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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24> 군산은 예나 지금이나 홍어의 고장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24>  군산은 예나 지금이나 홍어의 고장

경상도에 문어가 있다면 전라도 지역에는 홍어가 있다. 모든 제사상과 잔칫상에는 홍어가 있어야 하고, 홍어의 맛이 좋으면 대접을 잘 받았다는 말이 나올 만큼 차례상에서도 빠지지 않는 수산물이다. 홍어는 전남 지역에서는 찜이나 홍어회로, 전북 지역에서는 전으로 차례상에 올린다. 또 지역 특산물인 꼬막을 살짝 데쳐서 양념없이 상에 올리기도 하고 병어찜을 차례상에 올리기도 한다.

홍어는 전라도이다. 홍어는 전라도 음식을 대표하는 것을 넘어, 전라도 사람을 상징하기까지 한다. 전라도 사람을 비꼬기 위해 홍어를 들먹이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그러라고 하면 된다. 그건 그들의 도덕적 수준 문제이지 전라도 사람의 식성 문제가 아니다. ‘전라도 홍어’ 소리에 기분 상한다고 ‘경상도 과메기’니 ‘경상도 돔배기’니 하는 말은 하지 마시라. 똑같은 놈이 될 뿐이다.

‘박대’의 고장 군산이 ‘홍어’의 주산지로 급부상하면서 흑산도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 수온 상승으로 군산 어청도 인근에서 잡히는 참홍어(홍어) 어획량이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과거 홍어 주산지였던 전남의 2배 가까운 어획량이 전북에 할당된다.

해양수산부가 확정한 올 어기(漁期·7월부터 내년 5월까지) 홍어 총허용어획량(TAC·Total Allowable Catch)은 3,668t이다.  군산은 1365t(37.2%)을 배정받아 2년 연속 전국에서 가장 많은 홍어 어획량을 확보했다. 

전북에 이어 전남 817t, 충남 755t, 인천 310t, 경남 93t, 제주 21t 순이다.

홍어는 수산 자원 보호를 위해 정부가 포획량을 제한하는 TAC 대상 어종이다. TAC 제도는 어종별로 연간 잡을 수 있는 양을 정해 그 한도 내에서만 어획을 허용하는 것이다. 

2009년부터 전남 신안 흑산도 근해와 인천 옹진 대청도 근해 등 2곳만 적용받았다가 지난해 군산(어청도)도 포함됐다.

이에 따라 군산 인근 어청도에서만 조업하는 홍어잡이 어선 수가 늘어나며 생산량을 견인하고 있다.

본래 ‘홍어’는 전북을 비롯한 전남· 광주를 대표하는 호남(서해안권) 음식 중 하나다. 홍어는 숙성 시켜 먹는 유일한 생선인데 톡 쏘는 맛이 별미로 꼽힌다.
홍어 먹는 법은 호남권과 다른 지역간에는 다소 다르다.

호남의 식문화는 ‘홍어삼합’과 ‘홍탁’이다. 홍어에 돼지고기와 묶은 김치를 곁들여 먹는 게 홍어삼합이다.

여기에 서민들의 술인 막걸리가 빠질 수 없다. 이것을 홍어에 막걸리를 마시는 것을 홍탁이라고 한다.

홍어 앳국은 속풀이 해장국으로 최고다. 앳국은 홍어 내장과 보리 순을 된장에 풀어 끓인 국이다. 이외에 회, 구이, 찜, 포 등 다양한 요리법이 있다. 아무튼 홍어는 버릴 게 하나도 없는 몇 안되는 어종이다.

예로부터 호남에서는 결혼이나 회갑 등 잔칫상은 물론 제삿 때도 빠지지 않고 오른 단골 음식이 홍어였다.

거의 1,000년간 유지해온 전라도란 이름으로 시작된 전라도 홍어였지만 근대기 이후 별개의 동네인 것처럼 되면서 특정지역의 음식인양 치부됐던 것도 사실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들어 전남권에선 흑산도 홍어란 이름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독차지해왔다.

홍어(洪魚)는 ‘조선왕조실록’ 등에 왕에게 진상한 귀한 식재료로 기록되어 있다.  

흑산 해역에서는 근해 연승, 연안 복합 어선 19척이 홍어잡이를 하고 있다. 흑산 해역에서 주낙·연승 같은 전통 어로 방식으로 행하는 ‘흑산 홍어잡이’는 지난해 9월 제11호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됐다.

붉은 색을 띄어 이름 붙여진 홍어는 역사적으로도 등장한 귀한 어종이다. 

조선왕조 초기 ‘세종실록지리지’(1454년)를 보면 임금에 올리던 진상품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흑산홍어가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조선 후기 유배인 김약행의 ‘유대흑기’(1770년)라고 전해진다. 그 뿐 아니다. 흑산도에서 유배 생활을 한 정약전(1758~1816)이 당시 서남해 어종을 기록한 자산어보에 등장한다. 여기에는 “전남 지역 홍어의 기호가 예전부터 있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훅산도 인근 도초면 우이도에서 홍어 장수로, 정약전과도 우의를 다진 문순득(1777~1847)의 ‘표해시말’에도 기록돼 있는 역사적 식재료로 손꼽힌다.

