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식

무주 한풍루(寒風樓)와 자하주

경북 안동에서 또 한 권의 옛 조리서가 발견됐다. 고성이씨 간서(澗西) 이정룡(李庭龍·1798-1871) 선생의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던 '음식절조'(飮食節造)라는 책이다. 안동을 중심으로 한 명문가의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宾客) 문화 및 조선 후기 언어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한글과 한문으로 쓰여진 이 책은 가로 8.5cm 세로 12cm의 손바닥 정도 크기이다. 경북유교문화원 이재업 이사장이 선조들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 공개했다.

모두 75종의 음식이 실려 있는 바, 음식조리법이 46, 술 제조법이 29종이다. 음식 종류로는 한과와 떡, , , 김치, 간장, 식초 등이 수록돼 있다. 다른 옛 조리서에서 찾을 수 없던 향온주, 하일주, 보리청주, 자하주 등 독특한 술 제조법이 포함돼 앞으로 가양주 개발·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쓰일 전망이다.

 

전북의 대표적인 누각(三寒)으론 무주 한풍루(寒風樓)와 남원 광한루(廣寒樓), 전주 한벽당(寒碧堂)이 있다. 보통 이를 호남의 3(三寒) 건물이라고 한다. 한기를 느낄 정도로 깊은 물 위에 자리해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중에 무주읍 당산리 남산 언덕의 한풍루(寒風樓)환격정(喚毄亭) 모두 적천(赤川) 가에 있다. 한풍루(寒風樓,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9)는 조선시대 지어진 2층 누각이다.

 

한풍루는 수 많은 문인묵객들이 찾아와 아름다운 경관에 매료되어 글을 남기며 풍류를 즐겼다. 호통화통하게 살다간 기인 백호(白湖) 임제(林悌, 1549~1587)도 무주 한풍루(茂朱寒風樓)라는 제목의 시를 남겼다.

 

보허사 노래하던 집 신선들이 흩허지니 / 고루(高樓) 따로 서서 거오 탄 형상이라/반가운 손이 와서 뜻밖에 만났으니 /자하주(紫霞酒)에 실컷 취해 거들며 노닐밖에

 

步虛堂上散仙曹 別起高樓駕巨鰲 靑眼客來逢邂逅 紫霞杯亞醉遊遨

 

고요한 밤 달 밝은데 여울이 꽁꽁 얼고 / 찬 구름 바람에 쏠려 눈산이 우뚝하이 두어라/백화난만(百花爛熳)한 늦봄을 기다려 /꿈결에 물새 따라 강뚝 거닐어 보세

 

月當靜夜氷灘壯 風折寒雲雪岳高 會待芳菲春暮節 夢隨沙鳥過江皐

 

 

'자하주'는 신선이 마시는 술로, 신선은 보라색 운하(雲霞)를 타고 다니는가 하면 자하주 를 마신다는 전설이 있는데, 무주는 신선이 사는 곳이었다는 의미다.

 

임제의 '면앙정부'에도 자하주가 나온다.

 

면앙정부(俛仰亭賦)1576년 백호 임제(白湖 林悌. 1549~1587)의 나이 27세에 지어진 것이다.

면앙집 제3권에 보면 84세의 송순은 1576518일에 임제에게 부를 지어달라는 부탁을 하는 편지를 쓴다. 그리고 같은 해 616일에 임제에게 글을 써주어서 감사하다는 답장을 쓴다. '면앙정부(俛仰亭賦)'

 

'큰 고을은 남쪽에 놓여 있고 넓은 들판은 동쪽으로 펼쳐 있네. 용이 서려 있는 일곱 굽이요, 선천적으로 아늑한 한 마을이었네. 경치가 세상에 빼어난 별유천지요. 바람과 달은 천만년 한가로웠네.(중략) 이 정자에서 하늘을 우러러보고 이 정자에서 머리 숙여 땅을 보니 이 산정에서의 삶이 더 없이 좋구나. 이 정자에서 바람을 쏘이고 이 정자에서 달을 구경하니 한 푼의 돈도 들일 것이 없구나. 학의 모습처럼 더욱 깔끔하고 소나무 그림자처럼 건장하도다. 자하주(붉은 안개 빛 술) 마시면서 세월을 머무르게 하고, 신선을 초청하여 함께 어울리네. 속인들의 발자취 몇 번이나 올라와 왔으련만 늙은 임의 눈에 보였네.어린 시절부터 고기 잡고 놀았던 곳, 안개 속에 고결하게 보였네'

