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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윤백남과 전주비빔밥


전주비빔밥과 관련된 기록은 1931년 5월 19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윤백남의 「남조선야담순방 엽신(南朝鮮野談巡訪 葉信)」 이라는 글에 처음 등장한다.

 윤백남(尹白南: 1888-1954)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소설가 극작가 겸 연극영화인으로 『대도전(大盜傳)』이라는 대중소설을 남겼다. 그가 이 소설을 집필하던 도중, 연극 공연차 전주에 들렀나 보다. 윤백남은 그간 쌓인 노독(路毒)으로 인해 전주 구경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몹시 지친 상태였지만, 그 와중에도 전주비빔밥은 챙겨 먹었다. 그러나 기대만큼 감흥이 없었던지, 그는 “무엇이 조아서 전주비빔밥 전주비빔밥 하는지 그 이유를 아지 못하겠더이다”라고 하였다. 비록 기대만큼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당시 전주비빔밥이 전국적으로 꽤나 유명했음을 알 수 있다.


 작촌 조병희(趙炳喜: 1910-2001)의 『전주풍물기』라는 수필집에도 전주비빔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일제강점기 전주지역에서는 남부시장을 중심으로 간단한 한 끼 음식으로 비빔밥이 큰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 조병희는 “음식점에 들리게 되면 건장한 일꾼이 커다란 양푼을 손에 받쳐들고 옥쥔 숟가락 두어 개로 비빔밥을 비벼대는데 흥이 나면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빙빙 돌리던 양푼이 허공에 빙빙 돌다가 다시 손으로 받쳐들고 비벼대는 솜씨는 남밖장만이 가지고 있는 정경이랄까?”라고 하여, 당시 남부시장 일대에서 비빔밥을 만들어 판매하던 모습을 회고하였다. 작촌의 묘사처럼, 전주 남부시장에서 판매되는 비빔밥은 숟가락으로 빙빙 돌려가며 밥을 비빈다 하여 ‘뱅뱅돌이 비빔밥’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1950년대 전주시내에서 전주비빔밥을 판매하는 식당으로는 옴팡집과 한국떡집이 유명했다. 1958년에 동아일보 어느 기자는 옴팡집에서 전주비빔밥을 맛보았다. 옴팡집의 외양은 허름한 초가집으로 보잘 것 없었으나, “가지가지의 모든 반찬은 하나도 특미가 돌지 않는 것이 없”을 만큼 음식 맛이 훌륭했다. 게다가 주문을 받은 뒤에야 주인(이마담)이 직접 음식을 만들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모든 음식이 신선했다고 한다(「팔도강산(八道江山) 발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22)」, <동아일보> 1958년 11월 20일). 한편, 옛 전주우체국(현재 경원동우체국) 골목에 자리 잡은 ‘한국떡집’은 처음에는 떡 장사로 문을 열었다. 그러나 기대만큼 떡이 잘 팔리지 않자, 이분례 주순옥 모녀는 공무원과 회사원을 대상으로 점심 장사를 시작하게 된다. 모녀가 점심식사로 내놓은 메뉴는 비빔밥이었다. 이 비빔밥은 남부시장식 ‘뱅뱅돌이 비빔밥’에서 힌트를 얻었지만, 시장비빔밥과의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도라지 쑥부쟁이 꽃버섯 같은 특별한 재료를 넣고 그 위에 소고기육회를 올려 비빔밥을 좀 더 고급화했다. 이분례 여사의 비빔밥은 기대 이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자 주변 식당들도 메뉴에 비빔밥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1960~70년대 옛 전북도청 인근에는 비빔밥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서 ‘비빔밥 골목’을 형성하게 된다. 이들 식당 중에는 자신만의 고유한 레시피를 개발한 집들이 있었다. 어느 집은 고추장 양념에 밥 콩나물 참기름을 넣고 초벌볶음을 한 뒤 그 위에 나물과 고기를 고명처럼 얹어냈다. 그리고 어떤 집은 자체적으로 개발한 돌솥에 잣 은행 밤 대추 같은 영양식 재료를 추가하여 비빔밥을 지어 냈다. 또 다른 식당은 아예 사골육수로 밥을 짓기도 했다.

 이처럼, 1960~70년대 전주지역에서는 다채로운 비빔밥을 선보이는 전문식당들로 제2의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전주비빔밥은 1970년대 무렵 서울로 진출하게 된다. 당시 백화점은 매상고를 올리기 위한 새로운 마케팅전략으로 전국 팔도의 명물을 한 자리에 모으는 ‘팔도민속전’을 기획하였는데, 이때 전주비빔밥이 전주지역 명물로 섭외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전주비빔밥이 ‘전국 명물’로 새롭게 부각되었다. 원래 전주지역 사람들은 비빔밥을 ‘콩나물비빔밥’, 혹은 ‘뱅뱅돌이 비빔밥’ 등과 같은 이름으로 부르곤 했는데, 서울 진출을 계기로 ‘전주’라는 지역명과 ‘비빔밥’이 결합한 ‘전주비빔밥’이 공식명칭처럼 사용되기에 이른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전주비빔밥의 레시피는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다채롭다. 이는 비빔밥 식당들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자 고유의 레시피를 개발하고, 끊임없이 이를 변주해왔기 때문이다. 다만, 쥐눈이콩으로 재배한 콩나물이나 청포묵(황포묵) 등과 같이 전주지역 고유의 식재료를 활용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식당 고유의 레시피가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지역의 식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는 점은 전주비빔밥이 갖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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