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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한국의 당면 잡채

한국의 당면 잡채

지금과 같이 당면이 잡채의 주된 재료로 등장한 것은 20세기 들어서의 일이다. 중국에서 당면 제조법을 배워온 한 일본인이 1912년 평양에 소규모 당면공장을 차리고 당면을 대량생산하면서부터이다. 1919년에는 양재하라는 사람이 황해도 사리원에 중국인 종업원을 고용해 광흥공장이라는 상호를 걸고 천연 동결 방법으로 당면을 대량생산했다. 당면을 이용한 잡채요리법도 1921년의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과 1924년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과 같은 근대문헌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잡채는 일제강점기 초기 환골탈태한다. 당면(唐麵)은 녹말가루로 만든 국수다. 우리는 중국을 ‘호(胡)’ 또는 ‘당(唐)’으로 불렀다. ‘호’는 청나라, 오랑캐 등 부정적인 면이 강하고 ‘당’은 긍정적인 냄새가 강하다. 호빵, 호떡은 오랑캐, 청나라산이라는 느낌이 강하고 당면은 긍정적인 ‘중국산’이라는 느낌을 준다. 당면은 1910년대 중국에서 건너왔다. 중국인, 일본인들이 당면 공장을 운영하다가 어느 순간 사리원의 한국인들이 당면 공장을 세웠고 업계의 선두자리를 차지했다.
 1935년 2월의 기사에는 ‘한반도의 당면 생산량이 60만 근인데 대부분 일본 도쿄, 오사카 등으로 수출한다. 우리 당면이 중국산보다 질이 좋다’는 내용도 있다. 광복 후인 1946년 3월 18일자에는 ‘서울풍국제면소의 당면이 대용식량으로 공급된다’는 내용도 있다.
당면은 일본인들이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간장과 더불어 잡채에 스며든다. ‘당면잡채’다. 궁중음식도, 우리 음식도 아니다. 나라가 망하고 난 후에 들어온 식재료, 당면이 주인 노릇을 하는 당면잡채는 한식의 아름다움을 살린 음식은 아니다. 채소 맛으로 먹어야 할 잡채가 당면과 조미료, 감미료 범벅의 간장 맛으로 먹는 음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