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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남원차의 전통

고려의 문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 기엔 원효(元曉, 617689)가 살던 방을 답사한 기행문이 보인다. ‘일행 예닐곱과 원효방(元曉房)에 이르렀다. 높이가 수십층이나 되는 나무사다리가 있어서 발을 후들후들 떨며 찬찬히 올라갔는데, 뜨락의 계단과 문이 수풀 끝에 솟아나 있었다. 곁에 한 암자가 있는데, 항간에 전하기를 사포성인(蛇包聖人)이 머물던 곳이라고 한다. 원효가 와서 살자 사포가 따라와 모시었는데, 차를 달여 원효에게 드리려 하였으나 샘물이 없어 고민하던 중에 물이 바위틈에서 갑자기 솟아 나왔다. 맛이 매우 달아 젖과 같으므로 늘 이 물로 차를 달였다고 한다. 원효방은 겨우 여덟 자쯤으로, 한 노승이 거처하고 있었다. 그는 삽살개 눈썹과 다 헤어진 누비옷에 모습이 고고(高古)하였다. 방의 중앙을 막아 내실(內室)과 외실(外室)을 만들었는데, 내실에는 불상과 원효의 초상이 있고, 외실에는 병() 하나와 신 한 켤레, 찻잔[茶瓷]과 경궤(經机)만이 있을 뿐, 취구(炊具)도 없고 시자(侍者)도 없었다

이규보의 이 기행문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전하고 있다. 원효가 사용했으리라고 믿어지는 잔에 대하여 재질이 ()’임을 밝히고 있다. ‘()’는 넓은 의미로 질그릇, 즉 토기·도기·자기 전체를 가리키나 일반적으로 자기만을 지칭한다. 더욱이 그 자신이 다자를 사용한 일이 있다.

이규보는 남원의 운봉에 살고 있던 노규선사(老珪禪師)가 조아다(早芽茶)를 얻어서 그에게 보이면서 유차(儒茶)’ 라는 이름을 붙인 다음 시를 청하였을 때, 시를 지어 주었는데 그 중에 이러한 구절이 있다.

선사는 어디에서 이 좋은 차 구했는가. 손에 닿자 향기가 코를 찌른다오. 피어나는 풍로에 스스로 달여 꽃무늬 찻잔에 따르니, 색과 맛 뛰어나오 입에 닿자 달콤하고 부드러워 어린 아이 젖냄새 같다오.(중략)공에게 맛있는 봄 술을 빚어놓고 권하오니 차들고 술 마시며 여생을 보내면서 오며가며 풍류놀이를 시작하여 보세 어찌 굽혀 절하지 않겠는가

이로써 이규보는 자신이 사용한 경험이 있는 것과 동일 재질의 잔을 원효방에서 보았음을 알 수 있다. 다른 재질이었다면 달리 표현하였을 것이다. 그러면 원효의 생존시기(617689)에 도자기잔이 사용되었느냐가 의문의 대상이 된다. 종래에는 신라에서 도자기가 제조되지 않았으며, 고려시대에 이르러서야 도자기가 제조되었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미 신라시대에 도자기(청자)가 제작되었음이 밝혀졌다.

'만복사저포기'의 배경이 된 남원 보련산 자락의 만학동 계곡에는 고려 시대 이래의 야생차 군락지가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차나무의 수령 등을 보면 조선시대라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고려시대의 것이라는 것은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남원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13에 실린, 앞서말한 유차시에서 극찬한 지리산 운봉에 사는 노규 선사의 조아차(早芽荼)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지금의 야생차의 근원이 고려시대일 개연성은 충분하다. 특히 이 시는 이규보의 다인으로서의 높은 경지를 한번에 알 수 있을 만큼 다시(茶詩)로 백미(白眉)로 전해지고 있다.

명나라 장군 양호가 선조대왕에게 품질이 탁월하다고 한 차가 남원에서 생산됐다. 남원의 차에 대해서는 조선전기에 간행된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도 확인되고 있으며, 대렴이 가져온 차씨가 지리산에 심어졌고 남원도 지리산 자락이라는 점 등등의 근거로 그 개연성은 더욱 높아진다. 사실 차의 본향으로 하동과 보성이 알려진 것에 비하면 남원 차를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 기록으로 보면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파병된 명나라 장수 양호가 선조에게 남원 차를 진상하면서 차 산업의 활성화를 건의했다는 내용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그밖에 많은 기록이 있지만, 불교의 쇠퇴와 함께 남원의 차 문화도 단절되어 버렸다. 남원 차의 전통을 살리는 일을 적극 추진하면 어떨까.

 

이규보의 유차전문

 

인간이 온갖 맛을 일찍이 맛봄이 귀중하니

하늘은 사람을 위하여 절후를 바꾸네

봄에 자라고 가을에 성숙함이 당연한 이치이니

이에 어긋나면 기이한 일이건만

근래의 습속이 이 기이함을 즐기니

하늘도 인정의 즐겨함을 따르는구나

시냇가의 차잎을 이른 봄에 싹트게 하니

황금 같은 노란 움 눈속에 자라났네

남쪽 사람은 맹수도 두렵지 않아

험난함을 무릅쓰고 칡넝쿨 휘어잡고

간신히 채취하여 불에 말려 단차 만드니

남보다 앞서 임금님께 드리려 하네

선사는 어디에서 이처럼 귀한 것을 얻었는가

손에 닿자 향기가 코에 가득

활활 타오르는 화롯불에 손수 차를 달여

꽃무늬 자기에 따라 그윽한 색을 자랑하누나

입에 닿으니 달콤하고 부드러워

마치 어린아이의 젖 내음과 같구나

부귀한 가문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데

우리 선사 어찌 이를 얻었는가 알 수 없네

남쪽의 아이들 선사의 처소를 알지 못하니

찾아가 맛보고 싶은들 어이 이룰 수 있는가

아마도 깊은 구중궁궐에서

높은 선사 예우하여 예물로 보냈음이라

차마 마시지 못하고 아끼고 간직하였다가

임금님의 그 봉물을 신하를 시켜 보내왔다네

세상살이를 모르는 쓸모없는 이 나그네가

더구나 좋은 혜산천의 물까지 감상하였네

평생의 불우함을 만년에 탄식했는데

일품을 감상하기는 오직 이뿐일세

귀중한 유차를 마시고 어이 사례가 없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