홍어요리에 대한 경험과 기억

홍어는 언제부터 전라도를 대표하는 토속음식이 되었을까? 홍어는 전라도 사람들만 먹었을까? 전라도라는행정지역 경계 안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홍어를 먹었을까? 전라도 사람들은 모두 같은 방식으로 홍어를 요리해 먹었을까?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수원도호부」의 토산물 조에 병어, 석수어(조기) 등과 함께 홍어가 나오는 것을 보면 적어도 조선시대에 홍어는 전라도 사람들만 먹거나 전라도에서만 잡히는 어류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 국내산 홍어의 산지는 흑산도로 알려져 있지만 국내산 홍어는 흑산도뿐 아니라, 군산, 인천, 대청도, 소청도, 백령도 등 서해안 일대에서 잡힌다. 

홍어는 때로 부안 위도, 군산, 인천 등에서도 잡힌다고 한다. 홍어가 잡히는 부안 위도, 군산, 인천, 소청도, 대청도, 백령도 등 서해안 일대는 조기잡이 배가 다니는 곳이기도 하다. 

홍어는 조기 및 다른 어류 등과 함께 잡히는 어획물 중 하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옛날에는 함평의 주포까지 커다란 중선배가 들어와 조기를 막 펐는데 그 때에 홍어도 많이 들어 왔다. 주포에 중선배가 들어와 고기를 막 푸면 생선 장사를 하는 여자들이 ‘다라이’로 받아와 동네마다 이고 다니면서 곡식과 바꾸어 갔다”고 말한다. 홍어배가 아닌 일반 고깃배도 다른 고기와 함께 홍어를 잡거나 판매했음을 시사한다.

요즘에는 호남 지역의 홍어 요리들이 많이 유명해져서 전라도의 대표적인 요리들 가운데 하나로 많이 알려졌다. 다만 전라도에서도 지역별로 다소 차이가 있다.

재미있는 역사적 사실은 전라도가 주산지에 편입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서 홍어의 산지는 경기도의 강화도, 안산과 충청도의 당진, 서산, 태안, 보령, 서천과 경상도의 울산, 사천, 하동과 평안도의 용천이라고 적혀있으나 의외로 전라도는 없다.

이런 역사에도 흑산도 홍어란 이름으로 왜 자리잡았을까.이런 추론은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물산이 풍부한 전라도지역이 다양한 음식과 수요를 좌우하면서 홍어 요리에 대한 특화한 결과물일 수도 있다.

홍어와 가오리 어획량을 명확히 구분해 통계를 잡은 것은 1960년대다. 그런데 그 무렵 전남의 홍어 어획량은 경기, 충남, 전북보다 낮았다. 

1960년 전남에서 200톤의 홍어를 잡는 동안 전북에서는 900톤, 경기와 충남에서는 각각 300톤의 홍어를 잡았다. 전북에서 잡은 홍어의 상당량은 군산 어청도에서 어획된 것이었다.
 
최대어장 군산 어청도, 인천 옹진군

또 1967년 전국 홍어 어획량 2500톤 중 경기도에서 1000톤, 부산과 경남에서 880톤, 전북에서 350톤을 잡았는데 전남 어획량은 100톤에 불과했다. 

이들 통계 수치는 당시에 작성한 ‘수산통계연보’를 근거로 한 것이다.

 아쉽게도 1970년대부터는 홍어의 어획량이 급감해서인지 ‘수산통계연보’는 홍어와 가오리를 합쳐 ‘가오리류’로 묶어 통계를 내는 바람에 지역별 홍어 어획량을 산출해내기가 어렵다.

여하튼 1960년대 흑산도 홍어가 전남 사람들의 입맛에 맞았는지는 몰라도 어획량으로 보면 흑산도의 비중은 그리 높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 무렵 영산포에 들어온 대부분의 홍어가 흑산도 근해에서 잡은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실제로 연평도 등지의 어부들이 잡은 홍어를 직접 영산포까지 배에 싣고 왔다는 증언도 많다.
이런 사이에 홍어와 관련해서 전북이란 이름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최근들어 전남과 흑산도 홍어가 아닌 호남 서해안권의 어종인 전라도 홍어이자, 군산의 홍어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군산시는 국내 최대 홍어 주산지로 부상한 만큼 군산 홍어를 명품화하기 위해 다양한 시책을 추진중이다. 군산 홍어는 미끼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잡아 상처가 없고, 흑산도 홍어보다 저렴해 가격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는 홍어 명품화를 위해 홍보 영상을 만들어 배포하고 조업 어선에서 생산자 이력제 칩을 부착하는 시스템 구축 등을 진행하고 있다.

어느덧 전라도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홍어가 자리 잡았다. 인터넷에서 전라도를 비하하는 또는 비꼬는 의미로 홍어가 이용되기도 하나 지금은 전국민이 애호하는, 없어서 못먹는, 아니 타지의 사람들이 더 찾는 귀한 음식으로 신분이 상승했다.

바닷물 온도가 오르면서 난류성 어종인 홍어 서식지가 군산까지 올라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전북도와 군산시는 특화 상품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고 한다. ‘군산 홍어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머지않아 흑산도가 ‘홍어 1번지’ 자리를 내줘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