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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산외별곡’의 전북 음식

 

                                                  송영애 <전주대학교 K-food산업연구소 연구교수>

 우리나라에 내려오는 고조리서를 살펴보면, 서울은 수도로서 각종 의궤와 의서 그리고 「규합총서」 등이 있다. 경북 상주에는 「시의전서」, 안동은 「수운잡방」, 「온주법」 그리고 작년에 발견된 「음식절조」가 있으며, 영양에는 「음식디미방」이 있다. 충남 대전에는 은진송씨 집안에 내려오는 「주식시의」, 「동춘당 음식법」, 「우음제방」이 있으며, 아산과 부여에는 「최씨 음식법」과 「윤씨 음식법」 등이 있다. 충북 청주에는 「반찬등속」이 있다. 같은 전라도 권역의 광주에도 「음식보」가 내려오고 있다. 그런데도 전북에는 아직도 발견된 고조리서가 없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규방가사의 맥을 이은 소고당 고단(紹古堂 高端, 1922~2009)의 가사집에 음식 내용이 있어 퍽 고무적이다.

 소고당은 전남 장흥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고경명(高敬命)의 후손이다. 18세에 정읍 도강김씨 충민공의 후손인 김환재(전 전주향교 전교)와 혼인하여 대종부가 되었다. 시댁은 정읍 산외면이었으나, 그 후에 생활은 전주에서 해왔다.

 55세가 되어서야 첫 작품 「소고당가(紹古堂歌)」를 완성하였고, 꾸준한 창작 활동으로 『소고당가사집』 상·하, 『소고당가사속집』을 엮어내기도 했다. 적극적인 사회활동으로 전주시 유도회부녀회장, 연묵회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2005년에는 문화예술부문 자랑스러운 전북인 대상도 수상하였다.

 소고당 가사는 무엇보다 그 언어와 표현에 격조가 있고, 진솔함이 보여 호남가단의 큰 별로 평가할 수 있다. 작촌 조병희는 「소고당가」를 두고 ‘규방의 정든 가락’이라고 하였다.

 대표적인 가사는 시댁의 지명을 딴 <산외별곡>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사시사철 계절마다 소고당을 찾는 손님을 정성으로 맞이하는데 무쇠 화로에 불 담아서 된장찌개를 끓이고, 조기를 굽는다. 붕어조림, 무김치도 곁들인다. 점심으로는 푸성귀 겉절이와 돼지고기를 소담하게 담고 새우젓을 함께 낸다. 홍어찜, 낙지회, 도토리묵과 메밀묵, 마늘산적을 안주로 삼고 모과주와 과하주를 더하면 흥이 돋는다고 하였다.

 봄에는 수수와 기장을 넣어 별미밥을 짓고, 쑥부쟁이와 머위를 양념해서 차려내고, 여린 쑥으로 절편을 찌고 진달래 화전의 봄맛으로 손님을 치른다. 가을철에는 수시감과 파라시가 좋고, 붕어와 피리가 일미라고 하였다. 겨울에는 화로에 구운 쑥떡을 조청과 함께 내고, 홍시와 건시, 식혜, 강정, 산자, 엿으로 손님을 대접한다. 이 정도면 ‘전라도 음식별곡’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가사에는 내림음식이 나오는데 특히 떡이 많다. 증편, 백설기, 삼색단자, 인절미, 절편, 화전, 찰부꾸미, 감단자 등이다. 전과 적도 육전과 어전, 돼지고기산적, 마늘산적, 두릅산적이다. 나물은 머위나물, 죽순나물, 토란나물, 표고버섯잡채다. 다과상에 올라가는 한과는 산자, 강정,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정과, 약과, 유과다.

 눈에 띄는 것은 둘째 딸의 친구인 최명희 작가가 홀연히 떠나자 아쉬움에 쓴 글이다. 작가와 함께 잣죽과 수란을 나눴던 시간을 그리워하며 후세에는 모녀로 만나 정을 나누자는 내용이다. 소고당은 최명희 작가를 두고 딸처럼 사랑스럽고 영특하다고 하였다.

 또 전국의 유명한 종가의 종부들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대표적인 종가는 서애 류성용(西厓 柳成龍), 고봉 기대승(高峰 奇大升),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 학봉 김성일(鶴峰 金誠一), 한음 이덕형(漢陰 李德馨)이다.

 소고당의 음식 솜씨는 강릉 선교장을 지킨 17대 성기희 종부의 편지에서 알 수 있다. “여인으로서는 받기 어렵고 먹기에 죄송할 정도로 공이 들어간 음식과 과분하신 선물로 일생 최대의 대접을 받았습니다.”라고 하였다. 당시 소고당의 손맛은 우리 지역을 넘어서 전국의 종부들도 다 알아줄 정도였다.

 지금도 전주에서는 ‘소고당’하면 ‘음식’을 먼저 이야기하며 손님을 대접했던 정갈한 다과상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다. 또 1990년대까지 우리 지역 음식 만드는 방법 대부분은 소고당의 손과 입을 통해서 전수되었다.

 소고당의 가사 작품에 나온 우리 지역의 음식문화는 다른 지역의 고조리서와 비교하면 작은 점에 불과하다. 그러나 문헌이 전무한 현실에서는 이 작은 점도 매우 가치 있는 자료임에는 틀림이 없다. 점이 모이면 선이 되고, 훗날에는 한 면을 차지할 것으로 믿는다. 작은 점이라도 찾아야 가치가 부여된다.


 

송영애 전주대학교 K-food산업연구소 연구교수 승인 2021.07.08 10:05(저작권 전북도민일보와 송영애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