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식

허균_성소부부고 '도문대작' 서문

허균_성소부부고 '도문대작' 서문

도문대작 인(屠門大嚼引, '푸줏간 문에서 입을 크게 다시다' 서문) (권 26)361자
nicole0301
2020. 9. 1. 16:50

余家雖寒素, 而先大夫存時, 四方異味禮饋者多, 故幼日備食珍羞. 及長, 贅豪家, 又窮陸海之味. 亂日避兵于北方, 歸江陵外業, 殊方奇錯, 因得歷嘗. 而釋褐後南北官轍, 益以餬其口, 故我國所產, 無不嚌其炙而嚼其英焉.

우리 집은 비록 가난했지만 선친이 살아 계실 때는 사방에서 별미 음식을 예물로 보내는 이들이 많았기에 어린 시절 진귀한 음식을 두루 먹어보았다. 또 자라서는 부잣집에 장가가서 땅과 바다에서 나는 온갖 음식을 다 맛보았다. 임진왜란 때는 북방으로 피난 갔다가 강릉의 외가로 돌아와 지방의 특산 진미를 두루 맛보았고, 벼슬한 뒤로는 남북으로 임지를 옮겨 다니며 이런저런 음식을 대접받았다. 이쯤 되니 우리나라에서 나는 음식이라면 고기며 나물이며 먹어보지 않은 게 없다.

*寒素(한소): 한미하고 지위가 낫다.

*禮饋: 禮贈之物.

*珍羞(진수): 진기한 반찬

*奇錯(기착): 진기하고 번다함. 明 李贄《莊純夫還閩有憶》詩之二:“海物多奇錯,礪房味正清。”

*嚌(제): 맛보다.

 
食色性也, 而食尤軀命之關. 先賢以飮食爲賤者, 指其饕而徇利也, 何嘗廢食而不談乎? 不然則八珍之品, 何以記諸禮經, 而孟軻有魚熊之分耶?

식욕과 성욕은 인간의 본성이요, 특히 식욕은 생명과 관계된다. 그렇거늘 옛 현인들이 먹고 마시는 일을 천히 여겼던 건 먹는 것을 탐해 이익을 좇는 일을 경계한 것이지, 어찌 먹는 일을 폐하고 음식에 관해서는 말도 꺼내지 말라는 것이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여덟 가지 진미를 무엇하러 『예기』에 기록했겠으며, 맹가가 생선과 곰발바닥을 무엇하러 비교했겠는가.

 

*饕(도): 탐하다.

*徇利(순리): 주창할 순, 이로울 리. 자신을 아끼지 않고 이익을 추구함. 徇은 殉과 통한다. (이익에 죽다).

*八珍: 고대의 여덟 종의 요리. 《周禮‧天官‧膳夫》:“珍用八物。” 明 陶宗儀《輟耕錄‧續演雅發揮》:“所謂八珍,則醍醐、麆沆、野駝蹄、鹿唇、駝乳糜、天鵝炙、紫玉漿、玄玉漿也。”

 

 

余嘗見何氏食經及郇公食單, 二公皆窮天下之味, 極其豐侈, 故品類甚夥, 以萬爲計. 締看之, 則只是互作美名, 爲眩耀之具已. 我國雖僻, 環以巨浸, 阻以崇山, 故物產亦富饒, 若用何韋二氏例, 換號而區別之, 殆亦可萬數也.

나는 하증의 『식경』과 위거원의 『식단』을 본 적이 있는데, 두 분은 모두 천하의 맛을 다 보아 풍성하고 사치하기 그지 없어서 책에 수록된 음식 종류가 일만 가지는 될 텐데, 그러나 총괄해 보면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 현란하게 꾸몄을 따름이다. 우리나라가 비록 외진 곳에 있다지만 큰 바다가 둘러싸고 높은 산이 솟아 있어 물산 또한 풍부하니, 하증과 위거원 두 분의 방식을 따라서 이런저런 이름을 붙여 음식을 구별한다면 아마도 우리나라 역시 일만 가지는 될 것이다.

 

*夥(과): 많다.

*何氏食經: 하증(何曾 199~278)의 『식경』. 하증은 진나라 때의 재상으로, 사치를 좋아해서 하루 식사비용으로 1만 냥을 쓰면서도 먹을 음식이 없다고 투정했다는 고사가 있다. 음식에 관한 책으로 『안평공식단(安平公食單)』을 저술했다고 한다.