 

한풍루는 조선전기부터 오늘까지의 모습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있는 건축물이자 임진왜란 당시의 소실은 물론, 중수와 정비 과정 전부를 확인할 수 있는 사료, 수탈의 아픔 속에서도 우리 군민들이 당당히 지켜낸 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592년 왜군의 방화로 소실됐다가 1599년 복원돼 1783년까지 보수, 중수과정을 거치고 1910년 이후에는 불교 포교당과 무주 보통학교 공작실로도 활용되기도 했다.

 

1936년에는 영동 양산면 가곡리 금강 변으로 옮겨지는 수난을 겪기도 했으며 1960년대에 비로소 한풍루복구추진위원회가 결성돼 1971년 무주군 무주읍 지남공원 내 현 위치로 이건했다.

 

이건 과정에서 원부재를 최대한 활용해 역사성과 건축성, 학술성이 뛰어난 누정 건축물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무주 한풍루 편액은 조선시대 명필 한호(석봉_보존처리 후 다시 수장고에 보관 중)선생과 현대 송성용(강암)선생이 쓴 것이 있으며, 현재 한풍루에는 강암 선생(1913~1999)의 작품(190×73)2002년 제작된 석봉 선생의 모사품이 걸려있다.

 

춘향전에 '자하주' 나온다

 

작가 미상의 한글 소설 '춘향전'에 등장하는 월매는 매사에 준비가 철저한 어미였다. 이도령이 백년가약을 맺으려고 춘향집을 찾자, 이런 날을 대비해서 그동안 준비했다며, 산해진미와 갖가지 술을 내놓는다.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의 한 대목을 보자.

()양푼 가리찜, ()양푼 제육찜, 풀풀 뛰는 숭어찜, 포도동 나는 매추리탕에 동래(東萊) 울산(蔚山) 대전복 대모 장도 드는 칼로 맹상군(孟嘗君)의 눈썹처럼 어슷비슷 오려 놓고, 염통산적, 양볶이와 춘치자명 생치 다리, 적벽 대접 분원기에 냉면조차 비벼놓고 생률 숙률 잣송이며 호도 대추 석류 유자 준시 앵두 탕기 같은 청술레를 칫수 있게 괴었는데(중략)술 이름을 이를진대 이적선 포도주와 안기생 자하주와 산림처사(山林處士) 송엽주와 과하주, 방문주, 천일주, 백일주, 금로주(金露酒), 팔팔 뛰는 화주, 약주, 그 가운데 향기로운 연엽주 골라내어(중략) 불한불열(不寒不熱) 데어 내어 금잔 옥잔(玉盞) 앵무배를 그 가운데 데웠으니(후략)

 

자하주(紫霞酒)는 보랏빛 노을을 닮은 술이다. 신선이 사는 선계(仙界)의 술로 불리기도 한다. 과하주(過夏酒)는 소주와 약주를 섞어서 빚은, 주로 여름에 많이 마시는 술이다. 방문주(方文酒)는 약방의 처방에 따라 특별한 재료와 방법으로 빚은 술이다.

천일주(天日酒) 얘기는 더 흥미롭다. 빚어 담근 지 1000일 만에 마시는 술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한 번 마시면 1000일 간 기분 좋게 취하는 술이란 전설이 마음에 더 와 닿는다. 담근 뒤에 100일 동안 땅 속에 묻었다가 거른 백일주(百日酒), 금로주(金露酒), 화주(火酒: 소주)가 뒤따른다.

 

월매가 사위 이몽룡에게 주려고 심혈을 기울여 선택한 술은 연엽주(蓮葉酒: 연잎술)였다. 늦여름이나 입추 전에 채취한 연잎을 술에 넣는 가향주(佳香酒)이자 계절주다. 가을로 접어들 무렵이면 연잎의 수분이 점점 줄어들면서 향이 좋아진다. 연꽃은 동트기 전에 하는 소리를 내며 꽃망울을 터트린다. 옛 선비들은 이 소리를 개화성(開花聲)’이라 부르며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연엽주는 그런 풍류와 잘 어울리는 술이다.

