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식

젓가락질이 서툰 마티 잉골드

젓가락질이 서툰 마티 잉골드








‘마티 잉골드 일기’는 120년 전, 미국남장로교 선교부에서 전주에 파송한 의사 마티 잉골드의 일기를 번역한 책이다. 한강 이남 최초 의사인 마티 잉골드(Dr. Mattie, B. Ingold, 1867∼1962)의 일기, 진료기록, 주일학교 기록 등 400페이지 분량의 책이다. 잉골드는 30세 처녀의 몸으로 1897년 9월 14일 홀로 한국에 도착해 1년 후에 전주성 서문 밖 은송리에 예수병원의 모태가 된 초가 진료소를 세우고 가난한 환자를 사랑의 손길로 돌보기 시작했다. 잉골드는 서른 살이 되던 해인 1897년 9월 15일 제물포에 도착했으며, 1898년 11월 3일 화산동 언덕의 초가집에 진료소를 열고 의료 활동을 시작했다.

잉골드의 일기 가운데 1898년 5월 2일의 기록을 보면 전주의 잔치에 초대돼 젓가락 쓰기에 성공했음이 단연 눈길을 끈다. '얼마 전에 우리 일원 중 한 명의 집에서 열리는 잔치에 선교부의 숙녀들을 초대했다. 그 잔치는 어느 76세 어르신의 생일이었는데 얼마 전 내가 당신에게 말했던 세례를 받은 그 여인, 바로 이씨 부인이다. 우리는 오전 9시 30분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한국인들은 보통 9시나 10시에 아침 식사를 한다. 보통 부엌에는 식탁이 없어 마루가 식탁으로 사용됐고 미리 준비된 음식들은 작은 놋그릇이나 토기마다 최대한 눌러 담았다. 거의 모든 음식에 고춧가루가 빠짐없이 들어갔다. 한국인들은 고춧가루가 넉넉히 들어가지 않은 음식은 맛이 없다고 여긴다'

이윽고 접시들이 무릎 높이의 작은 식탁 위에 놓이자 커다란 무쇠 솥에서 조리된 쌀밥이 놓였다. 사람마다 음식을 가득 한 그릇 가득 담아 놋수저로 먹었다. 젓가락을 사용하기 위해 온 정신을 쏟은 노력은 친구들에게 유쾌하게 했고 큰 웃음을 주었다. 결국, 친구는 젓가락 대신 사용할 뾰족한 막대기를 가져다 주었지만 이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음식들을 집으려는 노력은 다행히 성공했지만 입맛이 한국식 음식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했다고 솔직히 시인했다.

'순무 튀김, 작은 해조류, 순무 김치는 충분히 먹을 만 했다. 기름에 튀긴 다양한 종류의 맛있는 다진 말고기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맛의 말린 생선, 젤리 같은 '묵'과 삶은 콩나물이 있었다. 소금이나 버터, 그레이비소스 없이 밥을 먹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많이 남기지 않도록 노력했다. 한국 음식에 적응하지 못한 그에게 음식 나누기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었다. 전에 알지 못했던 이 관습을 배우게 되어 너무 기뻤다'

전주는 예나 지금이나 콩나물과 묵이 상에 올랐던 것 같다. 잉골드는 이때 이후로 현지 음식을 몇 차례 경험하면서 젓가락을 훨씬 더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됐다. 특히 고춧가루처럼, 절대 달가워 할 수 없는 두려운 음식도 있었다./이종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