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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음식방문니라

조선시대 충청도 양반 가문의 조리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책이 발간됐다. '음식방문니라'는 1891년 숙부인 전의이씨(全義李氏)가 저술한 한글 음식 조리서이다. 충청남도 홍성군 양주조씨 사운고택에서 세전되어 오는 책으로 한글 필사본이다. 72항의 표제어에 70종의 음식과 술 만드는 법이 기록되어 있다. 원본 '음식방문니라'는 16장 분량의 순한글 필사본으로 '음식을 만드는 조리법'이라는 뜻의 음식방문(飮食方文)에 우리말 '니라(이다)'를 붙인 제목이다. 조선시대와 대한제국의 음식문화가 시대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 변화해 갔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다. 게다가 병서 표기, 음운 변화 등의 특징도 돋보여 국어학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조선 제21대 왕 영조는 52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한 소문에 끈질기게 시달렸다. 바로 이복형이자 선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이야기다. '경종실록' 4년 8월 22일의 기록에 따르면, 경종은 복통과 설사에 시달리다가 끝내 숨을 거두었다. 원인으로는 그로부터 이틀 전 먹은 생감과 게장이 지목되었는데, 상극이라고 하는 감과 게의 조합은 이제는 엉성한 논리임이 드러났지만, 당시에는 실록에서도 “의가(醫家)에서 매우 꺼리는 것”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위험하게 여겨졌다. '음식방문니라'는 감·배·게를 함께 먹지 말라는 구절과 더불어 음식문화에서 각별히 유의해야 할 지침을 함께 싣고 있다. '감과 배와 게를 함께 먹지 말고, 과실이 땅에 떨어져 구더기가 꼬인 것을 먹지 말며, 먼저 익어서 떨어진 과실은 반드시 독한 벌레가 숨어 있을 것이니 먹지 말아야 한다'
옛날부터 음식에는 각종 신비하고 주술적인 이야기가 함께 따라다녔다. ‘낙지’를 먹으면 시험에 ‘낙제’한다, 게(蟹)를 먹으면 시험에 떨어져[解] 고향으로 가야 한다. 이 이야기들은 허황하고 어처구니없게 들릴지언정 우리 민속의 일면을 구성하는 요소임은 분명하다. '음식방문이라'는 밤을 잘 굽는 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여러 개 중 남몰래 하나를 빼내는 데 성공하거나 눈썹에 문지른 뒤 구우면 타지 않는다고 한다. 그 효능이 일반적인 미신과는 달리 기복과 구체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터무니없는 조리법은 웃음을 자아내며 선조들의 재치를 짐작하게 한다. '밤 구울 때 타지 않게 하는 방법. 밤을 구울 때 그중 하나를 남이 모르게 손에 쥐어 감추고 구우면 모든 밤이 타지 않는다. 구우려는 밤마다 눈썹 위에 세 번씩 문질러 구우면 타지 않는다'
전해지는 조리서들을 보면 동쪽인 경북 영양의 정부인 장계향 선생이 1670년 무렵 궁체로 쓴 필사본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서쪽인 충남 홍성의 사운종택에 전해지는 숙부인 전의이씨가 1891년 필사한 '음식방문(飮食方文)니라', 한반도 가운데랄 수 있는 충북 청주에는 영동대학교 호텔외식조리학과 지명순 교수가 발굴해낸 '반찬등속'이 있다. 다양한 양념, 형형색색의 반찬, 풍성하고 맛깔스러운 전북 음식들을 기록한 조리서는 어디에 있는가./이종근(문화교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