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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랭킨, 1907년 전주 떠나기 전 딸기, 머루, 산딸기를 심다

 

“전주는 아름답습니다. 해가 뜨고 지는 장면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습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제가 있는 산과 서쪽에 있는 모든 산들이 하나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입니다.”

스물여덟의 나이에 한국땅을 밟은 처녀선교사 랭킨(1879∼1911:기전여학교 제2대 교장).

고향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첫 편지에는 그가 살게될, 그리고 그의 생을 마감해야 했던 전주의 첫인상을 이렇게 담아 냈다.

파란 눈의 처녀선교사가 고향에 보내는 편지를 보면 구구절절, 숱한 사연들로 넘쳐난다.

외국인 선교사가 바로본 당시의 한국풍속과 전주의 풍광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기전여학교 제2대 교장으로 재직했던 넬리 B.랭킨선교사(한국명 나은희)가 첫 편지를 띄운 1907년 2월부터 급성맹장염으로 숨지지기 열흘전인 1911년 8월3일 동생 윌에게 보내는 편지까지 50통의 편지들은 과거여행으로 떠나는 플랫홈이다.
그의 남다른 한국사랑과 함께 당시의 전주지역의 사회·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지리산 여행에서 벼룩떼를 만나 고역을 치렀던 일이며, 과부를 업어가는 보쌈의 풍습, 전주천의 얼음을 깨서 보관했다가 한여름 무더위를 달랬던 이야기는 지금 생소하기까지 하다. 여름 모기를 견디다 못해 결국 모기장 급배달의 소식을 띄우기도 했다. 서울의 인구가 당시 25만명이었다는 것이나 학교건축이 5천달러 정도면 가능했으며 성인남자의 하루 일당이 17센트 수준이었다는 것 등도 새롭다.
‘미국의 자기 마을 전체를 맵게 할 수 있을 정도’라는 표현으로 매운 고추의 위력을 전하는 그의 글은 흥미롭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배움의 기회를 주려했고, 여성들의 무지함을 안타까와 했던 그는 한일합방 소식에 랭킨이라는 이름보다는 한국명 나은희가 어울릴 정도로 함께 통분하기도 했던 ‘절반의 한국사람’이었는지 모른다.
전주기전여중·고가 2,000년 개교 1백주년을 기념해 그의 편지들을 묶어 ‘사랑을 심는 사람들’(번역 송상훈)을 펴냈다.

그가 떠난지 꼭 110년. 그가 떠난 그 자리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가 닦아놓은 터에서 그 뜻을 이어가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있음으로 그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 편지 가운데 음식 관련 부분에 흥미로운게 많다.

1.전주는 감의 고장이다.

전주를 떠나기 전날 딸기랑 머루, 산딸기를 심었다. 우리는 멋진 것들을 갖게 될 것 같지. 테이트 양이 미국에 감나무 몇 그루를 주문했다. 여기에는 감이 아주 많다. 한국의 감들은 일본 감들보다 훨씬 좋다고들 한다. 일본 감이 상하지 않고 더 잘 보존된다. 테이트부인(1866-1962)이 지난 가을에 수확한 감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데 맛이 좋았다.(1907.3.20)

2.군산에서 우유를 가져왔다

전주는 성으로 둘러싸인 큰 도시로 한국에서 다섯번째로 크다. 그리고 우리는 서문 밖에 있다.(중략) 음식에 관해서인데요. 고향에서 먹던 채소가 전부 다 있답니다. 과일과 아름다운 딸기들이 있습니다. 고기는 양이 불충분하지만 사냥감들이 많이 있어, 여기로 온 이후로 꿩과 들오리를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먹는 것 중에 그리워 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우유입니다. 군산에 있는 친구에게는 하루에 우유를 3쿼터나 생산하는 소가 있어 한국에서 경이롭습니다. 우리 선교부에서는 젖소가 없어서 우리는 깡통에 담긴 우유를 먹고 있습니다.(1907.3.29)

3.전주의 방앗간서 기름을 짜다

우리는 기름을 짜는 방앗간을 방문했습니다. 씨를 갈아서 포대에 넣습니다. 그러면 기울어진 면을 따라 그 위에 미끌리면서 떨어집니다. 그 가공하지 않은 목화 씨앗으로 만들어진 기름과 색깔이 거의 비슷합니다. 그 씨는 미국의 사우쓰 캐롤라이나(South Carolina)의 것과 비교됩니다.(1907.3.30)

4.전주 사람에게 복숭아 묘목을 받다

한 한국 여인이 상당히 많은 복숭아, 자두, 사과 묘목을 보냈고, 나는 그 묘목들이 지금 내리는 비를 맞기를 바랬습니다. 비를 맞고서 쬐는 불은 참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1907.4.30)

5.1907년, 전주 화산동에서 딸기를 수확해 잔치를 하다

오늘 수확한 딸기를 네가 보았으면 한다. 데이트씨가 거의 5갤런이나 되는 딸기를 수확해서 내가 어린 여학생들을 딸기잔치에 초대했다. 그들은 잔치를 즐거워했다. 딸기는 이곳에서 나는 토종식물이 아니지만 아주 잘 자란다. 아버지가 혹시 딸기를 심으려고 한다면 듀이(Dewey) 품종이라고 알려드려라. 데이트부인이 약 2년 전에 50개를 주문했고 우리 선교부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전 선교사들에게 딸기를 공급해오고 있다.(1907.5.26)

*윌은 랭킨의 남동생으로 미혼이었다.

6.전주엔 오븐이 없지만 멋진 빵을 선물로 받다

토요일(1일) 저녁에 우리는 아주 정성 들여 만든 선물들을 받았다. 그 중의 하나는 '빵으로 된 탑' 같은 형태의 선물이다. 한국인들은 오븐이 없어 이 빵은 쌀이나 보리 가루를 튀겨서 만든다. 이 탑은 크기가 작고 둥근 것들로 구성됐다. 이것들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꿀과 같은 것으로 서로 붙어 있다. 맨 위에서 3층까지는 밝게 빛나는 빨간 것으로 뒤덮여 있다. 튀겨진 보리가 다섯 개의 뿔 위에 뿌려져 있었다. 매우 예술적이다. 바로 이같은 환상적인 빵들은 매우 인기가 높았다. 우리가 받은 걸을 중의 일부는 크기가 빵 한 조각만 했다. 그리고 튀겨진 쌀이 그 빵 위에 있었다.(1908.2.3)

7.장수군에서 무김치를 맛보다

소고기국, 쌀밥, 무김치, 맛이 있었던 두 종류의 해조류, 계란, 콩, 고사리 등으로 아침을 먹고 전주의 집으로 출발했다. 장수 바로 옆에 높고 큰 산이 있는데 그것을 넘어야만 했다.(191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