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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91> 곤쟁이의 다른 이름 (부안) 쌀새우(細蝦)와 고창 세하젓



속담에 ‘곤쟁이 주고 잉어 낚는다'고 한다. 적은 자본을 들여 큰 이익을 본다는 뜻하는 말이다.

'새우젓 사려 조개젓 사려, 초봄에 담은 쌀새우는 세하젓이요, 이월 오사리는 오젓이요, 오뉴월에 담은 젓은 육젓이요, 갈에 담은 젓은 추젓이요, 겨울 산새우는 동백젓이오.('보부상의 새우젓 타령')'

왕새우(大蝦) : 서해에서 난다. 평안도에서 나는 새우 알로 젓을 담그면 매우 좋다.

곤쟁이새우(紫蝦) : 서해에서 난다. 옹강(瓮康)의 것은 짜고, 통인(通仁)의 것은 달고, 호서(湖西)의 것은 매우면서 크다. 의주(義州)에서 나는 것은 가늘고 달다.

도하(桃蝦) : 부안(扶安)과 옥구(沃溝) 등지에서 난다. 색이 복숭아꽃 같은데 맛이 매우 좋다.

모두 서해다. 왕새우도 있고, 곤쟁이새우, 도하 등도 기록되어 있다.

새우는 별나다.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식용으로 사용한다. 상당히 맛있는 식재료 중 하나다. 새우 요리도 먹지만 새우를 음식 부재료로도 사용한다. 다양하게, 널리 사용하는데 정작 대단한 레시피는 없다. 서양의 경우 굽고, 찌고, 삶고, 소스로 볶는 정도다. 우리는 조금 다르다. 다양한 새우 요리법에 삭힌 발효를 하나 더 더한다. 널리 알려진 요리법에 새우 젓갈을 더했다. 아직도 ‘마포 새우젓 장사’라는 표현이 남아 있다.

진상품 관련 근거로 쌀새우[白蝦], 새우[蝦], 말린새우(乾大蝦)는 경기도(강화도호부, 교동현, 남양도호부, 안산군, 인천도호부, 통진현, 풍덕군) 전라도(영암군, 함평현, 무장현, 부안현) 충청도(면천군, 아산현, 임천군, 태안군) 평안도(가산군, 곽산군, 삼화현, 선천군, 숙천도호부, 안주목, 용강현, 정주목, 증산현) 황해도(연안도호부)에서 대전, 왕대비전, 혜경궁, 중궁전, 세자궁에 진상하였다는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춘관통고, 공선정례에 기록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대하(大蝦)는 경기도(4고을)·충청도(3고을)·전라도(7고을)·황해도(1고을)·평안도(1고을)의 16고을, 중하(中蝦)는 경기도(7고을)·충청도(1고을)·평안도(1고을)의 9고을, 백하(白蝦)는 경기도(6고을)·전라도(2고을)·황해도(2고을)의 8고을, 하(蝦)는 전라도(3고을)·충청도(4고을)·평안도(9고을)의 16고을의 토산물이었다. 여기서 백하는 단언하기 어려우나 돗대기새우인 것 같고, 하는 어떤 종류인지 알 수 없다.
한편, 자하(紫蝦)는 경상도(3고을)·전라도(1고을)·충청도(3고을)·경기도(6고을)·황해도(3고을)·평안도(2고을)·함경도(1고을)의 19고을의 토산물이었으나, 이 자하는 곤쟁이어서 새우류가 아니다. 아무튼, 예나 지금이나 서해에서는 새우류가 많이 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자료는 왕새우를 먹는 방법은 기록하지 않았다. 평안도에서 생산되는 왕새우의 알로 담근 젓갈이 매우 좋다고 했다. 지금은 새우 알 젓갈도 사치품이다. 우리는 예전보다 새우젓갈을 ‘더 많이’ 소비하지만, 더 다양하게 소비하지는 않는다.

우리 민족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새우를 먹었다.

중국 송나라 때 고려에 왔던 사신 서긍은 “선화봉사고려도경(고려도경)”을 남겼다. 대략 1123년 무렵, 지금으로부터 9백 년 전이다. 서민들이 큰 새우를 먹는다고 적었다.

