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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모주와 황포묵

 


-음식으로 자손 목숨을 구하려했던 전주 어미들의 지혜

 모주로 만든 모주아이스크림이 전주를 찾는 젊은이들에게 인기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몸에 좋다는 한방 재료가 다 들어가기 때문이다.
본래 모주는 어미의 술이다. 전주의 어미들이 자식을 위해 만들어주는 술이라는 뜻이다. 더 나아가서는 숙취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아들의 위장을 달래주려는 술이다. 그러니 술이라기보다는 약에 가깝다. 만드는 방법과 재료만 봐도 그걸 알 수 있다.  막걸리에 우리나라 4대 기초 한약재로 꼽을 수 있는 감초, 생강, 대추, 계피 등을 넣고 하루 이상 끓여낸 게 전주 모주다. 물론 인색하게 그 기초 한약재만 넣고 끓이는 전주 어미들은 없다. 인삼이나 당귀, 칡뿌리 등 몸에 좋다는 또 다른 재료들까지 듬뿍 넣어 약 기운이 우러날 때까지 끓이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술 성분은 거의 다 날아가고 알코올 도수 1% 미만의 술 아닌 술이 탄생한다. 뱃속이 뒤집히는 아침마다 나를 구한 게 그 모주였다.
전주 모주는 참으로 어여쁘다. 이제 당신이 그걸 한 잔 들이키기만 하면 된다. 시간이 여의치 않거든, 한옥마을에서 판매하는 앞서 그 모주아이스크림을 깨물어도 될지 모르겠지만 전주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전주에서 마신 술은 전주에서 풀어야 한다는 상식을 인정한다면, 전주 술꾼들의 방식을 따르는 게 좋을 듯하다. 모주는 웬만한 콩나물국밥집에서는 다들 만들어 파는데, 그 집의 국밥과 함께 곁들이는 게 으뜸이다. 국밥도 그 집만의 독특한 방식, 모주도 그 집 주모만의 개성적인 철학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황포묵도 전주가 만든 가상한 음식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황포묵은 녹두를 쑤면서 치자를 넣어 노랗게 만든 묵이다. 녹두가 주재료이기 때문에 그냥 쑤기만 하면 푸르스름한 색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이 단계의 묵은 따로 청포묵이라고 한다.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전주에 와서 당신이 무엇을 먹든 또는 무엇에게 눈길을 주든, 이 동요를 항상 염두에 두는 게 좋을 듯싶다. 전주 문화를 이해하는 키워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학혁명 직후 전라도 일대는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해야 했으리라. 어쩌면 청포묵 하나도 맘 놓고 쑤어먹지 못했을 것이다. 청포라면 괜한 의심을 살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때 우리 할머니들은 식구들의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 청포에 치자를 넣어 황포묵을 만들었던 건 아닐까? 아마 분명 그랬을 것이다.
당신과 나는 그렇게 해서 목숨을 보전한 조상들의 자손이다. 그 인연을 지금도 모르시겠는가?…. 헌데 전주에서는 황포묵을 비빔밥의 재료나 다른 음식에 얹는 고명 정도로나 쓰고 만다. 나는 그게 늘 안타까웠다. 차라리 내가 황포묵 전문점을 개업해버릴까? 맛도 영양도, 해독에도 탁월한 식재료이니 아예 황포 묵무침이나 황포 묵국수를 팔러 나서볼까?…. 물짜장과 가게맥주 등도 전주가 처음 개발한 음식들로 인정된다. 몇 년 전만 해도 전주 개발 4대 음식이라고 하더니, 이제 상추튀김이 더해져서 5대로 꼽는다. 여기에 모주아이스크림을 빼놓을 수 없다면 6대, 콩나물잡채를 더하면 7대, 물갈비까지 8대, 올해 안에 전주 개발 10대 음식이 등장할 게 틀림없다. 아, 맞다. 전주는 국제음식창의도시다. 상추를 튀겨서 도대체 어쩌자는 건지 사람들은 의심한다. 그 선입견을 한판 뒤집기로 멋지게 바꾼 게 바로 상추튀김이다. 나는 여기서 그 방식에 대해 다 까발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당신이 와서 직접 주문한 뒤에야, 당신은 틀림없이 배시시 웃음 짓고 말 것이다. 당신 그 미소를, 모든 상추가 다 튀겨지는 날까지라도, 그저 나는 하염없이 기다려야겠다./이병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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