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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남문 야시장, 피순대

 


-야시장의 겨울 밤참은 오지기도 하지

‘밥이 솥 안에 조금 남아있고 찬장에는 먹던 김치가 있고 고추장뿐이다. 허름한 양은냄비에다 참기름을 두르고 밥과 고추장과 김치를 넣어 비비면서 볶는다.그대로 숟가락 여러 개를 꽂아서 냄비채로 들고 방으로 돌아오면 형제들이 저마다 달려들어 퍼먹는데 밤참의 그 맛이란 세 끼 중에 가장 특별한 맛이다.(황석영의 ’맛 따라 추억 따라’중)’

혹시 당신, 당신이 나를 잊듯 밤참의 맛을 잃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냥 땅굴에서 막 캐 온 차디찬 무나 고구마를 비롯해서 동치미, 묵, 군밤, 삶은 계란, 옥수수, 곶감, 수루미, 식혜, 개떡, 호빵, 호떡, 찹쌀떡, 맹감떡, 가래떡, 국수, 팥죽, 메밀묵, 김치전 등으로 입을 달래던 그 밤참…. 최근 들어 전주에 명소가 하나 추가되었다. 남부시장 야시장이다. 풍남문의 오른편으로 펼쳐진 곳이 남부시장인데 일찌감치 철시되기만 하던 곳에서 휘황하게 불을 밝히고 시장을 열기 시작했다. 밤이 되어 입이 궁금해지는 관광객들에게 밤참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겨울은 밤이 길어서 그냥 잠을 청하기는 몹시 어렵다. 그리움이란 것도 그렇긴 하지만.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버혀 내어 춘풍(春風)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븨구븨 펴리라.(황진이의 시조)’

입이 영 궁금해서 전전반측, 누워서 몸을 뒤척거릴 필요는 없다. 그런다고 해서 황진이처럼 동짓달 기나긴 밤 허리를 잘라낼 수도 없다. 그냥 남부시장 한번 다녀오면 된다. 그곳에는 이미 당신처럼 유혹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왜 진즉 이곳에 오지 못했던가, 하고 전주 시민들도 비로소 남부시장 야시장을 다녀온 뒤에야 후회하더라는 얘기가 들린다. 땡초김밥도 팔고, 붕어빵처럼 구운 비빔밥구이도 판다. 술로 만든 아이스크림도 ‘아이술크림’이라는 이름을 내걸어 성공했다. 다문화가정에서도 참여해서 중국 베트남 필리핀 태국 터키 등지의 음식도 맛볼 수 있으며 소규모 전시회나 음악회, 공연 등도 즐길 수 있다.

심지어 공예품을 파는 상점, 사진관, 네일아트 가게까지 문을 열었다. 기존 상점 35곳과 이동 매대 35곳을 합쳐 70개 매장이 백 미터 안에 다 있다. 조선 3대 시장의 하나였던 남부시장은 대형 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으로 고사 직전까지 몰렸다가 이처럼 화려하게 부활했다. 안전행정부가 주관한 야시장 시범사업이 멋들어지게 성공한 것이다. 이 때문에 동절기를 지나 하절기에도 야시장을 열 계획이라고 한다. 여름에는 오히려 한 시간을 더 연장해서 영업시간이 자정까지라고 한다. 시민과 관광객들이 원하면 주말뿐만 아니라 매일 상설로 운영할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야시장을 들렀다가 돌아오는 사람들은 꼭 또 다른 고민에 휩싸인다. 밤참을 너무 많이 먹어서 쉽게 잠을 이룰 수 없다는 고민이 그것이다. 나도 분명 그랬다. 맛보기로만 시식했던 음식만으로 배가 불렀다. 그래도 동짓달의 밤은, 황진이만큼, 길었다./이병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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