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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전주 가맥의 원조

 

 

 

 

 "가맥이나 한 잔 하지.” “가맥 집으로 가지 뭐.”

  전주가 아닌 다른 지역 사람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른다. “가맥이 뭐여?”

 전주 사람들은 '가맥'이란 말을 쉽게 쓰지만 타지역 사람들은 처음 이 말을 들으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기 마련이다.

‘가맥’은 가게에서 파는 맥주를 줄인 말이다. 소형 상점의 빈 공간에 탁자 몇 개 놓고 오징어 등 간단한 안주에 맥주를 파는 곳이다.

  가맥문화는 술집은 아니지만 동네슈퍼에서 맥주를 사서 먹되, 간단한 마른 안주를 곁들여 먹는 것을 말한다. 슈퍼마켓에서 맥주를 팔면서 동시에 가벼운 안주도 함께 내주는 것이다. 어릴적 동네 어른들께서 슈퍼마켓 앞 파라솔에 앉아 가볍게 맥주 한 두잔 기울이는 모습을 상상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간판에 '슈퍼마켓'이라 쓰여있어서 들어가보면 손님이 북적북적한 맥줏집이 나온다든지 하는 기묘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전주.

 전주의 독특한 술문화로 꼽히는 '가맥'은  'OO슈퍼, OO휴게실, OO편의점'이라는 간판을 달고 영업하는 '가맥집'들이 여러 곳 있다.  슈퍼에서 파는 과자나 라면은 물론이고, 황태구이, 오징어, 계란말이 같은 간단한 안주류도 맛볼 수 있다.
가격도 저렴한데다 가맥집마다 개성있는 안주를 내놓고 있어 골라먹는 재미도 있다.

 <전일갑오>의 황태구이, 북어탕을 주는 <임실슈퍼>, 통닭과 닭발튀김으로 유명한 <영동슈퍼>, 다양한 라면을 끓여주는 <대성식품>, <은성슈퍼>의 망치로 두드려 구워내는 갑오징어 구이, <슬기휴게실>의 참치전 등등. 수십년씩 영업해온 가맥집들이 수두룩한데다가 각자 특색을 지니고 발전해온 덕분에 형성된 전주의 '가맥 문화', 이 정도면 '가맥 축제'를 열 만도 하다.
 가맥은 1970년대 전주 중앙동의 홍콩반점 맞은 편에 있던 영광상회(영광슈퍼)를 원조로 친다. 이 가게에서 오징어나 북어포, 과자 안주에다 맥주를 팔기 시작하면서 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주시청과 관공서가 밀집한 경원동, 중앙동 인근에서 슈퍼에 앉아 맥주를 마시던 것이 전주 가맥의 시초가 되었다. 또, '맥주 공장 근처에 있는 슈퍼에서는 갓 만든 신선한 맥주를 사다 마실 수 있고, 이를 찾는 손님들에게 슈퍼에서 맥주를 마실 수 있게 했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원조로 꼽히는 <영광상회>는 지금은 사라졌고, 현재 영업중인 가맥집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은 <초원편의점(초원슈퍼)>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촉촉한 명태를 비롯, 북어, 갑오징어 등을 팔고 있다. 전북도청이 이전하기 전에는 그야말로 발을 붙일 곳이 없었다.

 어느 날, 초원편의점에서 친구 2명과 함께 늦게 까지 명태를 쭉쭉 찢어가며 맥주를 마시다가 바로 옆 전북신용보증재단 옆에서 만난 어느 무당의 인생사를 듣다가 너무 슬퍼 눈물을 흘린 기억이 새롭다. 당초는 기독교 신자였다는 이 당골네는 말의 절반을 영어로 했다. 그녀는 자기의 오른 손을 내 오른쪽 사타구니 바로 옆까지 가져다 놓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화장실에 잠시 다녀올 테니 술에 수면제를 넣지 말라고 주문했다. 그녀의 나이가 70-80이었는데고 여자임이 분명했다. 그녀는 죽었는가, 살았는가. 그후로 만날 수 없었다.

  전주 가맥집 중에서 가장 유명세를 떨치는 곳은 <전일갑오 (전일슈퍼)>는 전주를 찾는 외지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전주가맥집, 전주맛집이다.

