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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임실 얼음 창고

예로부터 '석빙고(石氷庫)'에 저장하는 얼음의 두께는 12㎝ 이상이 되어야만 했다. 이는 보물 제66호 경주 석빙고, 보물 제305호 안동 석빙고, 보물 제310호 창녕 석빙고, 보물 제323호 청도 석빙고, 보물 제673호 달성 현풍 석빙고, 보물 제1739호 창녕 영산 석빙고 등 6기가 남아 있다. 경주 석빙고의 경우, 조선시대때 중요 관리와 종친 뿐만 아니라 환자와 감옥의 죄수에게도 얼음을 지급했다고 하니 얼마나 시원했을까?
전주 빙고리는 전주천의 얼음을 보관해 놓은 굴이 있던 곳이다. 이철수의 ‘전주야사’에 빙고가 더 큰 규모로 기록되어 있어 이 굴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옛 예수병원 아래에 빙고가 있었고, 다가산 아래 소가 깊어 얼음이 두껍게 얼으므로 이를 떼다가 저장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임실 얼음창고는 현재 2곳이 남아있다. 관촌역 앞 1곳, 바로 인근 시기마을에 2개 동이 바로 그것이다. 인근 공덕마을에도 1개 동이 있었지만 도로공사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는 최성미 임실문화원장의 설명이다.
3개 동 모두 지상 3층 가까운 높이에 바닥 면적 20∼40평 규모로 시멘트와 돌, 모래 등을 이용, 사각형으로 지어졌다. “옛날에 일본 사람들이 얼음을 여기다 쟁여놨다가 전주, 군산으로 실어가고 그랬죠” 시기마을 얼음창고 2개 동은 호남빙고가 건립한 것으로 쓰러진 지붕과 뼈대만 앙상히 남아 있다. “이곳은 건축 허가가 나지 않아 방치됐으며 건물주와 땅주인이 달라서라고 믿고 있다”는 주민은 “건물주가 죽어 철거마저 쉽지 않다”고 했다.
이곳에 얼음 창고를 지은 것은 얼음을 보관한 뒤 여름에 판매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상술 때문이었다. 오원천에서 질 좋은 천연빙을 쉽게 건질 수 있는데다가 입춘이 한참 지나도록 남아 있을 정도로 오래 남아 있는 대리보의 얼음은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 됐다.
얼음을 무더위 때까지 온전히 보관할 수 있었던 것은 보온 보냉이 뛰어난 왕겨를 이용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창고 바닥에 왕겨를 깔고 40X60㎝, 90X40㎝ 정도로 반듯하게 자른 얼음을 차곡차곡 쌓은 뒤 벽면에 다시 이를 채워넣은 방법이었다. 여기에 건물 외벽을 주로 지붕에 사용했던 양철로 둘러싸고, 다시 벽면 사이에 왕겨를 넣음으로써 외부열을 차단하는 대신 내부 냉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오복 더위에 전주지역에 빙수용 얼음을 내놓자 불티나게 팔려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는 최원장의 설명이다. 또, 이 얼음은 생선의 신선도를 유지시켜주는 방부빙으로도 각광받아 군산은 물론 멀리 여수어판장에서도 찾을 정도였다. 창고 자리이므로 문화재 지정은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이를 알리는 안내판 하나 없는 오늘의 현실이다. “냉장고 없던 시절에도 우린 얼음 먹었어”라는 동네 주민의 이야기가 귓가에 맴돈다./이종근(삽화 새전북신문 정윤성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