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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전북의 음식조리서를 찾아라





조선시대에 호남지역에서 집필된 조리서로는 현재까지 유일하게 알려진 ‘음식보(飮食譜)’의 내용을 해제하고 수록된 음식을 재현해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 전시하는 행사가 지난해 ‘제29회 국제남도음식문화큰잔치’에서 열렸다.
1756년에 처음 집필된 음식보는 전남 나주시 다도면 풍산리 도래마을에 세거해 온 풍산홍씨 창애공파(蒼崖公派) 가문의 6세손으로 승정원 좌승지를 지낸 주은(酒隱) 홍수원(1702~1745)의 부인인 숙부인(淑夫人) 진원오씨(珍原吳氏·1698∼1770)가 쓰고, 승정원 동부승지 겸 경연참찬관을 지낸 아들 석애(石崖) 홍봉주(1725∼1796)의 부인이자 진원오씨의 며느리인 숙부인(淑夫人) 진주정씨(晋州鄭氏·1736∼1802)가 일부 내용을 더한 한글 조리서다. 다른 조리서에 나오지 않은 음식과 전라도식 식재료 및 요리 이름 등 독특한 내용들이 들어 있어 학술적, 문화적 가치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석애문중에서 대대로 소장해오던 고서 중에 포함됐다가 2021년 한국학호남진흥원에 가문 소장 고문서 일체를 기탁하는 과정에서 원본이 처음으로 학계에 공개됐다. 이전 1981년 무렵에 일부 학자들에 음식보의 존재 사실이 알려진 바 있으나 당시에는 원본이 아닌 사진 영인본으로 상태가 좋지 않고 일부는 손으로 내용을 변형하는 등 원전으로서의 가치가 없어 정확한 내용과 집필자, 지역 등을 밝히지 못하다가 최근 원본 공개에 따라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조선시대 조리서들은 대부분 수도권(산가요록, 규합총서 등), 충청권(최씨음식법, 주식시의 등), 영남권(수운잡방, 음식디미방 등)에서 기록된 것으로 정작 뛰어난 음식문화를 보유하고 있는 호남지역에서 집필된 조리서가 발견되지 않아 여러 가지 추측과 함께 전라도 음식문화에 대한 평가절하와 왜곡이 적지 않았다는 점에서 음식보의 등장은 호남 음식문화의 역사와 전통성을 증명할 근거자료로는 물론 우리 전통음식의 균형적인 연구 차원에서도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방문(釀酒方)’은 조선 시대 1837년에 한글로 편찬된 술 제조 비법서이다. 1837년 전라도에서 만들어진 술 전용 비전서다. 지은이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조금 흘려쓴 듯한 여성 글씨체이며, 당시 전라도에서 쓰이던 어체로 기록되어 있다. 경상도 지방의 온주법, 충청도 지방의 우음제방과 함께 하삼도 지방을 대표하는 술 주조 책자로, 4계절에 생산되는 곡식류, 과일류, 꽃, 기타 식용이 가능한 식품을 이용한 다양한 종류의 술 제조법이 수록되어 있다. 현존하는 우리 나라 고전 요리책 중 술빚는 방법이 가장 많이 기록된 고서(古書)로 우리 식생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그 주조 방법 또한 매우 세세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 산가요록(1400년대), 수운잡방(1500년대), 음식디미방(1600년대), 증보산림경제(1700년대), 규합총서(1800년대초), 임원경제지(1800년대 초)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조리서들에는 실려 있지 않은 전라도 고유의 주조 방문이 20가지 넘게 실려 있어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양주방’의 술 중 가장 특이한 항목은 구기자술로, 열매만 주로 사용하는 다른 조리서들과는 달리 구기자 뿌리에서부터 잎, 꽃, 열매 모두를 재료로 하여 각기 다른 느낌의 여러 구기자술들을 만드는 법이 기록되어 있다. 이런 식의 항목은 소국주, 백화주, 육병주, 부의주, 무술주, 창포술, 구기자술의 7가지 항목들로 옆에 "또 다른 방문" 이라 적어놓고 각기 술을 달리 빚는 방법들을 여러 종류로 덧붙여 놓았다.
전주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한글 음식방문은 단장(單張)으로 되어 있다. ‘감양쥬 방문, 알느리미 방문, 잡장아지 방문, 마늘쟝아지 방문’ 등 모두 4개의 음식방문이 필사되어 있다. 필사 시기는 여러 가지 문법적 특징과 조리법의 특징을 고려할 때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로 추정되며, 표기에 반영된 음운론적인 특징과 어휘적인 특징을 고려할 때 충청 지방이나 전라 지방에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음식 부문 연구에 다소 소홀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지금이라도 가문 곳곳을 수소문해 음식조리서를 찾아 전북이 한국 제1의 ‘맛향(鄕)’ 임을 널리 입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