 

'운영전'에도 자하주 나온다

 

작가 미상의 한문소설 '운영전(雲英傳)'에도 자하주가 나온다.

조선왕조 세종의 제3자 안평대군의 수성궁은 세월이 흘러 폐허가 되었다. 유영이라는 한 선비가 춘흥을 못이겨 그곳을 찾아가 홀로 술잔을 기울이다가 문득 잠이 들어 밤을 맞는다.한 곳에 이르니 어떤 청년이 아름다운 여인과 속삭이다가 유영이 오는 것을 보고 반갑게 맞이한다. 여인은 곧 시비를 불러 자하주(紫霞酒)와 성찬(盛饌)을 차려오게 한다. 그 뒤 세 사람이 대좌하여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른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유영이 그들의 성명을 물으니 청년은 김진사, 여인은 안평대군의 궁녀 운영이라 한다. 유영이 안평대군 생시의 일과 김진사의 슬퍼하는 곡절을 물으니 운영이 그들의 사연을 먼저 풀어 놓는다.

 

'구운몽'에도 자하주 나온다

 

김만중의 구운몽에도 자하주(紫霞酒)가 나온다. '

 

한림이 더욱 놀라 어린 선녀(仙女)를 따라 가니 층암절벽 위에 한 정자가 있으되, 온갖 화초가 만발한데 앵무 공작이며 두견새 소리가 낭자하니 진실로 선경(仙境)이었다.

한림이 마음이 황홀하여 들어가니 비단 장막에 공작 병풍을 둘렀는데 촛불을 밝게 켜고 서있다가 한림께 나와 예를 올린 후에 말하였다.

 

"양랑께서는 어찌 저물어 오십니까?"

 

한림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소생은 인간 사람이라 신선과 혼약(婚約)할 연분이 없는데 어찌 더디다 하십니까?"

 

선녀가 말하였다.

 

"한림은 의심치 마십시오."

 

하고, 여동을 불러 말하였다.

 

"낭군께서 멀리 와 계시니 급히 차를 드려라."

 

하니, 여동이 즉시 백옥 쟁반에 신선의 과일을 배설하고 유리잔에 자하주(紫霞酒)를 부어 권하거늘, 그 술이 인간 술과 달랐다'

 

 

고려시대의 문학작품 속에도 멋있는 술 이름이 나타난다.

 

이규보의 시에는 이화주(梨花酒), 자주(煮酒), 화주(花酒), 초화주(椒花酒), 파파주(波把酒), 백주(白酒), 방문주(方文酒), 춘주(春酒), 천일주(千日酒), 천금주(千金酒), 녹파주(綠波酒), 동동주 등이 나온다.

 

 

이외에 우리 선조들의 상상력과 풍류를 엿볼 수 있는 전통 술 이름들이 꽤 많다. 술빛이 흰 노을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백하주(白霞酒), 푸른 파도와 같다는 녹파주(綠波酒), 푸르고 향기롭다는 벽향주(碧香酒), 차마 삼켜 마시기 아쉽다는 뜻의 석탄주(惜呑酒) 등이다.

 

 

우리나라 술 종류를 가장 많이 기록한 책은 19세기 초에 서유구가 쓴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술 이름이 무려 170여 가지나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조선 말기까지 600여 종이 넘는 우리 술이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는 다양한 술이 존재했던 셈이다. 명망이 높은 집안에서 제사에 쓸 술을 직접 빚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20098월 정부는 우리술 복원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임원경제지 등 옛 문헌에 기록된 전통주 제조방법을 과학적으로 복원해 50종을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전통술이 아직도 복원되지 않고 있다. 희석식 소주와 맥주와 위스키, 서양 포도주에 밀려 우리의 기후와 풍류를 닮은 술이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주군과 무주문화원은 한풍루를 국가 보물로 승격시키기 위해 학술적 · 역사적 · 예술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있다. 이 기회에 자하주 스토리를 입혀 문화관광자원화로 이어졌으면 한다./글 이종근

 

'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주 딸기와 선교사  (0) 2021.05.24
[이종근의 행복산책2]무(무우)  (0) 2021.05.15
선교사들이 가져온 감자와 과일  (0) 2021.04.05
딸기를 1905년 전주에 도입한 잉골드  (0) 2021.03.18
신석정시인과 음식  (0) 2021.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