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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진천송씨 가전 음식

전북

익산시 왕궁면 흥암리에 송영구의 환갑잔치에 얽힌 설화가 전한다. 이는 조선시대 문신 표옹(瓢翁) 송영구(宋英耉, 1556~1620)의 환갑잔치에 대한 이야기이다. 송영구는 풍채가 단아하고 언행이 바르며 성격이 강직했지만 남의 잘못은 너그럽게 용서해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전한다. 그의 환갑잔치가 있던 날이었다.

송영구가 살던 마을은 굉장히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다. 먹을거리가 귀한 나머지 잔치에 사람들이 모여들자, 그는 송참봉을 시켜 인절미를 만들게 했다. 워낙 굶주린 사람이 많아 송 참봉은 인절미를 닭 모이를 주듯이 뿌렸다고 한다. 인절미를 뿌렸다는 이야기는 청백하기로 소문난 그의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 당시 굶주린 사람이 많았다는 점에서 인절미라도 만들어 백성에게 나누어 주고자 했던 송영구의 애민정신의 마음이 읽히기도 한다.

송영구의 며느리 가운데는 남원의 삭녕최씨 집에서 시집온 이가 있었다. 삭녕 최씨라면 훈민정음을 언해하고 용비어천가를 주해한 최항(崔恒, 14091474)의 후손들을 지칭한다. 진천 송씨 집으로 시집갈 때 친정아버지인 최상중(崔尙重)이 딸에게 물었다. “시집갈 때 무엇을 주면 좋겠느냐?”. 그러자 그 딸은 변산 솔씨 서말만 주세요라고 했다. 변산은 예로부터 궁궐을 지을 때 사용하던 질좋은 소나무가 많은 곳으로 유명했다. 이 며느리가 봉동 진천송씨 우산종중 집안에 수립한 또 하나의 전통이 있다. ‘백자(百子)이라고 불리는 특이한 모습의 떡

이다. 이 집안의 '백자편'은 사람 발뒤꿈치 모양의 흰떡 수십개를 부채살처럼 둥그렇게 모아놓은 다음, 그 위에다 다시 계속해서 둥그렇게 얹어놓는다. 마치 피라미드처럼 67층을 겹쳐서 쌓아놓는다. 행사가 끝나면 이 떡을 하나씩 먹으면서 자손의 창성을 기원한다고 한다. '백명의 자손'이라는 '백자(百子)'의 뜻과 같이 송씨 문중의 자손들이 번창하기를 의미하는 떡이다. 지금도 문중 시제 때는 만들어서 모두 먹는다.

송영구 종가엔 간전과 처녑전이 전하고 있다.

전을 이르는 말로 <저냐>, <전유어>, <지짐>, <누르미>와 혼용되며 소의 간이나 처녑 또는 생선살 등으로 만든다. ‘음식디미방에는 동아누르미, 가지 누르미, 대구껍질 누르미, 개장고지 누르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진천송씨 송영구 종중은 시제 때 육전(소고기전, 돼지고기전)과 어전 이외에도 간납이라 하여 소의 내장전을 정성껏 준비한다. 손질한 처녑은 칼로 두드려 후춧가루를 뿌린다. 손질한 쇠간은 포를 떠 핏물을 제거하여 소금, 후춧가루, 깨소금을 뿌린다. 처녑과 쇠간은 밀가루, 달걀물을 묻혀 지진다.

매년 음력으로 716. 백중 다음날에 익산 망모당(왕궁면 광암리 351,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0)에서는 소쇄일(掃灑日)이라는 행사가 있다. 집안 전체가 모여서 청소도 하고 같이 식사도 하는 날이다. 옛날에는 비단 송씨뿐만 아닌 인근의 선비들도 참여해서 백일장도 열렸다고 한다. 이 행사에 참석하느라고 여산에서 삼례에 이르는 일대가 흰옷 입은 선비들로 가득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