 현재 도일슈퍼, 초원슈퍼, 경원상회, 전일슈퍼, 임실슈퍼 등이 나름대로 맛을 개발하면서 꾸준히 명맥을 이었다. 가맥 집은 전주에서만 300여곳에 이른다.

 가맥집이 전주에 뿌리 내린 건 부담 없는 가격에다 독특한 맛의 양념장 때문이다. 맥주 한 병에 2500원으로 저렴하다. 저렴한 가격으로 맥주를 즐길 수 있어 직장인이나 대학생들이 가맥 집을 선호한다.

 안주는 갑오징어나 황태, 계란말이, 땅콩 등 간단하게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것들이다. 이 중 백미는 단연 갑오징어다.

 갑오징어는 오징어보다 질겨서 망치로 두드려 살을 부드럽게 하는데 양념장을 찍어 먹는 맛이 오묘하다. 가맥 집마다 다른 양념장을 맛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술꾼들의 양념장 품평도 날카롭다. 야외에는 탁자가 비치돼 있고 실내에는 에어컨이 갖춰져 있어 요즘처럼 열대야에 잠 못 드는 주당들에겐 인기짱이다.

'가맥'의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맥줏값이 싸다는 것이다. '가맥'의 맥줏값은 호프집은 물론이고 일반 식당에서 파는 것보다 저렴하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대학생들이나 서민들에게 '가맥'은 그런 '직성'에 딱 어울리는 맥주집인 것이다. '가맥'에 가면 특유의 안주를 맛볼 수 있는 바, 북어와 갑오징어 그리고 계란말이다.

 한때는 '가맥'마다 그 집 바깥주인이 쇠망치로 갑오징어를 두드리는 소리가 끊일 날이 없었다.

 온갖 야채를 다져 넣어서 만들어낸 계란말이는 안주인의 손맛을 직접 가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물엿과 한약재를 비롯한 각종 재료를 넣고 달인 간장에 청양고추를 썰어넣고 그 위에 마요네즈를 듬뿍 얹은 장맛을 이제는 대부분의 '가맥'에서 맛볼 수 있다.

 그렇게 대단치 않아 보이는 가맥이 전국적인 특산품이 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저 슈퍼마켓 앞에서 가벼운 안주와 함께 마신 음주문화가 하나의 문화현상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으니까. 아마도 인심좋은 전주사람들 특유의 정문화 때문이 아닌가 싶다.

 최근에는 한옥마을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늘면서 가맥집은 이들이 찾는 단골 명소로 부상해 있다. 비빔밥, 콩나물국밥, 막걸리와 함께 전주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됐다.

  4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가맥은 이제 전주만의 독특한 문화로 자리잡았다. 전주만의 독특한 음주문화인 가맥이 이젠 축제로 승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5 가맥축제’가 8월 7일부터 8일까지 전주 한옥마을 인근 한국전통문화전당 일대에서 개최됐다.

 가맥축제는 송하진 지사의 주문이 계기였다.  2014년 10월 하이트진로 공장 방문 당시 하이트진로 활성화 대화 중 가맥 이야기가 나왔고, 민간 중심으로 주도해 보라고 권유한 것이 발단이었다고 김정두 축제조직위 사무국장이 전했다.

 가맥집 대표와 경제살리기도민회의 등 순수한 민간단체 중심의 축제다.

 전주의 동네 슈퍼마켓 앞에서 맥주만 들이키고 있는 손님의 모습이 안쓰러워 약간의 마른안주를 구워내주던 주인의 따스한 인심에서 가맥이 시작된 것은 아닐까?

 누구도 그 시작을 알 수는 없지만 전주 사람들은 대부분 가맥을 아주 자연스러운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다.  가맥을 전주를 대표하는 문화콘텐츠로 키워보면 어떨까. 가맥축제를 통해 매출 증대로 이어지고 새 콘텐츠로 뿌리내린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맥주만 홀짝이는 손님이 안쓰러워 베푼 작은 인심이 오늘의 가맥문화를 만든 것은 아닐까. 때문에 가맥이야말로 전주 사람들의 '정'을 상징하는 또다른 문화가 아닌가 싶다.<정리 이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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