들이 ‘옴팡집’으로 이름 붙였다고 한다.

이병훈시인은 ‘옴팡집’이란 시를 지었다. ‘지금은 그때 그 자리가 아니지만 전주에는 곳곳에 夕汀의 집이 있습니다 남노송동 북노송동 경원동 중앙동 골목으로 휘어져 들어간 옴팡집 조곰 기웃한 전주의 옛집 주막은 기웃한 전주의 옛집 주막은 해 기울 때쯤 법석거렸습니다 서서 마시는 것이 예사이나 夕汀의 자리는 따로 마련해 있었습니다 주모는 그저 좋아 夕汀의 자리를 맴돌았습니다. 夕汀은 중심이었습니다 泰山木이었습니다’ ‘비사벌 초사’에서 차 한 잔을 마시다보니 옴팡집의 향수가 떠오른다. 완산초등학교 서편 마을은 좁고 긴 골목들이 미로처럼 얽혀있다. 송영상씨는 언젠가 필자에게 한일관 이전엔 완산동 원각사 골목에 오씨가 문을 연 오씨집으로 통한 콩나물국밥집이 유명했다고 했다. 오씨집 이후엔 완산교 머리에 도래파와 김제파가 있었다. 도래파는 한옥이었으며, 김제파는 한식 2층집으로 전주천을 끼고 유명했다고 한다.

‘한일관’은 남부시장 골목에서 해방 전부터 영업을 시작했으며, 국물은 북어와 멸치 등으로 고아냈다. 한때 양키골목으로 유명한 남부시장 옆 민생병원 자리로 옮겨 앉을 당시엔 복쟁이가 유명했다. 그후 수도여관 골목으로 옮길 때 옥호를 바꾸고 콩나물국밥을 해장국으로 내놓았다. 그후 다시 이전 개업을 할 당시, 점심 때엔 해장국을 팔지 않고 일정량을 판매하고 나면 문을 닫는다는 소문이 나 심지어는 꼭두새벽에 나온 사람들이 있었다. 역대 대통령이 전주 행사에 오게 되면 한일관에 들러 식사를 할 정도로 전주 음식의 뿌리라고 할 만큼 자부심 또한 컸다. 전주 음식을 테마로 한 스토리를 찾아 문화관광상품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이종근(삽화 새전북신문 정윤성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