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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1950년 가맥, 공신상회

                                                            송영애 <전주대학교 연구교수>  

 “가맥은 가게 맥주, 가게에서 마시는 맥주의 줄임말로 1970년대 전주에서 탄생한 독특한 술 문화다. 가맥집의 시작은 1970년 중앙동에 문을 연 영광상회이며, 1974년에 개업한 제일상회(전일슈퍼) 그리고 경원상회, 임실슈퍼, 영동슈퍼, 은성슈퍼가 자리 잡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사라진 영광상회를 원조로 친다. 가맥집은 전북도청, 전북경찰국(전북경찰청), 전주시청 공무원들이 주로 다녔다.”

 여기까지는 늘 같은 부분을 인용하고 있는 누구나 다 아는 전주 가맥의 역사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전부터 전주에는 가게에서 맥주를 마신 가맥 문화가 있었다.

 6·25 전쟁 중에 전북경찰국 공보실 경사였고, 후에 영화 피아골(이강천 감독, 1955년)의 시나리오를 쓴 김종환의 자서전에서 찾을 수 있다.

 “1950년 7월 19일 오후 5시경, 죽음의 거리처럼 냉랭한 시가지는 을씨년스럽고 공포감마저 감돈다. 경찰공보 사업에 협조가 많았던 친구 하반영 화백과 평소 잘 드나들던 공신상회에서 맥주 몇 병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위로하고 재회를 기약하면서 하 군과 갈라서 나왔다. 가게 아주머니도 불안한 표정으로 피난 짐을 싸면서 당혹스러워하고 있었고, 우리도 금명간에 전주를 떠나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

 김종환이 6·25 난리 중에 장거리 후퇴를 거듭하며 9·28 서울 수복이 될 때까지 고난의 역정을 생생하게 기록한 진중일기(陣中日記)다.

 하반영 화백과 맥주를 마신 공신상회는 후에 도일상회로 상호가 바뀌었다. 도일상회는 1958년에 발행된 전주상공시가도에도 정확하게 표기되어 있다. 위치는 공보관(현 가족회관) 옆이다. 이후 도일상회는 도일슈퍼로 다시 이름을 변경하였다. 1980년 이후에는 많은 사람이 가족회관에서 비빔밥을 먹고, 맥주를 마시기 위해 도일슈퍼로 발을 옮겼다. 지금도 도일슈퍼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다. 이와 같은 ‘슈퍼, 슈퍼마켓’이라는 용어는 1970년대 전후로 서울에서 시작했다. 전주에서는 1975년 1월에 전북슈퍼체인 본부가 들어서면서 사용하였다. 이전에는 모두 ‘상회’였다.

 전주에서 가맥집 이름을 살펴보면 OO상회로 시작해서 1970년 중반부터 서서히 OO슈퍼로 바뀌었다. 1990년 들어와서는 OO편의점도 늘어났다. 최근에는 가맥을 강조하기 위해 아예 OO가맥도 등장했다. 가맥집 이름에서도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또 상회나 슈퍼에서는 잡화가 주를 이루면서 맥주를 팔았지만, 오늘날 가맥집에서는 잡화 없이 맥주를 판매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맥집은 안주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 도일상회 안주는 큰 멸치 몇 마리에 고추장 그리고 북어 몇 조각이 다였다. 처음에는 특별한 조리가 필요 없는 구이류의 마른안주였다. 가맥집이 늘어나면서 계란말이, 통닭, 골뱅이무침이 나오더니 요즘 가맥집에서는 해물파전, 돈가스, 문어숙회, 오징어회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제 가맥집에서 예전의 분위기는 찾기 어렵다. 그러나 전주 가맥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가맥 문화를 제대로 즐길 줄 알기 때문에 2015년부터는 가맥축제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맥주 공장이 생긴 것은 1933년이다. 공장에서 생산된 맥주가 유통되면서 어느 골목의 조용한 가게에서 북어포나 땅콩을 안주 삼아 맥주 몇 병 마시는 주당들은 전국 어디에나 있었다. 이게 우리가 기억하는 동네 가게의 모습이다. 맥주는 상당히 고가품이었기 때문에 맥주 홀이나 고급 음식점까지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마시기 위해 동네 가게에서 원가에 가까운 돈을 주고 마시기 시작했을 뿐이다. 다만 우리는 이러한 문화를 ‘가맥’이라고 명명하였다는 점에 큰 가치가 있다. 따라서 가맥의 뿌리는 전주에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꼬리를 무는 인용으로 인해 전주 가맥의 역사를 1970년에 묶어 두었다. 누구도 찾지 않고 인용만 한 결과다. 이 글은 1950년에 전주 공신상회에서 맥주를 마신 기록이다. 틀림없이 이보다 빠른 자료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깊이 있는 자료 조사로 더 이상의 그릇된 인용이 훗날 전주 가맥의 역사가 되지 않길 바란다.

  승인 2021.06.2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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