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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전주 콩나물을 살려야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저승에는 5개의 강이 있다고 한다. 슬픔과 비통의 강 아케론(Acheron), 탄식과 비탄의 강 코키투스(Cocytus), 불의 강 플레게톤(Phlegethon), 증오의 강 스틱스(Styx), 그리고 망각의 강인 레테(Lethe)가 그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이 다섯 개의 강을 건너야 하데스가 지배하는 명계(冥界)로 갈 수 있다고 한다. 망자(亡者)는 명계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레테의 강물을 한 모금 마셔야 하는데, 이 강물을 마신 망자는 과거의 모든 기억을 깨끗이 지우고 전생의 번뇌를 잊게 된다.
이제 세모(歲暮)인가. ‘해장국’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콩나물국이다.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을 보면서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됐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지방 명식(名食)으로 개성의 엿과 저육, 해주의 승가기(勝佳妓) 평양의 냉면과 어복장국, 의주의 대만두, 전주의 콩나물, 진주의 비빔밥, 대구의 육개장, 회양의 곰기름정과 강릉의 방풍죽, 삼수갑산의 돌배말국, 차호의 홍합죽 순으로 썼다. 전주의 콩나물은 토질과 수질이 다른 지방의 것과 다르다. 임실에서 자란 ‘쥐눈이콩(鼠目台, 서목태)’다.
‘텁텁한 탁백이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탁백이국 그놈 한 주발에 밥 한 술을 놓아 훌훌 마시는 맛은 산해의 진미와도 바꿀 수 없이 구수하고 속이 후련했다’ 글의 말미(末尾)에 ‘전주에는 토질이 몹시 심한데 콩나물국을 먹음으로써 그것을 예방한다’고 언급했다. 1929년 12월 1일에 발간된 종합잡지 ‘별건곤’에 전주콩나물국밥이 ‘탁백이국’으로 소개된다. 광복 직후 전주 대표적 유흥가는 속칭 ‘짱골목’ 일대였다. 짱골목의 ‘짱’은 극장의 ‘장(場)’을 지칭한다. 전주극장은 1925년 9월에 제국관(帝國館)으로 문을 연 전주 최초의 근대적 극장.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 중앙동 일대 나이트클럽 때문에 휘청거린다. 1980년대는 ‘콩나물불고기집’들이 짱골목에서 반짝했다. ‘한일관’은 남부시장 골에서 해방 전부터 영업을 시작했으며, 국물은 북어와 멸치 등으로 고아낸다. 고사동 ‘욕쟁이 할머니’가 영업하던 삼백집은 주인이 바뀌었다. 삼백집이 허가를 받은 것은 1967년 무렵이란다. 이는 1947년에 욕쟁이였던 고(故) 이봉순 할매가 개업했다. ‘하루 딱 300그릇만 팔겠다’고 해서 삼백집. 5·16을 성공한 뒤 몰래 해장하러 온 박정희 대통령에게 정감어린 욕설을 퍼부어 부으면서 알려졌다. ‘한국집’도 아침에만 손님을 받고 있으며, 남부시장내 ‘현대옥’ ‘그때 그집’ 등, 동문 사거리 근처 ‘풍전 콩나물’ ‘왱이집’ ‘다래집’ ‘두레박 콩나물’ 등도, 경원동의 ‘왱이집’ 등도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 잉골드의 일기 가운데 1898년 5월 2일의 기록을 보면 전주의 잔치에 초대돼 젓가락 쓰기에 성공했음이 눈길을 끈다. 이들이 맛본 상엔 '순무 튀김, 작은 해조류, 순무 김치는 충분히 먹을 만 했다. 기름에 튀긴 다양한 종류의 맛있는 다진 말고기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맛의 말린 생선, 젤리 같은 '묵'과 삶은 콩나물이 있었다'고 했다.
최남선의 ‘심춘순례’를 보면 ‘...꽃밭정이를 지나다가 길가에 벌려놓은 엿이 하도 먹음직하기에 사 먹으며 보니, 엽전꾸러미가 의젓이 돈 무더기에 놓여있다. 아직 전주도 그런가하여, 당연할 일이건만 퍽 의외로 생각된다. 다섯 닢이 일 전이라니 쇳 값에 지나지 않을까 하였다. 흰 엿 무슨 엿 할 것 없이 보기에나 먹기에나 퍽 만만한 것이 전라도 엿이요, 들깨쌈 콩쌈 따위 종류도 서울보다 많다. 콩나물이 연하고, 엿이 말쑥한 것은 아무래도 전라도의 특장이라 아니할 수 없다.(1925년 3월 30일)”
예로부터 '전주 십미 또는 팔미'로 꼽히는 전통 전주 콩나물이 사라지고 있다. 콩 재배 농가가 사라지면서 자연스레 많이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전주 콩나물을 길러낸 전주 교동의 물도 수질검사에서 부적합해지면서 콩나물 재배 자체를 포기한 농가도 생겨나고 있다. 현재 서목태의 대체품종으로 풍산태가 전주 콩나물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 전주의 명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라도 전주산 콩나물의 사용 확대와 그 특색을 살려내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햇동안 뭐 그리도 잊어버려야 할 일이 많은지, 1년 동안 고작 한두 번쯤 만나던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과 함께 서로 부어라 마셔라 하던 ‘망년(忘年)’을 흔히 ‘송년(送年)’으로 부른다. 향내 나는, 결따라 세월의 때가 곱게 눅은 책상머리에 앉아 올 한해를 돌이켜보면 참으로 잊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좋지 못한 일들을 잊어버린다면, 아니 잊을 수만 있다면 참 행복할 터이다. 그러나 단 한가지,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 당신이 나를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 한가지만은 결코 잊지 않는 건망증이라면 참으로 ‘행복한 병’이다. 전주 콩나물이 곁에 있어 행복한 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