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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김제 봉양영당에서 과하주(장군주) 맛을 보니




김제 봉양영당에서 과하주(장군주) 맛을 보니

증보산림경제에 나오는 과하주...60년 이상 만들고, 제사때 50년 이상 과하주 올림

언양김씨 일가가 9일 오전 11시 김제 금산면 봉양영당(鳳陽影堂)에서 영당제를 지냈다.
이곳은 조선 전기 문신 김관(1425~1485)을 모신 영당으로 그의 후손인 김재희(79, 평택), 김광희(77, 전주), 김대희(59, 전주)가 언양김씨 집안에서 비법을 간직해온 과하주를 정성스럽게 올렸다.
'과하주(過夏酒)’는 봄과 여름 사이에 곡류로 술을 빚어 발효시켜 소주를 넣어 저장성을 높인 술. 여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고 해서 과하주(過夏酒)라고 한다. 즉, 지날 과(過), 여름 하(夏) 자를 써 ‘여름을 넘긴다’는 운치 있는 술이다.
과하주는 『음식디미방』, 『양주방(釀酒方)』, 『규합총서(閨閤叢書)』등에 조리법이 기록되어 있다.
"저희들은 '증보산림경제'에 나오는 과하주를 60년 이상 만들고 있습니다.
50년 이상 제사때마다 올린 술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몇해 전 작고한 어머니 김남옥씨로부터 과하주 기법을 고스란히 전수받은 것.
그녀는 2002년 전주전통술박물관서 장군주를 재현, 눈길을 사로잡은 바 있다.
그녀는 순창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에 친정에서 혼례를 치르고 열여섯 살에 시집을 갔다. 친정은 울산 김씨 집안으로, 그의 아버지는 간재 전우의 제자인 위재 김여중 씨였다. 상투를 틀고 신학교에 가지 않는 것을 최소한의 충절이라고 여겨 일가친척들에게 자신의 뜻을 관철했다. 친정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고 술을 잘 빚었다. 시어머니도 음식 솜씨가 좋고 술을 잘 빚어 그는 어깨너머로 자연스럽게 술을 익히게 됐다.
그녀는 순창에서 태어나 김제로 시집와 전주에서 술도가를 할 때까지 어려움 없이 살았다.
그렇게 친정(울산 김씨)과 시댁(언양 김씨)에서 집안 대대로 전해진 과하주를 빚는데 평생을 오롯이 바친 그녀는 1986년 전통민속주로 지정받은 과하주를 담는 기능보유자였다.
이들 형제는 전국적으로 알려진 과하주가 3∼4개 있지만 그들의 과하주는 재료부터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 술은 녹두 누룩을 사용해 술 빛깔이 좋은데다 숙취가 전혀 없고, 솔잎과 대잎을 비롯, 인삼·백봉령·사삼 등 각종 약재까지 사용해 건강에도 좋은 것이 특징이란다.
“일제 치하에서는 집에서 담가먹는 술도 밀주라고 해서 철저히 금지했어요. 해방후에도 주정을 금지했지만 우리 것을 보존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남의 눈을 피해 몰래 술을 빚었지요.”
이들은 제조 기간이 길어질수록 누룩을 적게 쓴다고 했다. 주로 멥쌀 2되로 밑술을 잡고 찹쌀 1말로 덧술을 했다. 밑술을 할 때 15일주는 죽을 쑤고, 20일주는 흰무리떡을 하고, 40일주는 생쌀가루를 뜨거운 물에 반숙해 빚었다. 60일주와 100일주는 물을 쓰지 않고 술로 술을 빚었다. 그의 술 빚는 비방 속에 전통술의 모든 기법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술도가로 파산한 뒤 객지 생활을 하게 됐다.
김재희씨는 1990년대 초반 전주 금상동에서 술도가를 운영했다. 김제시 금산면 성계리가 고향으로 그의 어머니 김남옥 씨는 빚을 줄 아는 술은 많았다. 제조 기간으로 구분되는 술들로 9일주, ‘진양주’라고 부르는 15일주, ‘평양주’라고 부르는 20일주, 40일주, 과하주라고 부르는 60일주, 100일주가 있었다. 동동주와 비슷한 ‘점주’ ‘석탄향주’도 빚을 줄 알았다.
이 가운데 과하주 빚는 솜씨가 좋아 교통부의 추천을 받아 민속주로 등록해 35도짜리 과하주를 출시했다. 장군주로도 통하는 이 술은 부친(김성근)의 친구인 조병희(가람 이병기 선생의 조카이며, 이강주를 빚는 조정형 씨의 부친) 씨가 붙여준 이름이다.
언양 김씨 집안에 명성 있던 인물로 김천일장군이 있다. 김장군은 술을 좋아하여 호리병을 차고 전장에 나갈 정도였다고 한다. 비록 김씨네 일가들이 김장군의 직계는 아니지만, 장군을 배출한 집안에서 빚은 술이라 하여 장군주라고 이름짓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장군주는 1년쯤 출시되다 중단되고 말았다.
명절 때 서울의 백화점에 납품했는데, 중간 납품업자가 4t짜리 트럭 한 대 분량의 술값을 떼먹고 달아나버린 것이다. 그 충격으로 인해 술도가가 부도나고, 김재희씨네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음복을 해보니 맛이 예사롭지 않다.
쌀(찹쌀, 멥쌀)과 누룩으로만 빚어낸 이 술을 보니 투명한 황갈색이다.
시나브로, 신맛과 단맛이 은근히 어우러진다. 맛이 부드러우며 약주 특유의 달콤함을 지니고 있다. 단맛이 강하면서도 도수는 상당히 높았다.
소주 특유의 쏘는 듯한 시원한 맛도 느껴졌다. 술을 마신지 1시간 여가 흐르면서 취한 기운에서 벗어났다.
이들은 '"음식디미방에 ‘달고 독하다’고 짧게 기록돼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냉장 기술도 없는 상태에서, 더운 여름철에 술의 단맛이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술을 만들었다는 것을 높이 평가합니다. 단맛을 계속 유지하는 기술, 사실 대단한 것입니다.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종원들이 방문할 수는 없었지만 그 정성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수 없지요. 제 아무리 힘들어도 그 맥을 잇고자 한다"고 했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