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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완주 고산의 식혜, 1920년대 한국 최고의 먹거리...전주 요리솜씨에 서울여자 도망질할 것

전북의 음식이 맛있다는데.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그 소문의 진상은 1928121일에 발간된 '별건곤(別乾坤)' 16, 17호에 실린 '팔도녀자 살님사리 평판기(八道女子 살림살이 평판기(評判記)’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월간지 별건곤'창조','동인' '삼천리'같은 1920년대의 근대 잡지지만 시사적 내용보다는 주로 취미를 다룬 완전한 일반 대중잡지로 기능했다. 1926년 창간호를 시작으로 1934년까지 발간된 잡지다. 천도교단이 세운 출판사 개벽사에서 대중의 취미 진작을 위해 만들었다.

별건곤"요리를 잘하는 전라도 여자 중에서도 전주여자의 요리하는 법은 참으로 칭찬할 만하다. 맛도 맛이거니와 상()을 보는 것이라던지 만드는 법이라던지, 서울 여자가 갔다가 눈물을 흘리고 조남선(潮南線) 급행선을 타고 도망질할 것"이라고 평하고 있다.

이는 다소 과장한 듯하지만 서울 여자가 전주 여자의 음식 만들기와 상 차려내는 것을 보면 '비교되고 창피해서' 소리없이 줄행랑을 칠 것이라는 얘기다.

별건곤은 이어 "서울의 신선로가 명물은 명물이지만 전주 신선로는 그보다도 명물이다"며 전주 음식을 한껏 치켜세우고 나서 전주의 비빔밥, 순창의 고추장, 고산의 식혜, 남원의 약주, 군산의 생어찜 등도 명물로 꼽았다.

고산면은 지리적으로 완주군 북부지역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고 고려시대 봉성현, 조선시대 고산군으로 인근 6개면의 중심지였으며 현재까지도 고산 6개면의 경제, 문화생활이 집중되고 있는 지역이다. 지역특산물로 미곡, 양파, 마늘, 곶감, 한우가 있고 인접도시와의 접근성이 좋아 대아댐, 자연휴양림, 고산천 등 관광자원이 풍부하여 웰빙 관광지역으로 대두되고 있다.

바로 이곳의 엿기름과 물맛이 좋아 완주 고산의 식혜가 1920년대 최고의 먹거리였던 것 같다.

이처럼 전북의 음식 맛이 좋고 다양한 것은 우리나라의 농경역사를 대변하는 곡창지대인 김제평야의 쌀과 호남평야의 젖줄인 동진강, 청정지역인 서해안 주변의 풍성한 농수산물이 지형과 기후에 맞게 생산돼 독특한 조리법으로 승화됐기 때문이다.

전북의 음식 맛은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 것 같지 않은 성대한 상차림과 함께 손님을 즐겁게 해주는 주인의 입담까지 어우러져 '진미'를 선사한다.

 

이날 간식은 푹 퍼진 고구마와 살얼음 띄운 시원 달콤한 식혜 한 사발. 대접에 가득 퍼담은 밥알이 동동 뜨는 식혜와 주먹만한 고구마 한 개씩 뚝딱 해치운 아낙들은 잠시 쉴 틈도 없이 꽃가루 바구니를 하나씩 들고...’

 

이는 물 오른 배나무~’의 글 일부이다.

식혜는 예부터 우리 겨레가 즐겨 마셨던 음료로 조선시대의 요리서 수문사설(謏聞事說)’, ‘연세대 규곤요람’, ‘시의전서(是議全書)’ 등에 소개되고 있다.

 

살얼음 동동 띄운 식혜 한 사발

할아버지 논배미 돌고 오셔서

받아든 사발 속 비치던 푸른 하늘

한 모금 남겨

툇마루 밑 누렁이에게 던져준 달콤한 밥알

골진 주름 사이로 흘러가던

그해 여름날 구름

 

이는 최효순의 '그해 여름'에 나오는 식혜 이야기이다.

 

식혜를 만드는 엿기름은 그 속의 아밀라제 효소가 감칠맛 나게 하는 것은 물론 소화가 잘 되게 하며, 요구르트처럼 장내 세균 증식을 억제한다고 한다.

, 몸속에 맺혀 있는 멍울을 풀어주는 작용이 뛰어나기 때문에 옛날부터 출산 후 임산부들이 흔히 겪는 유방통 등을 다스리는 데 쓰였다. 가마솥 불볕 더위가 한창인 지금 살얼음이 뜬 식혜 한 사발이 생각난다.

 

별건곤에 실린 '팔도녀자 살님사리평판기 살님사리 중 음식 잘하는 전라도녀자(원문)

 

제주도에 가서 해녀들이 생뱀장아를 먹는 것을 보거나 강진 해남에서 더벙머리 총각들이 한라산 삼신인하강 시대에 입던 때무든 옷을 입고 눈곱과 콧물을 질질 흘니며 비린내 나는 식은 생선국에 비빔밥을 주는 것을 보고 '전라여자의 음식 잘한다는 말은 다 개똥쇠가튼 거짓말'이라 하면 너무도 억울한 일이다.

약떡에도 곰이 핀다고 잘못하는 곳은 잘못하지만은 대체로 말하면 전라도의 여자들이 다른 도의 여자보다는 요리를 잘 한다. 그 중에는 전주여자의 요리하는 법은 참으로 칭찬할 만하다. 맛도 맛이어니와 상배 보는 것이라던지 만드는 번때라던지 모도가 서울의 여자는 갓다가 눈물을 흘리고 조남선 급행선을 타고 도망질 할 것이다.

서울의 신선로가 명물은 명물이지만은 전주 신선로는 그보다도 명물이다.

그 외 전주의 약주 비빔밥이며 순창 고초장, 광주, 담양의 죽순채, 구례 속성의 탁주와 은어회, 고산의 식혜, 남원의 약주, 군산의 생어찜 등은 다 음식 중 명물이다. 그리고 전라도 여자들은 수공을 잘한다. 특히 제주의 여자들은 갓양테망건, 어망 등의 수공을 잘하고 담양, 나주의 여자는 죽세공을 잘하고 구례, 남원의 목세공을 잘한다.

올치 또 한 가지 잇다. 전라도여자들은 장독간 치레를 조와하야 어느 집이던지 장독간이 큰 도기전가티 뵈인다. 그것이 서울의 여자의 마루시간 치레나 함경도 여자의 부엌시간 치레나 황평양서여자의 침구치레와 비슷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