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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지지당유고와 호산춘

 

한국술이 기록된 문헌에는 저자를 모르거나 연대를 알 수 없는 경우가 꽤 있다. 더군다나 5백 개가 넘는 한국술 중에 누가 그 술을 만들었는지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그런데 호산춘은 누가 언제 어떻게 왜 빚었는지 나오는 문헌이 있다. 게다가 주방문도 한문과 한글이 같이 기록되어 있는 매우 희귀한 경우이다. 바로 송흠(宋欽, 1459~1547)의 시문집인 지지당유고’(知止堂遺稿)’ 로 호산춘(壺山春)의 주조법이 수록되어 있는 책이다. 이긍익이 지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도 이를 확인하는 기록이 나온다. “송흠이 여산군수가 되었을 때, 고을이 큰길 옆이어서 손님은 많은데 대접할 것이 없어, 특별한 방법으로 술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호산춘(壺山春)’이라 했다

그는 1515년 여산군수로 있을 때 '호산춘'이란 술을 빚어 접대 예산을 절약했다. 보통 춘()이 들어간 술은 맛이 있기로 정평이 나잇다. 여산(익산)의 옛명칭인 호산(壺山)에서 유래한 특주로 고려시대 때부터 빚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중기에도 지방 특산주로 이름을 날린 술이다. 현재 경북 문경의 호산춘(경북무형문화재)이 유명하다. 문경시 산북면 대상리 주변에 한데 모여 살고 있는 장수 황씨 후예들이 빚어 먹던 술로 손님을 대접할 때도 사용했던 유명한 술이다. 200년 전 장수 황씨들은 모두 집안살림이 넉넉하고 생활이 호화로와서 보다 향기롭고 맛이 있는 술을 빚기 시작했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청명주 부분에 보면 청명주는 금천(金遷)의 것이 유명한데, 평양 감홍로, 한산 소국주, 홍천 백주, 여산 호산춘도 온 나라에 명망이 높다고 나와 있다. 이밖에 윤원거의 용서집(龍西集)’, 박미의 분서집(汾西集)’, 남용익의 호곡집(壺谷集)’ 등 다수의 시문집에 호산춘에 대한 언급이 나와 있다. 이익의 성호전집(星湖全集)’ 중 중해(仲解)가 호산춘을 가지고 와서 함께 술 마신 데 사례한 시에 보면, ‘호산춘 술 빛이 잔에 그득 담겼으니(壺山春色桮心凸) 그대의 깊은 정에 감사해 백 잔도 불사하리(感子情深百不辭)’라는 글귀가 있다. 백 잔을 마신다는 것은 시적인 표현이겠지만 그만큼 좋은 술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18세기 전북의 모습은 어땠을까. 충청도 선비 이하곤(李夏坤 1677~1724)17221013일부터 1218일 까지 호남지방을 여행했다. 그는 '두타초(頭陀草)'에 일정과 내용을 상세히 적혀있다. 그는 1027일 여산에서 호산춘(壺山春)을 맛보았다. '이곳 여산(礪山)으로부터 호남 땅이니, 성읍은 일찍이 백제시대부터 있었네. 강경평야가 바다가 닿아있고 읍청정(挹淸亭)은 하늘가에 우뚝섰다. 우뚝 솟은 푸른 대나무 수 이랑에 이어지고, 호산춘(壺山春)을 마셔 약간 불그스레하지만 많이 마쉬면 취하네. 큰길은 빼어난 솜씨로 자른 듯 잘 나 있어 일산(日傘)과 가마 날마다 바쁘게 나다니네.‘

2018년 여산 호산춘(礪山 壺山春)이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64호로 지정됐으며 이연호(씨가 보유자로 인정됐다. 호산춘(壺山春)은 익산 여산면 천호산(天壺山)의 이름과 고급술을 의미하는 춘주(春酒)를 따서 호산춘이라 불렸으며, 가람 이병기 선생의 25대 조부인 이현려가 고려 의종부터 신종(1156~1203)까지 판소부감사 겸 지다방사(궁중의 살림 특히 음식 담당)로 있으며 빚어 내려온 술이라 전해지고 있다.

호산춘은 여산지역 이병기 선생 집안을 중심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술로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산림경제(山林經濟)에 이와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으며, 또한 옛 문헌상의 제조방식을 바탕으로 오늘날까지 오롯이 전승되고 있어 그 역사적 가치가 높다.

보유자 이연호씨는 가람 이병기 선생의 조카인 어머니(이경희)로부터 젊었을 때부터 호산춘 제조방법을 전수받았으며, 그 전통이 소멸될 위기 속에서도 과거 궁중에서 마셨던 술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오늘날까지 호산춘의 맥을 이어왔다.

서해 낙조 5선의 하나인 일몰은 강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풍경으로 너른 금강물 위에 지는 해를 배경으로 한 겨울 철새의 군무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는 걸작이다. 붉은 노을과 함께 강줄기로 빨려 들어가는 태양과 밝게 빛나는 보름달이 뜬 밤의 풍경 등 금강의 낙조는 가히 장관이다. 황혼에서 밤으로 이어지는 이 시간이 왜 '금강 명월'이라는 말이 생겨났는지를 알게 해준다. 익산 웅포의 우어회를 안주삼아 호산춘을 한 잔 하면서 내년의 새해를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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