*郇公食單: 위거원(韋巨源, 631~710)의 『식단』. 위거원은 측천무후 때의 문신으로, 『식단』은 그가 지은 음식 관련 저술 『소미연식단(燒尾宴食單)』을 말한다. 『식경』은 허균이 하증의 『안평공식단』과 단문창(段文昌, 773~835 단성식의 아버지)의 『식경』을 혼동해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허균은 위에 언급된 책의 일부와 왕세정의 『완위여편』에 실린 관련 기록을 읽은 것이 아닐까 싶다. (위거원은 섬서성 서안시 출신으로 郇縣의 伯을 지낸 바 있다.)

*巨浸: 큰 물.

 

 

余罪徙海濱, 糠籺不給, 飣案者唯腐鰻腥鱗馬齒莧野芹, 而日兼食, 終夕枵腹. 每念昔日所食山珍海錯, 飫而斥不御者, 口津津流饞涎. 雖欲更嘗, 邈若天上王母桃, 身非方朔, 安得偸摘也.

내가 죄를 짓고 바닷가로 유배 갔을 때는 쌀겨조차 부족했고 밥상 위에 반찬이라곤 썩어 문드러진 뱀장어나 비린 생선에 쇠비름과 미나리 뿐이었다. 그나마 하루에 간신히 두 끼를 먹다보니 아침저녁으로 배가 고팠다. 그럴 때마다 예전에 산해진미를 물리도록 먹다가 내치던 시절을 생각하면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 다시 먹어보고 싶지만, 천상에 있는 서왕모의 복숭아처럼 아득히 멀리 있으니, 내가 동방삭이 아니고서야 어찌 훔칠 수 있겠는가.

 

*糠籺(강흘): 겨 강, 무거리 흘.

*飣案: 상 위에 쌓인 것. (飣: 쌓아둘 정)

*鰻(만): 뱀장어

*馬齒莧(마치현): 쇠비름

*芹(근): 미나리.

*枵腹(효복): 빈 배. 배가 고픔.

*海錯(해착): 각종 해산물. 『서경』 우공편에서 유래. “厥貢鹽絺, 海物惟錯.”(靑州에서 바치는 공물은 소금과 올이 가는 갈포이고 해산물은 다양하다)

*饞涎(참연): 탐할 참, 침 연. 식욕으로 인해 입에서 침이 흐름.

 

遂列類而錄之, 時看之, 以當一臠焉. 旣訖, 命之曰, 屠門大嚼, 以戒夫世之達者窮侈於口, 暴殄不節, 而榮貴之不可常也, 如是已.

辛亥四月二十一日, 惺惺居士題.

마침내 여러 음식을 종류대로 나열해 기록하고 때때로 보면서 고기 한 점을 눈앞에 둔 셈 쳤다. 다 쓰고 나서 제목을 ‘푸줏간 앞에서 크게 입맛을 다시다’라고 붙였는데, 이는 세상의 현달한 자들이 음식 사치를 끝없이 벌이며 절제하지 못하고 있지만 부귀영화라는 것이 영원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자 그리한 것이다.

신해년(1611) 4월 21일, 성성거사가 쓰다.

 

*정길수 해제: 1611년 유배지에서 『도문대작』이라는 책을 엮으며 쓴 서문이다. 『도문대작』은 허균이 맛본 별미 음식의 산지, 특징, 종류 등을 간략히 기록한 책으로, 『성소부부고』 26권에 수록되어 있다. ‘도문대작’은 ‘푸줏간 앞에서 크게 입맛을 다시다’라는 뜻이다. 본래 환담(桓譚, 기원전 23~56, 혹은 기원전 43~28. 字는 君山. 후한의 정치가)의 「新論」에 나오는 말로, 고기 맛을 아는 사람은 푸줏간 문 앞에만 가도 군침이 돌아 입맛을 크게 다신다는 뜻이다. 흔히 먹고 싶거나 갖고 싶지만 이룰 수 없어 상상만으로 만족하는 상황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도문대작 어원: 삼국 시대 위(魏)나라 조식(曹植)의 〈여오계중서(與吳季重書)〉에 “푸줏간을 지나며 크게 씹는 흉내를 내는 것은 비록 고기를 얻지 못했어도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이다.[過屠門而大嚼, 雖不得肉, 貴且快意.]”라고 하였다. 《桓譚新論, 曹子建集》

