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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세종 “윤회, 너는 총명하고 똑똑한 사람인데, 술 마시기를 도에 넘치게 하는 것이 결점이다. 이제부턴 3잔 이상을 마시지 말라”

옛 이야기에서 전북을 만나다:세종실록
세종, 고창 무장출신 윤회에게 과음하지 말라고 하다

 


고창은 조선 전기의 윤회(尹淮, 1380~1436)나 후기의 황윤석(黃胤錫, 1729~1791)과 같은 걸출한 유학자를 배출한 선비의 고장이다. 구슬도 완전하고 거위도 구한 ‘멱주완아(覓珠完鵝)’ 이야기를 알고 있나. 이는 다름 아닌, 진주를 삼킨 거위를 살린 윤회 이야기이다.
윤회는 고창 무장을 본향으로 하는 무송(茂松)윤씨다. 무송윤씨는 대제학이 3인이나 나온 명문가로, 고려 말에서 조선 초 문신이다. 자는 청경(淸卿), 호는 청향당(淸香堂), 증조할아버지는 윤택이며, 할아버지는 윤구생이고, 아버지는 윤소종이다.
그는 집현전이 설치되자 1422년 부제학으로 임명되고 다시 예문제학, 대제학이 됐다. 술을 즐겨 세종이 “너는 총명하고 똑똑한 사람인데, 술 마시기를 도에 넘치게 하는 것이 너의 결점이다. 이제부터 양전(兩殿)에서 하사하는 술 이외에는 과음하지 말라” 며 여러 차례 타일렀으나 그치지 못했다. 그의 재능을 아낀 세종대왕은 건강을 염려하여 술을 석 잔 이상 못 마시게 하였는데, 연회 때마다 큰 놋쇠 그릇으로 석 잔씩을 마셨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세종실록 50권, 세종 12년 12월 22일 무자 3번째기사 '1430년 명 선덕(宣德) 5년사헌부에서 윤회의 치죄를 아뢰었으나 허락치 않다'가 보인다.

사헌부에서 아뢰기를,

"빈객(賓客) 윤회(尹淮)가 서연(書筵)에 나아가서 강의를 맡아야 되는데 술에 취하여 참석하지 아니하였으니, 도무지 공경하며 삼가하는 뜻이 없습니다. 청하건대, 그 죄를 다스리소서."

하니,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인하여 회에게 이르기를,

"경이 술을 마시어 도를 지나치는 일이 한 차례가 아니었고, 내가 경에게 술을 많이 마시지 못하게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신이 임금의 명령에 대하여는 물이나 불 속을 들어가라 하여도 오히려 피하지 않을 터인데, 하물며 그 밖의 일이겠는가. 자기의 주량(酒量)을 생각하여 한두 잔쯤 마시든지, 반 잔쯤만 마신다면 그렇게 정신이 없고 체면을 잃게까지야 되겠는가. 이제부터는 부디 지나치게 마시지 말라. 따르지 않으면 죄를 받을 것이다."

하고, 들어와서 김종서에게 이르기를,

"윤회가 술을 좋아하지만, 나는 그의 재주를 아껴서 과음하지 말라고 경계한 적이 있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또 과거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다시 술을 조심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조금도 고치는 빛이 없었고, 지금 또 취해 가지고 서연(書筵)에 나아가지 않았으니 세자(世子)를 보도(輔導)하는 도리에 있어 어떻겠는가. 임금의 명령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노력하여 따라야 될 터인데, 더구나, 술을 삼가라는 명령을 따르기가 무엇이 그렇게 어렵단 말인가. 도리를 알 만한 선비도 이러하니 무식한 소인의 무리야 말할 것도 없다."

했다.어느 때 술에 취해 좌우의 부축을 받고 왕 앞에 불려 나가 선제(宣制 : 조서)를 기초(起草)하라는 명령을 받자 붓대가 나는 듯이 움직여 세종은 참으로 천재라고 탄복했으며, 세상 사람들은 문성(文星)·주성(酒星)의 정기가 합해 윤회 같은 현인을 낳았다고 했다.
세종실록 3년 8월 26일자에 실려 있는 윤회의 시(詩)를 소개한다.

‘여름 밭두렁 산들바람에 보리이삭은 길어지고 가을 들판에 빗물이 넘쳐 벼꽃이 향기롭다 우리 임금 한번 놀이로 삼농(三農-봄 갈이, 여름 김매기, 가을 추수)에 바라보니 시월달 타작마당에 풍년은 들고 말리’

이 시를 읽다보면 들녘의 아름다운 풍경과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윤회가 얼마나 백성들의 먹거리를 걱정하고 풍년을 기원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모시고 있는 세종에 대한 존경심과 충성심, 태평성대의 염원이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조정에서는 조회와 저자(市場)를 정지한 후 조문(弔問)하고 부의를 내렸으며, 세자 또한 조의를 표했다. 문도(文度)란 시호를 내리니 학문에 부지런하고 묻기를 좋아함을 문(文)이라 하고, 마음을 능히 의리로써 제어함을 도(度)라 하기 때문이다.
윤회는 깊은 학식과 인본주의, 생명존중의 사상을 갖춘 휴머니스트였다. 그가 젊은 시절 시골 마을에 갈 일이 있었다. 저녁에 여관에 투숙하려니 주인이 숙박을 허락하지 않아 뜰 옆에 앉아 있었다. 주인집 아이가 커다란 진주를 가지고 밖으로 나와 마당 가운데 떨어뜨리니 옆에 흰 거위가 있다가 곧 삼켜버렸다. 아이는 제대로 부모에게 말도 못 했다. 조금 있으니 주인집 사람이 쫓아 나와 윤회를 붙잡고 구슬을 내놓으라고 야단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다. 윤회는 기가 막혔으나 아무 말 못 하고 오라에 묶여 밤을 지새우게 되었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관가에 데리고 간단다. 윤회는 아무 말 없이 다만,

“저 오리를 내 옆에 같이 묶어 두시오”

하고 주인에게 청했다. 참으로 지혜롭고 현명한 처신이 아닐 수 없다.
아침이 되자 오리가 똥을 누니 구슬이 그 속에 섞여 나왔다. 주인은 백배 사죄하고 왜 어제는 아무 말도 안 했느냐고 한다. 이에 윤회가 말했다.

“내가 어제 말을 했더라면 아마 당신은 저 오리를 죽여 확인을 했을 것이오”
동물 사랑도 이쯤은 돼야 하겠다. 윤회의 거위사건에서 배울 수 있듯이 상대방을 이해하고 기다려 주는 마음, 그리고 이웃을 배려하고 서로 간에 소통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당장 나에게 불이익처럼 느껴지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판단되면 상대방의 입장이나 사태의 객관적 판단없이 즉각적으로 사람들을 정죄하거나 폭력적 행동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의 사실이 밝혀지고 오해가 풀리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