“고려 풍속에 양과 돼지가 있지만 왕공이나 귀인이 아니면 먹지 못하며, 가난한 백성은 해산물을 많이 먹는다. 미꾸라지, 전복, 조개, 진주조개, 왕새우(蝦王), 문합, 붉은 게, 굴, 거북이다리, 해조, 다시마는 귀천 없이 잘 먹는데(후략)”

“일성록” 정조 14년(1790년)4월19일의 기사에는 자하젓갈, '자하해'가 나타난다. 황해도 감사 이시수와 정조가 ‘젓갈 운반’에 대해 묻고 답한다.

(이시수) “연안 증산도의 백성 박인배 등이 별봉하는 자하해를 해주로 하여금 거행하게 해 달라고 (중략) 섬 백성이 겪는 폐단은 물산과 진헌에 있지 않고 부비(浮費)에 있습니다. (중략) 부비는 전적으로 영속(營屬)들의 농간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중략) 수로로 수송하는 일은, 자하해를 봉진하는 것은 으레 관마로 실어 운반하는데 원로에 흔들려 매번 맛이 변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재작년과 작년에는 수로로 수송해 올려 보냈으나 금년 봄에는 또 수로에 폐단이 있으므로 인부에게 짊어지고 가서 올리도록 하였습니다.“ (정조) “세하해의 봉진이 이미 폐단이 되고 있다면 하란해와 감동해 또한 어찌 폐단이 없겠는가?”

젓갈을 한양 도성으로 옮기는데 비용과 관련하여 부정부패가 심했다. 자하젓갈은 관청의 말로 옮기는데 문제는 말로 옮길 때 흔들려서 맛이 변한다는 점이다. 물길로 옮기면 좋은데 이마저 비용과 관련하여 폐단이 있다. 결국 인부들이 짊어져서 옮기게 하겠다고 보고한다. 정조의 대답에 당시 많이 사용되던 젓갈이 등장한다.

조선시대에는 지금보다 더 상세하게 새우를 갈랐다.

새우는 백하(白蝦), 미하(米蝦), 자하(紫蝦), 세하(細蝦), 대하(大蝦), 도하(桃蝦) 등으로 나눠 불렀다. ‘백하(白蝦)’는 색깔이 희다고 붙인 이름이다. 다른 이름은 ‘미하(米蝦)’다. 쌀새우 혹은 마치 쌀 같이 뽀얀 새우라는 뜻이다. 복숭아의 빛깔이라고 도하(桃蝦), 가늘다고 세하(細蝦)라고 불렀다. 이중 백하, 도화, 자하는 색깔로 새우를 가른 것이다. 낭만적이다.

가을이 되면 젓갈에 맛이 든다. 뜨거운 여름을 견디며 숙성된 맛이다. 그대로 밥상에 올려도 좋고, 무와 채소와 버무려서 먹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밥도둑이다. 가장 큰 밥도둑은 막 지은 밥에 비벼 먹는 곤쟁이젓이다. 흰밥이든 보리밥이든 곤쟁이젓 비빔밥은 감동이다. 조선시대 양반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물이었으며, 중국도 사신을 통해 곤쟁이젓을 요구하기도 했다.

곤쟁이는 길이가 1센티미터 남짓 되는 아주 작은 곤쟁잇과 갑각류다. 고문헌에는 곤쟁이젓을 자하해, 감동해, 세하해라 했다.

‘전어지’에는 곤쟁이는 서해와 남해에서 온 나라가 넘칠 정도로 많이 나지만 해주에서 나는 곤쟁이가 잘고 부드러워 맛이 좋다고 했다. 또,  5월부터 8월까지 잡는데 배에 항아리와 소금을 준비했다가 즉시 젓갈을 담근다고 했다. ‘도문대작’에는 ‘의주’에서 나는 것이 가늘고 달다고 했다. 전라도와 충청도에서는 이를 고개미, 강원도에서는 부새우라고도 한다.

곤쟁이의 다른 이름인 부안 쌀새우(細蝦, 세하)

새만금사업이  시작되기 전, 뭘 잡는지 몰라 어민들에게 물어보니 ‘쌀새우’라고 했다. '쌀새우'는 곤쟁이의 다른 이름인 세하(細蝦)를 말한다. 서해랑길을 걷다가 곰소만 한 어촌에서 자루그 물을 둘러메고 바다로 들어가는 어민을 만났다.

