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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조선왕조실록과 전주음식3

쇠고기 정육으로 끓인 곰탕, 곰국, 탕국은 조선 시대에도 최고의 음식이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35년(1602년) 4월13일의 기사다.
 

(전략) 예조 참의 정경세(鄭經世)는 상(喪)을 당했을 때 남의 비난을 면하지 못하였으며 또 (중략) 공공연하게 기생을 끼고 놀았으므로 보고 듣는 자가 해괴하게 여겼습니다. 파직하고 서용하지 말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중략) (임금이 말하기를,) 정경세는 애석하다. 이 말이 혹 사실을 잘못 안 것은 아닌가? 다시 조사해 보는 것이 마땅하다.

‘남의 비난을 면하지 못할’ 짓은, 예조 참의 정경세(1563∼1633년)가 임진왜란 중에 상을 당했고, 상중에 고기(육즙)을 먹었다는 것이다. 상중에 고기를 먹는 것은 대죄다. 사대부로서는 해서 안 될 행동이다. 상주(喪主)는 최소한 3년 소식(素食)을 한다. 소식은, 반찬이 없는 맨밥이다. 고기는커녕 일상의 음식도 줄이고 줄인다. 험한 옷을 입고, 험한 밥을 먹는다. 상주가 고기를 먹었다? 탄핵감이다.
약 10년 후인 광해군 3년(1611년) 8월, 사간원에서 더 엄히 탄핵한다. 탄핵 이유는 거의 동일하다.

“전라감사 정경세는 어미가 칼날에 죽었는데 상복을 입은 몸으로 관가를 드나들며 고기를 먹었습니다. 인간의 도리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정경세를…. (후략)”

정경세는 20년 이상을 ‘상중에 고기 먹은 일’로 고초를 치른다. 걸핏하면 탄핵을 당하고, 더러는 벼슬살이를 멈춘다. 시골로 가거나 외직으로 떠돈다.

재미있는 것은, 정경세가 먹었던 것이 고기가 아니라 육즙이라는 주장이다. 고기와 달리 육즙은 환자의 보신용으로 인정받았다. 광해군 3년 11월, 상주의 진사 송광국 등이 연대 상소한다.
 

(전략) 사간원은 정경세가 상중에 고기를 먹었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왜란 중 정경세는 상중이므로 지극히 조심했습니다. (중략) 불행히도 공주 인근을 지나던 중 천연두에 걸렸습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공주목사 나급과 지사 윤돈이 묽은 죽에 육즙(肉汁)을 조금 섞어 정경세를 살렸습니다. (후략)


육즙은 보신용이니 용서해달라는 뜻이다. 곰탕은 여전히 귀한 음식이었다. 신하뿐만 아니라, 임금도 상중에는 곰탕, 육즙을 먹을 수 없었다.

임질에 관해 1512년(중종 7년)의 <중종실록>에는 이런 기록이 나온다.

'흥덕현(興德縣) 향리(鄕吏) 진간(陳侃) 의 아비가 임질(淋疾)을 앓아 거의 죽게 되었는데, 진간 은 울부짖으면서 몸소 빨아내 그 병이 곧 나았습니다.'

이 때 진간이 별 상을 못 받았는지 5년 후 전라관찰사로 있던 남곤이 다시 진간의 일을 다른 효자, 열녀의 일과 함께 상소한다.

진간의 일이 소문이라도 난 모양인지 이를 본받은 사람들이 나온다.

'하지식(河之湜) 은 어릴 때부터 지성으로 부모를 섬겼으며, 그의 아비가 항상 임질(淋疾)을 앓고 있으므로 하지식 이 빨고자 하였으나, 이[齒牙]에 상할까 염려하여 날카로운 이의 끝을 갈아버리고 빨아서 아비의 병을 드디어 고쳤으며, 아비가 죽자 모든 전물(奠物)을 형이나 아우에게 맡기지 않고 자기집에서 마련하였는데, 몸소 불을 지피면서 삼년상을 마치고 80세의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되 그 곁을 떠나지 않고 반드시 어육(魚肉) 등 맛난 음식을 드려서 배부르게 먹도록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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