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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전주 즙장

즙장(전주즙장)

“즙장을 그리 생각하시는 일 답답, 
저번 간 즙장 맛이 좋지 못하오니 갑갑, 
즙장을 묻고 이내 비 와 거름이 식어 그리되오니 답답하옵
즙장 메주 조금 남은 것 보내오니 시켜 잡사오실가 보내옵”

이글은 조선 후기 문신, 김진화(金鎭華, 1793~1850)의 아내 여강(驪江) 이씨(李氏)가 남편에게 쓴 편지글이다. 편지를 띄운 날짜는 정확하지 않다. 무신년(戊申年 1848)이나 날짜는 명확하지 않다.
앞의 글이 무신 구월 삼십일(1848년 9월 30일)이고, 뒤의 편지글이 무신 지월 념일(1848년 11월 20일) 인 것을 보면 1848년 10~11월 어느 즈음 쓴 것으로 추정된다. 김진화는 아산(牙山), 진산(珍山), 무장(茂長)지역의 현령을 거쳐 능주(綾州) 목사로 재임을 하며 안동 집을 떠나 있었던 시절이 많았다. 그의 아내는 안동 금계리의 본가 살림을 맡아야 했기에 남편과 동행할 수가 없었다. 부임지로 동행을 할 수 없었던 아내는 반찬을 해서 보내거나 식재료를 준비하여 어떻게 해 먹어야 하는지를 꼼꼼히 적은 편지글을 남편에게 여러 차례 보냈다. 한번은 즙장을 보냈는데 돌아온 남편의 반응이 아내를 무척 섭섭하게 했다. 여름날에 보낸 즙장 맛이 달라졌다며 타박을 한 것이다. 그러자 아내도 못내 서운한 심정과 맛이 변한 것에 대한 해명의 답장을 보낸 것이다. 

즙장은 콩과 밀기울로 만든 메줏가루에 소금과 가지, 오이 등을 말린 채소를 넣어 숙성시킨 장이다. 다른 장이 2~3개월 이상 숙성이 되어야 제맛이 나는 데 비해 즙장은 담근지 7~9일이 지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속성장이다. 빨리 떠야 하니 발효 시간 동안 적정온도 유지가 관건이다. 그래서 즙장을 담그면 항아리를 두엄 속에 묻었다. 안타깝게도 아내가 즙장을 담근 지 얼마 되지 않아 비가 내리는 바람에 두엄 속 온도가 내려가 적정 발효 온도를 유지하지 못해 제맛을 내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그것이라도 남편을 생각하며 보냈던 것이다. 아내는 집에 남은 즙장 메주를 싸서 보내며 원하는 즙장맛을 내보시든가로 마음을 달랬다. 즙장은 담가 오래 두지 않고 바로바로 먹었으므로 집에는 즙장용 메주를 준비하여 두고 별미로 즐긴 것을 알 수 있다.

영조(英祖) 대 필사본으로 전하는 『전주도읍지(全州道邑誌)』 중 『전주부읍지(全州府邑誌)』에는 전주부의 물산(物産) 외 진공(進貢)과 공물(貢物)을 상세히 기록하였는데, 여기에 말장(末醬)이 있다. 이 말장은 ‘내자시납(內資寺納)’이라 되어 있다. 내자시는 조선시대 호조(戶曹)에 속한 관청이다. 궁에서 사용하는 여러 가지 식품, 직조(織造), 내진연(內進宴)에 관한 일을 관장했다. 말장은 메주를 말한다. 좋은 메주가 있어야 맛 좋은 장을 만들 수 있다. 전주에서 만든 메주, 말장은 궁에 납품할 정도로 품질이 뛰어났던 것이다. 

말장은 메주다. 어의(御醫) 전순의(全循義)가 쓴 『산가요록(山家要錄)』(1450)에 1~2월경 콩을 삶아 절구에 찧어 메주를 만든다고 하였다. 그러나 즙장은 주로 여름에 먹는 장이기 때문에 메주를 4~5월 또는 7~8월에 만들었다. 또 즙장용 메주를 빨리 띄우기 위해 손으로 쥐어 작게 만들었다. 거의 모든 고조리서에서 기록되어 있을 만큼 조선시대에는 일상적인 장이었다. 밀과 콩으로 메주를 띄우고 말린 메주가루에 소금이나 맛있는 간장을 섞어 만들었다. 일반 장과 다른 점은 가지나 오이 같은 채소를 말려둔 것이나 소금에 절여 물기를 뺀 것을 함께 넣는 것이다. 풋고추나 고추잎이나 동아를 섞기도 하였다. 장의 일종이긴 하나 채소가 들어가 있어 별도의 조리를 하지 않아도 바로 먹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오늘날의 쌈장과 같은 형태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전주에서 말장을 잘 만들어서인지 ‘전주식 즙장 만드는 법(全州汁醬法)’이 『증보산림경제』(1766),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1800년대 초), 『박해통고(博海通攷)』(1800년대 중) 등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전주식은 밀과 콩이 아니라 가을보리[秋麰米]와 콩이 주재료였다. 서유구(徐有榘)는 『증보산림경제』의 기록을 인용하여 『임원경제지』 <정조지>에서 전주(全州)식 비법은 “가을 보리쌀에 콩을 섞고, 쌀뜨물을 넣어 반죽해서 호두 크기의 덩어리를 빚는다.”고 하였다. 이렇게 띄워 만든 메줏가루에 오이와 가지 말린 것 한켜, 누룩 한 켜로 층층이 항아리에 넣어 말똥 속에 묻어 3일에 한 번씩 따뜻한 물을 끼얹어 9일이 지나면 먹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때 항아리는 기름종이를 먼저 덮고 뚜껑을 잘 닫아야만 한다. 우리 선조들은 장 항아리를 말똥[馬糞]이나 두엄 속에 묻어 그 온도를 유지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말똥이나 풀을 쌓아 놓은 두엄 속의 온도는 평균 40℃를 유지하여 대기 중의 온도 차이에  관계 없이 일정한 온도로 유지하게 된다. 또한 두엄 속은 습도가 높아 미생물의 활동량을 증가하기 때문에 발효균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된다. 즉 두엄은 장이 발효되기 좋은 가온 및 보온 환경효과, 적절한 습도 유지, 각종 미생물들에 의한 이산화탄소 배출로 상대적으로 산소의 함량이 낮은 저산소환경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제작자 (사)한국음식인문학연구원 집필자 차경희
발행기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저작권자 한국문화원연합회
분야 한식[음식]
참고문헌 유중림,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1766;
서유구 저, 이효지 외 역,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정조지>, 교문사, 2007;
『박해통고(博海通攷)』, 한국전통지식포탈, https://www.koreantk.com;
전순의, 『산가요록(山家要錄)』, 1450;
황문환 외 역, 『조선시대 한글편지 판독자료집』, 역락, 2013;
김일권, 전주역사박물관, 제18회 전주학 학술대회-전주음식의 문화적 토대 자료집, 2016;
차경희, 전주역사박물관, 제18회 전주학 학술대회-전주음식의 문화적 토대 자료집, 2016(출처 한식용어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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