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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60> 전주 학인당과 한국집 씨간장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60> 전주 학인당과 한국집 씨간장

전주 학인당 백낙중 종가 ‘생합작’과 씨간장

솟을대문 앞에서 주인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현액이 눈길을 끈다.
'효자승훈랑영릉참봉수원백낙중지려'(孝子承訓郞英陵參奉水原百樂中之閭)라고 적혀 있다.
고종이 백낙중의 효행을 치하해 승훈랑이라는 벼슬을 내렸다는 내용이다.
학인당(學忍堂)이라는 이름은 백낙중의 호 인재(忍齎)에서 따온 것이다.
삐그더억∼ 대문 열리는 소리가 정겹다.
안으로 들어서니 본채 앞 마당에 잘 가꿔진 정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연못가에 서 있는 소나무와 진분홍빛 꽃을 피운 배롱나무가 본채와 멋스럽게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다.
마당 한가운데 조성된 연못의 이름은 조선지(朝鮮池). 한반도의 좌우가 뒤집힌 모양이다.
이 집이 지어질 무렵 조선은 이미 일본의 침탈을 받고 있었다.
집을 지은 백낙중은 나라 잃은 슬픔을 뒤집힌 한반도의 모습으로 표현하며 세상이 다시 뒤바뀌어 국권이 회복되길 기원했다고 한다.
인재종가의 생합작은 최소한 백낙중 생존 시부터 요리해 먹던 음식이라는 것이 서화순 종부의 말이다. 
생합작은 제사상에 오르는 음식이면서, 손님 술상에도 오르는 대표적 술안주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합전’이라고도 불리는 생합작은 전복이 양식되기 전의 옛날에는 고급요리였다. 근처에 흐르는 만경강에는 생합(백합·대합으로도 불림)이 많았고, 이 생합을 주재료로 갖가지 재료를 섞어 요리하던 음식이다. 손이 많이 가는 고급 음식이다. 생합 속살을 꺼내 잘게 다진 후 여기에 쇠고기, 표고버섯, 다시마, 당근, 호박 등을 다져 넣고 섞은 뒤 간장, 참기름, 깨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간을 한 재료들은 달달 볶아 소를 만든다. 볶을 때 재료들이 엉겨붙지 않도록 밀가루를 조금 넣는다. 볶은 것을 다시 생합 껍데기 안에 가득 채워 넣고, 그 위에 달걀옷을 입힌 후 노릇노릇하게 지진다.
전주 인재종가의 내림음식인 생합작. 생합(백합) 속살을 주재료로 만들며, 제삿상에 올리거나 술안주와 반찬으로도 사용했다.
‘만경강 전복’ 대합으로 요리한 만석꾼 종가의 고급 술안주가 된다.
종부는 생합작과 함께 이 종가의 내림음식으로 한채를 소개했다. 늦가을 무와 석류가 나오는 시기에 해먹는, 차갑고 시원한 무채 김치다. 한채는 달고 아삭한 무가 주재료다. 무를 얼마나 얇고 가늘게 채 써느냐가 관건이다. 무를 썬 다음 바로 천일염 간을 해서 버무려 놓는다. 배·밤·마늘은 얇게 저미고, 생강은 채 썬다. 쪽파도 잘게 썰어놓는다. 재료 장만이 끝나면 간해 놓은 무와 함께 버무려 그릇에 담는다. 무에 소금 간을 했으니 설탕과 식초, 깨소금만 추가로 넣는다.
하루쯤 재워 먹어야 제맛이 나며, 5일 정도는 저장해 두고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실고추와 잣을 고명으로 올리고, 석류는 마지막에 한채 위에 올려서 새콤한 맛과 붉은 색감을 더해 먹음직스럽게 한다. 외국인들이 특히 한채를 좋아한다고 한다.
씨간장은 서화순종부에 따르면 한국전쟁때 조모가 간장 종지를 갖고 피난길에 올랐다. 이 씨간장으로 소고기뭇국과 가지선에 넣는다. '선'이란 찌는 것을 의미한다.

전주 한국집 씨간장

현재 전주의 비빔밥 식당 중 가장 오래된 곳은 한국집이다. 1952년 떡집으로 시작
하여 1953년부터 비빔밥을 내었다
한국집의 주순옥 씨는 개업 당시의 남문시장 좌판에서 파는 비빔밥은 나물에 날달걀을 넣고 비비는 것이었는데, 한국집에서는 이를
제법 '품격'을 갖춘 전주비빔밥이다.
 '한국집'에서 관리하는 장독대, 70년된 씨간장은 끈적끈적한 점성을 지녔다.
90대 사장님이 어머니의 비법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는 이 가게는 무려 70년 동안 장을 만들어 왔다고 한다. 비법매실액을 넣은 고추장부터 사장님의 어머니가 만들어 두셨다는 씨간장까지 깊은 맛을 내는 양념이 들어가기 때문에 맛있을 수밖에 없다고.
전주비빔밥을 처음 팔기 시작한 음식점이다. 고(故) 이분례 여사가 1952년 창업하고, 딸 주순옥(94) 여사가 물려받아 아직도 본점 장독대를 관리하고 주방을 감독한다. 서울에 분점이 9곳이나 있다. 
70년 된 씨간장이 자랑이다. 어렵게 간장 독을 들여다보고 맛을 봤다. 캐러멜처럼 끈적이는 간장은 맛이 복잡하고 약 같지만, 뒤로 갈수록 단맛이 살아났다.
한국집의 씨 간장은 점도가 높아 끈적이고 뒷맛으로 묘한 단맛이 난다. 
 이 집은 달랐다. 원조의 자존심이 음식에 녹아 있다. 비빔밥도 좋지만, 비법 양념으로 무쳤다는 한우 업진과 우둔살 육회는 쉽게 만날 수 없는 귀한 솜씨다.
마을 원로들은 둘이서 육회 한 접시 시켜 반주하고, 남은 육회를 몇 가닥씩 밥에 얹어 식사하는 걸 추억의 외식으로 꼽는다. 메뉴판 음식은 아니지만 ‘전동 스타일’이라 한다. 그렇게 먹어봤다. 양념의 깊은 맛을 머금은 쇠고기가 입안에서 밥과 섞이면서 씹히는 맛이 절묘했다. 장·기름을 잘 쓰는 듯했다. 기본적으로는 밥이 좋았다. 
장과 수십 년간 저장해 오며 간수를 뺀 곰소 천일염으로 맛을 낸 고추장 맛도 일품이다.
육회와 달걀지단, 13가지의 나물이 푸짐하게 들어가고 비법육수를 마지막으로 넣어주기 때문에 더욱 감칠맛이 난다고 한다.
한국집의 육회는 채 썬 배는 함께 섞지 않고 따로 조금씩 얹어 먹는다. 경기전 뒤 본점은 매일 아침 9시 30분 문을 연다.
한국집은 2011년에 미슐랭가이드 한국편에 소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