부안의 작당마을, 왕포마을, 계화도 어민들은 7월 하순부터 8월 말까지, 늦으면 9월 초순까지 '세하'를 잡는다.

돼지 삶은 고기 혹은 머리고기를 먹을 때 함께 먹는 새우젓, 그것이 '세하젓'이다. 그것이 요즘에 잡히는 것이다. '세하'는 두어 달 잠시 보이다가 사라진다.

세하젓은 어민들에게 '숱한 존재들'이다. 별로 돈 들이는 것 없이 재미를 가져다준다. 운이 좋은 날이면 오전, 오후 하루에 두 물때를 보기도 한다. 모항 근처의 왕포마을에서 이곳까지 세하를 잡기 위해 찾아온 어민은 부부가 각각 그물을 메고 잡는다.

바다는 참 용하다. 추석을 앞둔 어민들에게 목돈이 들어갈지 어떻게 알았던 것일까. 매일매일 물때에 맞춰 나가 잡는 생합으로는 갑작스레 목돈이 필요한 명절 지내기가 부담스럽다. 세하잡이 두어 달은 명절을 지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자연이 어민들에게 주는 보너스랄까. 그래서 간척지 나락이 누렇게 익어가고 고추밭에도 손길이 필요하지만 새벽에, 해질 무렵에 갯가로 몰려드는 새우를 찾아 어민들이 그물질을 한다.

고창 세하(細蝦)젓

세하젓(細蝦)은 고창 구시포에서 나는 가는 새우에 소금을 넣어 담근 젓갈을 말한다.

세하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라남도 서해와 남해 청정 바다와 내륙 청정 하천이 만나는 곳에서만 잡히는 바다 새우로 매우 작고 연하며 갓 잡았을 때는 몸체가 아주 투명하다. 젓을 담그면 연하게 숙성된다 하여 ‘가늘 세(細)’자와 ‘새우 하(蝦)’자를 써서 세하젓이라고 한다.

세하젓은 고창 지역에서 4~6월에 어획하여 수작업으로만 담그는 아주 귀한 젓갈로 별다른 양념을 하지 않아도 감칠맛과 영양이 뛰어나 고창에서는 일명 감동젓이라고 불린다. 세하에는 칼슘을 비롯한 무기질과 단백질이 풍부하며 특히 단백질에는 글리신이라는 아미노산과 비타민이 들어 있어 새우 고유의 맛을 더해 준다.

빛깔이 흰 잔 새우를 골라 이물질을 골라내고 물에 깨끗이 씻어서 소쿠리에 밭쳐 물기를 뺀다. 새우에 소금을 1/3 비율로 치고 잘 섞어서 적당한 항아리에 담아 꼭꼭 눌러서 위에 소금을 두껍게 얹고 봉해서 그늘에 둔다.

고창 지역은 서해안 간석지에서 생산되는 많은 양의 천일염을 이용,  어패류나 육류 등 상하기 쉬운 음식물을 장기간 보관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소금에 절여 젓갈을 담그는 방법이 고대부터 발달했다.

절임 재료로는 조개와 잔 생선 등이 많이 쓰였고, 절이는 방법에 따라 소금에만 절인 것, 소금과 쌀밥을 섞어 절인 것, 소금과 메줏가루를 섞어 절인 것 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에서 소금에만 절인 것이 젓갈로 이어졌고, 밥을 섞은 것은 생선 식해가 되었으며, 메줏가루를 섞어 절인 것은 조선시대까지는 어육장으로 이어져 왔으나 현대에 와서는 보기 어렵다. 또 “대부분 화식(火食)하지 않는다”는 백제에 대한 기록으로 미루어 젓갈, 염장 생선, 야채 소금 절임, 어포, 육포 등의 냉식류(冷食類)를 즐겨 먹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어서 고창 지역이 속해 있던 백제 사회가 발효 음식을 즐겨 먹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도 부안과 고창으로 발길을 옮기면 곤쟁이를 잡으러 가는 어민을 만 날 수 있다. 곤쟁이젓으로 뚝딱 밥 한 그릇을 비우고 한 그릇을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