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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천도 복숭아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아주 어릴 적, 학교에게서 배운 ‘고향의 봄’ 노래는 나에게 ‘고향의 이상적인 모습’을 심어주었습니다. 특히 복숭아꽃 피는 봄날의 시골 풍경은 왠지 지금도 모두 내 고향 같은 느낌이 들곤 합니다.

 

이슬 내린 산꼴짜기에 탐스러운 분홍빛 복숭아 꽃이 흐드러지게 펴 마을 전체가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며 만개했군요.  그래서 분홍빛에 취한 봄날이 꿀처럼 달기만 합니다. ‘미백, 천도, 황도, 백도, 백향, 뉴골드…’ 다양한 품종의 복숭아 나무들이 다투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군요. 품종에 따라 꽃의 개화시기와 색깔 또한 조금씩 다르다지만, 가지마다 금방 터질 듯 물오른 봉오리와 만개한 꽃들이 가득합니다. 아니 가득하다 못해 알싸합니다.

 

정조대왕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당쟁의 희생물이 돼 뒤주에 갇힌 채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홀로된 어머니 혜경궁홍씨가 환갑을 맞이하자 정조는 수원의 화성행궁에서 회갑잔치인 진찬연을 열어 드렸죠. 이때 어머니에게 한지로 만든 복숭아꽃을 헌화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예부터 노인의 잔치에 빠지지 않았던 게 복숭아입니다.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복숭아꽃을 바치거나 상 위에 복숭아가 담긴 바구니가 놓였다. 복숭아꽃을 바치는 게 헌도(獻桃) 혹은 공도(供桃)입니다. 복숭아를 수(壽)로 여겼기에 헌수(獻壽) 혹은 공수(供壽)라고도 했습니다. 회갑 선물로 복숭아 그림을 주기도 합니다. 그림을 받는 사람의 장수를 기원한다는 의미입니다.

 

 복숭아는 사기(邪氣)를 물리치고 불로장생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는데, 정조는 3천 송이의 복숭아꽃을 바친 것입니다. 3천이란 의미도 천도를 먹은 동방삭이 삼천갑자(三千甲子·1만8000년)를 살았으므로 무병장수를 비는 의미라고 합니다.  한지로 만든 복숭아꽃의 이름을 ‘효도화’로 명명하고 어버이날에 달아드리기로 한 것은 참으로 훌륭한 아이디어입니다. 

 

 단원 김홍도의 그림 투도도(偸桃圖)는 동방삭과 훔쳐온 복숭아를 담고 있지요. 보물 제1442호 일월반도도 병풍에도 천도 복숭아가 등장합니다.

 각 4폭으로 구성된 2점의 대형 궁중 장식화 병풍으로 해와 달, 산, 물, 바위, 복숭아 나무 등을 소재로 하여 십장생도와 같은 의미를 나타낸 것으로 여겨지며 특히 복숭아에 대한 길상 관념이 강하게 내재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에는 왕과 왕비를 상징하는 붉은 해와 흰 달, 한 개만 먹어도 천수를 누린다는 천도와 청록색의 바위산, 넘실거리는 물굽이, 억센 바위 등이 극채색 극세필로 그려져 있습니다. 해와 달과 산, 물결이 대칭으로 배치된 점은 그 소재와 상징성에서 어좌 뒤에 세워졌던 일월오봉병과도 유사하지요. 표현 시각과 기법에서 탁월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소재, 구도, 화법 등이 모두 뛰어난 작품입니다.

 

  복숭아는 비타민과 유기산 성분은 혈액순환을 도울 뿐 아니라 피로회복, 해독작용, 면역기능 강화 및 피부미용 등에 도움을 주는 물질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장 활동을 촉진해 대장암, 변비, 당뇨병 등에 도움을 주는 섬유소가 많고, 펙틴도 상당량 함유하고 있으며, 복숭아 과실을 먹으면 몇 가지 암 발병 위험을 낮추는 것으로 보고돼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북 밀양시 산외면 금천리에서 출토된 복숭아 씨 유물로 미루어 보아 3천년 전에 이미 오늘날의 재배종 복숭아와 비슷한 크기의 것이 소규모로 재배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복숭아꽃이 피는 안견의 몽유도원도 같은 꿈을 꿀 수는 없지만 도연명의 시가 생각납니다.

 

問余何事棲碧山(문여하사서벽산) 나에게 무슨 일로 푸른 산속에 사는지 묻는데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자한)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아도 마음은 절로 한가롭네

桃花流水杳然去(도화유수묘연거) 복사꽃이 시내에 떠서 아득히 흘러가니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별다른 천지이지 인간세상은 아니네

 

사람들은 무릉도원의 꿈을 누구나가 그리워하고 있나 보옵니다. 아마도 그곳은 선경에 든 극치로서 복숭아꽃 같은 여인도 살고 있을 터이지요. 안개 낀 오솔길가로 이슬을 머금고 피어 있는 복숭아꽃이 수줍은 듯 살포시 다가오는 5월의 아름다움을 어찌 주체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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