 

*환담은 중형의 필요성을 옹호했다는 점에서 법가적인 면이 있고, 왕충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가 있음. 여영시는 환담이 신선에 대해 모순적인 관점을 갖고 있었다고 보았다. 이에 대한 가능한 설명은 「신론」이 후대의 저작이라 보는 것임. (Yu, Yingshi (1965), "Life and Immortality in The Mind of Han China", Harvard Journal of Asiatic Studies, Vol. 25.)

 

*추가

-하증(何曾): 자는 穎考. 『晉書』 권85, 何曾傳. “然性奢豪,務在華侈。帷帳車服,窮極綺麗,廚膳滋味,過於王者。每燕見,不食太官所設,帝輒命取其食。蒸餅上不坼作十字不食。食日萬錢,猶曰無下箸處。” 『세설신어』 「任誕」에서는 완적이 모친상에 고기 먹는 것을 규탄하는 인물로 나온다. 소식(蘇軾)이 ‘나나 하증이나 한 번 배부르기는 일반이라.’고 읊은 바 있음.

-순공(郇公): 위거원, 『新唐書』 권123, 韋巨源傳

-『엄주사부고』 권 171, 「宛委餘編」 16

“何太宰曽, 有安平公食單, 韋僕射巨源, 有燒尾宴食單, 段丞相文昌有食經五十巻, 號鄒平公食憲章, 庖榜曰, 煉珍堂在途, 曰行珍館虞悰, 有食方謝諷, 有食經各十巻, 孟蜀食典一百巻.

何曽食日萬錢, 子劭日二萬錢…”(『晉書』 권85의 하증전 다음에 자소전이 나옴)

이상과 같은 기록이 방이지(方以智, 1611~1671)의 『通雅』 권39에도 나옴. 서응추(徐應秋, ?~1621)의 『玉芝堂談薈』 권4, 「飲食之侈」에도 하증을 필두로 한 유사한 언급이 나옴.

 

*참고문헌 리스트

안나미, 「허균의 「도문대작(屠門大嚼)」에 대한 고찰 -만명 유행 현상과 관련하여」, 󰡔한문학논집󰡕 50, 근역한문학회, 2018.

안득용, 「「도문대작(屠門大嚼)」의 성격과 성립 배경에 대한 시론(試論)」, 󰡔이화어문논집󰡕 49, 이화어문학회, 2019.

 

*원문 일람

余家雖寒素, 而先大夫存時, 四方異味禮饋者多, 故幼日備食珍羞. 及長, 贅豪家, 又窮陸海之味. 亂日避兵于北方, 歸江陵外業, 殊方奇錯, 因得歷嘗. 而釋褐後南北官轍, 益以餬其口, 故我國所產, 無不嚌其炙而嚼其英焉.

食色性也, 而食尤軀命之關. 先賢以飮食爲賤者, 指其饕而徇利也, 何嘗廢食而不談乎? 不然則八珍之品, 何以記諸禮經, 而孟軻有魚熊之分耶?

余嘗見何氏食經及郇公食單, 二公皆窮天下之味, 極其豐侈, 故品類甚夥, 以萬爲計. 締看之, 則只是互作美名, 爲眩耀之具已. 我國雖僻, 環以巨浸, 阻以崇山, 故物產亦富饒, 若用何韋二氏例, 換號而區別之, 殆亦可萬數也.

余罪徙海濱, 糠籺不給, 飣案者唯腐鰻腥鱗馬齒莧野芹, 而日兼食, 終夕枵腹. 每念昔日所食山珍海錯, 飫而斥不御者, 口津津流饞涎. 雖欲更嘗, 邈若天上王母桃, 身非方朔, 安得偸摘也.

遂列類而錄之, 時看之, 以當一臠焉. 旣訖, 命之曰, 屠門大嚼, 以戒夫世之達者窮侈於口, 暴殄不節, 而榮貴之不可常也, 如是已.

辛亥四月二十一日, 惺惺居士題.

 

(번역, 정길수 역, 2012, 181~183쪽, 참조하여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