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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97> '아침 태양이 가장 먼저 비추는 집' 고창 조양관(朝陽館)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97> '아침 태양이 가장 먼저 비추는 집' 고창 조양관(朝陽館)

고창에 가장 오래된 한정식 집이 하나 있다. 이름 아침 태양이 가장 먼저 비추는 집이라는 뜻의 '조양관(朝陽館)'이 바로 그 곳이다.

조양관은 1935년에 건립된 고창에 몃 안남은 일제강점기 건물로 백년 가까운 세월을 고창 중심지에 있으면서 기생집, 한정식집으로 명성을 떨쳐왔던 곳이다. 시간의 흐름속에 옛 명성이  희미해져 갈 때쯤 행정과 주민이  힘을 모아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고창의 뉴~핫플레이스로 변신하는 중이다. 

주민들이 바리스타 교육을 받아 직접 내려주는 아이스아메리카노  맛이 기가 막히다. 말로는 고급 원두를 써서 그렇다는데  실은 조양관에 흐르는 고즈넉한 분위기에 커피맛이 한층 좋아진게 아닌가 싶다. 조양카페가 조만간 오픈한다고 한다.

일본식 시멘트 기와를 얹은 2층 일식여관으로 건축된 조양식당은 지붕에 용마루와 추녀마루가 있지만 내림 마루가 없는 독특한 형태로 당시 여관의 공간구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조양식당은 해방 이후 창업주 최계월 할머니가 '조양관'이라는 전라도 한정식집으로 운영해오다 아들 부부가 대를 잇고 있으며, 전북은 물론 광주지역에서 음식맛을 즐기려는 손님들이 많이 찾아온다.

한국전쟁 후 전주의 요정 ‘행원’에서 주방 일을 하던 사람이 ‘국일여관’을 인수해 ‘조양관’이라는 음식점을 열었다. 

‘조양관’은 일반 음식점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유행했던 요정으로 영업을 했다. 요정은 요리가 주목적이 아니라 술과 여흥을 파는 업태로서, 기생제도의 변화와 함께 전국적으로 곳곳에 생겨났던 업태다.

 조양관은 1970년대까지 고창의 손꼽아주는 요정이었으나, 이후 고급 한정식 음식점으로 전환했다. 조양관 건물은 일제강점기 주거시설의 특징을 간직한 건물로 평가받아 2007년 등록문화재 제325호로 지정되었다.

 조양관은 원래 여관으로 지어졌다. 일반 건축물 대장에 기록된 연대는 1935년이지만, 실제로는 더 전에 지어졌다는 설도 있다.

 여관으로 운영될 당시 상호는 ‘국일여관’이었다고 한다. 해방과 한국전쟁이 지난 후 음식점으로 용도가 바뀌었고, 내부와 외부 구조도 그에 맞추어 변화하기는 했으나, 여러 칸의 방으로 나뉘어 있어 여관의 흔적을 여전히 보여준다.

여관과 음식점은 용도가 전혀 다른 공간이다. 하지만 한 세대 전만 해도 한국의 여관에서도 직접 음식을 조리해 손님의 방으로 가져다주었다. 일본의 료칸 서비스에는 요즘도 조반이 필수적으로 포함된다. 그러므로 조양관은 지어진 때부터 지금까지 80년 넘게 음식과 인연이 깊은 공간으로 유지된 셈이다.

한국전쟁 후 1950년대에 ‘국일여관’ 건물을 인수한 최계월은  전주의 유명한 요정인 ‘행원’의 주방 책임자였다. 

원래 ‘행원’의 예기(藝妓)였으나, 목에 이상이 생겨 주방 일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국일여관’은 숙박업을 접고, ‘조양관’이라는 일종의 음식점으로 변신했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이 쉽게 드나드는 식당이 아니라 고창에서 알아주는 요정이 됐다.

전주의 ‘행원’과 고창의 ‘조양’은 창업자의 인연뿐만 아니라 역사 또한 흥미로운 점이 많다.

 ‘행원’은 원래 1928년 낙원권번으로 시작됐다. 권번이란 1890년대 조선시대 관기(官妓) 제도가 폐지된 이후 조직된 기생조합이다. 

1908년 공포된 ‘기생단속령’과 ‘창기단속령’에 따라 기생조합은 서울 기생(경기)과 지방 기생(향기)으로 나뉘어 식민당국의 규제를 받았다.

