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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황희정승. 누런 보리밥에 된장과 풋고추 너덧개


황희선생은 50년 이상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하면서도 청빈한 삶을 산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황희(1363∼1452년) 정승 역시 된장에 고추만 반찬으로 즐겼다는 말이 내려온다. 

그의 청빈함을 알 수 있는 몇 가지 일화를 살펴보자. 황희선생이 영의정으로 있던 시절, 세종이 미복(微服) 차림으로 사전에 연락도 없이 선생의 집을 찾아왔다. 그때 마침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갑작스런 국왕의 방문에 허겁지겁 상을 한쪽으로 물리고 국왕을 맞았다. 세종은 선생의 집에 들어서면서 정승의 집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초라한 모습에 이미 놀랐다. 그런데 방에 들어서니 바닥에는 장판 대신 멍석이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또 먹다가 치워 놓은 밥상에는 누런 보리밥에 된장과 풋고추 너덧개만이 놓여 있었다. 세종은 민망해하는 황희선생을 보고, "경은 등이 가려우면 시원하게 긁기는 좋겠소. 자리에 누워 비비기만 해도 될 테니까." 하고 농을 하고는 돌아갔다. 이때 사실 세종은 황희선생이 가진 것이 너무 없어 막내딸의 혼수를 장만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선생의 집을 찾은 것이었다. 다음 날 세종은 손수 공주의 수준에 준한 혼수를 선생의 집으로 보냈고, 이것은 이후 가난하여 결혼 준비를 하기가 어려운 관리들에게 국왕이 혼수를 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황희선생의 청빈한 삶의 자세를 알 수 있는 일 중에 이런 것도 있다. 언젠가 그의 아들 황치신이 집을 새로 짓고 집들이를 하게 되었다. 선생도 잠시 그곳에 들렀으나 온다 간다 말도 없이 돌아가 버렸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안 황치신은 아버지가 자신을 나무라는 뜻으로 알고 백배 용서를 구한 후 자신의 분수에 맞게 집을 새로 고쳐 지었다고 한다. 사실 황치신은 그의 아버지와는 달리 재물을 탐하였지만, 선생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버지의 엄중함 때문에 근신하며 살 수 밖에 없었다. 글/이윤희(파주시문화예술진흥위원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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