 낙원권번은 후일 ‘행원’이라는 요정이 되어, 1983년 한식당으로 바뀔 때까지 전주에서 꼽아주는 요정으로 영업을 계속했다. 현재 전주의 ‘행원’은 카페와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뀌었다.

고창의 ‘조양’은 1970년대까지 고창에서 가장 유명한 요정으로 번창했다.

 ‘조양’ 앞으로는 고창천이 흐르는데, 벚꽃 흐드러지게 피는 봄밤이면 ‘조양’의 2층 연회장에서 노랫가락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에 ‘오진암’, ‘대원각’, ‘삼청각’ 3대 요정이 있었다면, 전주에는 ‘행원’이, 고창에는 ‘조양’이 있었던 셈이다.

‘행원’, ‘조양’ 같은 업태는 사실 근대 들어 새롭게 등장한 영업 방식이다. 개항기에 일본인과 청나라 거류지를 중심으로 술과 여흥을 함께 파는 음식점들이 들어선 데다, 1909년 이를 한국식으로 변형시킨 명월관이 문을 열었다. 

명월관을 연 사람은 대한제국 궁내부 전선사장(典膳司長)을 지낸 안순환(安淳煥)이다. 이후, 크고 작은 연회를 열 수 있고, 기예에 능한 기생들을 불러 공연까지 곁들이는 요정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요정은 접대의 공간이다. 허기를 채우거나 맛을 즐기기 위해 찾는 음식점과는 달리 ‘한상 떡 벌어지게’ 차려놓고 과시해 상대에게 만족감을 주는 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요정에서 차려내는 한상은 한 끼에 도저히 먹지 못할 만큼 음식과 반찬의 가짓수가 많다. ‘한정식’이라는 말은 이 같은 요정의 행태가 남긴 관행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왕도 평상적인 상차림은 7첩이 고작이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고창의 ‘조양’도, 전주의 ‘행원’도 1980년대 들어 사양길을 걷게 된다. ‘룸살롱’이라는 업태가 요정의 수요를 흡수해버렸기 때문이다. 

비난의 어조가 다분했던 ‘요정정치’라는 말도 서서히 사라져갔다. 시대가 바뀌자 ‘조양’은 요정이 아니라 ‘한정식’ 음식점으로 명맥을 이어갔다. 

외지 손님이 고창을 찾아왔을 때 갈만한 고급 음식점을 지향했고, 이 전략은 성공적이었던 듯하다. 고창의 음식점 하면 ‘조양식당’을 먼저 떠올리는 지역 사람들이 많았다.

‘조양식당’ 건물은 2007년 등록문화재 제325호로 지정됐다. 고창읍내에 남은 유일한 일본식 주거시설이라는 점에서 평가를 받은 덕이다. 일식 시멘트 기와를 얹은 2층 건물(연면적 254㎡, 건축면적 188㎡)은 한눈에 봐도 일제강점기 건물이라고 직감할 수 있다. 

지붕과 처마의 선도 일본식이고, 2층 외벽을 목재 비늘판으로 마감한 방식도 일본식이다. 물론 세월이 세월이고, 용도도 자주 변경되어 변형은 많이 됐다. 그래도 여전히 식당 영업을 하고 있으므로, 보존과 활용이 비교적 잘 되고 있다고 평가된다. 

2010년대 들어 휴업을 하고 리모델링을 거쳐 다시 식당 문을 열었다. 현재 옥호는 ‘조양관’이며, 서울 강남에 분관을 내기도 했다.

조양식당 남쪽으로는 동리 신재효(桐里 申在孝·1812~1884)의 고택(서재)과 동리국악당이 있고, 조금 더 가면 고창읍성이다. 

한편 2018년 영화 '타짜'(2006)와 '남자가 사랑할 때'(2014) 촬영지로 유명한 전북 군산 중국집 빈해원이 문화재가 됐다.

원도심인 장미동에 있는 빈해원은 화교인 왕근석 씨가 1950년대 창업한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 음식점으로, 1965년 현재 건물로 옮겼고 1970년대에 증축했다.

철근 콘크리트와 벽돌로 쌓은 2층 건물이며, 내부는 개방된 느낌을 준다. 특유의 개방감 때문에 '남자가 사랑할 때' 촬영 당시에서는 불법 도박장으로 꾸며졌다. 보존 상태가 나쁘지 않고 군산 생활사를 보여주는 자료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운영 중인 식당 중에는 일제강점기 건물인 고창 조양식당을 제외하면 문화재로 등록된 사례가 거의 없다.

*일부 사진 페친 오균구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